▶ 반복의 지겨움
뼛속까지 시린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따스한 봄바람이 스윽 내 몸을 감싼다. 새로운 하루가 또 반복.. 아니 시작한다.
오늘 아침은 계속 쌓여가는 두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마구마구 으깨서 들기름을 듬뿍 넣고 바글바글 끓이는 일명 으깬두부국을 만들었다. 숟가락을 올릴 때마다 건져지는 거친 모양의 두부 조각들과 들기름의 고소함을 실컷 맛볼 수 있다. 하얀 국에 새로운 색감을 주기 위해 애호박을 채 썰어 넣고 요즘 한껏 달달함이 오른 알배기 배추를 송송 썰어 넣었다. 아삭함에서 말캉한 배추의 변화는 매일 반복되는 패턴에 살짝 다른 것을 끼워 넣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갓 짜온 들기름은 처음에는 고이고이 아껴먹다가 거의 다 먹어갈 때쯤엔 사치스럽게 듬뿍 넣어 먹는다. 인간의 심리는 참 요상하다. 처음에는 조금씩 아껴먹다가 나중에는 막 쓰게 되고 여러 개 쟁여놓고 먹게 되면 아끼는 마음이 반감이 된다. 할인한다고 사놔 봤자 오히려 더 허비하는 느낌이다.
반복적인 삶에서 어떤 새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지금 읽고 있는 소설, ‘개선문’의 지극히 인간적이며 냉소적인 주인공 라비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다만, 우리가 반복하고 있을 뿐이지.".. 라비크는 일상적인 생각을 철학적으로 나열하는 사람이라 그 생각을 이해하려면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어야 한다. 주인공의 생각은 작가의 생각일 텐데 어쩌면 그렇게 멋지고 풍부한 표현을 구사할까? 너무 풍부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를 추앙하는 것도 새로움의 한 가지다.
하여튼 각설하고.... 반복, 그래 반복얘기로 돌아가서 내가 매일 삼시 세끼를 반복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사실 하루 삼시세끼 먹어야 한다는 이론은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요즘은 삼시 세끼를 꼭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세끼라는 굴레에 갇혀 산 세월이 나를 속박하고 있지만 그 삼시 세 끼는 인간이 정한 것이고 하루에 세 번 먹는 습관으로 인해 인간의 뇌는 정확하게 세 번을 요구하고 있다. 먹어야 사는 반복 때문에 매끼마다 다른 요리를 만드는 것은 반복적인 습관과 시각이 지겨운 탓도 있을 것이다. 매일 보는 비슷한 색깔의 요리들을 좀 더 색다르게 꾸미는 것은 식상한, 늘 그 반찬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을 위해 내 상상력을 총동원한다. 물론 내 감정도 한 몫한다. 얼마나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지만 막상 그 기대는 금세 사그라진다. 뻔하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새로운 것은 없다. 나이를 먹은 탓에 너무 잘 알면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 뻔함에서 잠깐의 새로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주 살짝 어제 하지 않은 일을 오늘 일부러 할 때가 있다. 머릿속에 있는 늘 해야 할 일들인데 미루었던 것. 이를테면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모두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읽을 책과 다시는 읽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배경은 1930년대이며 겨우 1,500 원하던 시절에 산 '개선문'이라는 책도 그중 하나다. 대충 읽을 수 없는 내용에 글씨도 어찌나 작은지 노안까지 겹쳐서 이중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주인공 라비크의 매력에 푹 빠져 드는 중이다. 내가 딱 성인이 되었을 때 출판된 책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어린 나이에 이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한다.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적어도 중년은 지나야 이해될 것 같은데. 이 나이에도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정리가 가장 필요한 냉장고에 있는 알 수 없는 그릇들을 다 꺼내서 싱크대에 휙 던지고 싹 비워서 뜨끈한 물을 틀어 뽀드득 씻어내는 일이다. 냉장고에 넣을 때는 아까워서 넣어놨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그 마음도 시들해져 결국 버리게 된다. 며칠 후 다시 냉장고는 채워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 싹 비워진 환한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아주 잠깐, 속 시원함을 만끽한다. 이것저것 채워진 그릇들을 말끔히 비워내는 것은 내 마음속 찌꺼기를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다음, 나의 주요 무대인 부엌의 하얀 타일에 붙어있던 얼룩진 시트지를 과감하게 확 찢어버리고 사두었던 예쁜 모양의 시트지를 꼼꼼하게 붙이고 삐뚤빼뚤 엎어있는 그릇들을 매끈하게 디자인된 건물처럼 잘 쌓아놓고 여기저기 놓여있던 양념통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하는 일은 거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내 마음이 하기 싫으면 절대 할 수 없다.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몸이 먼저 나대면 물건들이 힘없이 스르르 떨어진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손도 하기 싫어서 내동댕이친다. 그래서 나의 그릇들은 거의 쇠그릇이다. 그릇은 깨지지 않지만 거기에 맞은 나의 발가락은 비명을 지른다. 하여튼 정신이 내 몸을 일으켜야 반복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살아가는 자체는 사실 참으로 단순하고 평범하다. 여기에 살짝 다른 색다른 일을 끼워 넣어야 반복의 지겨움을 조금 해소할 수 있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걸어봐야 이천보이다. 부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하는 것들을 체크한다면 만보만큼은 나오지 않을까? 그만큼 나는 움직임이 없지만 머리는 바쁘다. 그래서 무거운 머리를 식히려 하던 일을 멈추고 산책을 나간다. 3월의 차가움과 따스한 중간 정도의 공기를 맞으며 걷다 보면 자연이 선사하는 반짝임에 온갖 시름을 잊으며 걷게 된다. 호수의 맑은 물결에 반해 호수 끄트머리에는 각종 오염덩어리들이 눈에 띄지만 그 위에서 여유롭게 잘 살아가는 오리들처럼 우리네 인간들도 아름다움과 추함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조화롭게 잘 버텨내고 있다. 내 속의 추함이 나이 들수록 자주 들춰지지만 애써 감추려 하지는 않겠다. 그 추함도 이해될 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상대방의 추함이 보일수록 내 추함도 각성하게 된다.
봄의 기운이 움텄다. 앙상한 가지와 마른 잎사귀, 건조한 나무그루터기에서 꽃잎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렇게 귀엽고 작은 것들이 언제 피어났을까? 아직 겨울옷을 완전히 벗지 못했지만 쌀쌀한 바람에도 봄의 정령들이 싹을 틔우며 햇빛을 향해 머리를 들고 있다. 바람에 실려 잔잔하게 움직이는 꽃송이들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곧 꽃잔치가 열리겠구나.
이 하루의 규칙이 너무 지겨우면서도 막상 조금이라도 깨지면 나는 꽤 못 견뎌하는 편이다. 다른 일들의 간섭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고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반복의 지겨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고 사소한, 또는 힘이 덜 드는 일들을, 책 속에 예쁜 나뭇잎을 끼워 놓고 잠깐 조용한 미소가 스치듯 아주 소소한 뭔가를 자발적으로 사부작거려야 한다. 나의 하루는 내가 만든 반복이므로 나 스스로 찾아야 할 행복이다. 급하지 않다면 매사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자. 오늘을. 봄도 왔으니.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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