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과, 혼자만 고생시켜서 미안해.
완벽한 한 장을 위해서 기다려야 하고, 익혀야 하고, 타지 않게 뒤집어야 한다. 김치전처럼 '먹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없고, 삶은 '살기 위함'이라는 어설픈 이유만 있지만, '죽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이런 생각들로 나른해지고 있었다. 대학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제 화요일마다 쉬어. 너 쉬는 날에 점심 먹자."
친구는 꼭 연락 주겠노라고, 반겼다. 전화였다면 울먹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울렁이는 감동 때문은 아니었다. 자영업자로 10년 동안 열심히 살고, '이런 날이 오는구나'하는 양가감정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에 '돌아와서 할 일'을 만들듯, 도착 전에 '돌아가서 할 일'을 생각한다. 1년이 지나면 12개의 연차가 생기는 회사원들과 같다. (물론 주말은 없다) 1년 차에 한 달에 1번, 5년 차에 한 달에 2번, 그리고 10년이 지고 11년 차가 되어서야 일주일에 한 번 쉬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삼십 대를 갈아 넣은 가게, 열심히 했으니 쉬어가며 해도 좋을 텐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참 달려야 하는 때는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이런 생각에 한 달에 4번, 많게는 다섯 번도 있을 휴무가 '돈 벌 기회를 잃은 기분' 같기도 했다.
냉혹한 2025년 6월, 사건과 사과가 있었다.
우리 가게는 선거철마다 조용하다. 올해 6월 첫 주 화요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두 번째 화요일은 친구와 함께 휴가를 갔다. 일요일에 '다음 주 화요일도 쉬어?' 농담처럼 말했는데, 남편에게는 현실이 되었다. 작은 도로에서 불법 좌회전 차량이 중앙선을 넘으면서, 뒤에서 남편 오토바이를 쳤다. 하늘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도 '욕심'이라는 단어를 써서 벌을 내리는 걸까? 아니면 고생했으니 잠시 쉬라는 걸까? 교통사고로 남편은 긴 휴가기에 들어갔다. 제 3자들은 그 자리가 사고가 나면 크게 나서, 몸이 성한 사람이 없는데,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남편은 해를 못 봐서 얼굴이 하얘졌다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해맑게 웃고 '괜찮다'라고 통화하는 남편에게 '나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괜찮을까? 분주하게 뛰어다니느라 종아리가 퉁퉁 부어서 건드리면 터질 듯이 아프다. 그러나, 너덜너덜해진 무릎수술을 앞두고 있는 남편만큼 아플까?
이런 순간에도, 남편은 매일같이 말한다.
사고 낸 사람도 아니고, 사고가 나서 병실에 누워있는데, 내게 사과한다. '괜찮아' 이외에 좋은 답변이 있을까?
화를 내거나, 울거나, 말을 많이 해서 남편을 괴롭힌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보였다.
친구가 엄청 많은 남편, 친척들이 한동네에 모여사는 시댁 가족들과 어울려 살고, 장사를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무리 안에서 감정적으로 불편할 때, 행동에 따른 결과를 먼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 사는 게 심신이 편한지 생각하고 '미세한 행동 전략'을 짜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애용하는 편한 습관이 있다. '화내거나 운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면, 일단 참고하면서 생각하자.' 여태까지 실패 없는 선택이었다. '나'의 태어난 성격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할 것 같지만, '남'들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할 말은 줄이고, 선택에는 단호하게 뒤돌아 보지 않고 결정대로 밀어붙이는 게 가장 현명한 편이다.
남편이 없는 첫 주말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하필 이른 장마였다. 철없는 고등학생 조카 아들은 실시간 파트타임을 자청했다. 수시로 들러 숙모가 필요한 건 없는지,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는지, 늘 살폈다. 멀리서 농사지으시는 친정아버지께는 차마 말하지 못했는데, 비가 와서 과수원을 못 가니 외손주를 보러 오셨다. 기다리는데도 사위가 보이지 않으니 물으셨다. 답했고, 속상해하셨다.
"그럼, 니 혼자 일하나?"
그 짧은 문장과 많은 마음을 안은 표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가족들이 다 도와주고, 쉬엄쉬엄 일해. 걱정 마요."
남편처럼 아버지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마음 쓰게 해서, 낳아주신 몸 아끼지 않아서, 좋은 일-나쁜 일 뒤늦게 알려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모습 보여서,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일을 겪어서... 나 역시 잘못한 것 없는데 가슴 깊은 곳부터 사죄하고 있었다. 아버지께 한사코 주무시고 가시라고 했다. 외손주와 목욕탕도 가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그날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다음날 새벽에는 다시 맑은 기운이 돌았다. 하루 쉬어서 과수원에 할 일이 많으시다며, 새벽 일찍 나가셨다. 나가기 전에 전날 사놓은 죽을 데워 드리고는 드시는 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복숭아 이야기, 노안 이야기, 아들 이야기, 그러다 마지막 말은, '건강 챙겨라' 그리고 '건강 챙겨요', '늘 조심히' 그리고 '수고하는 마음'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꺼낸다. 한 줄이라도 오늘을 시작하는 책이면 좋다.
오후에 재료를 준비하기 전에 서서라도 책을 꺼낸다. 한쪽이라도 읽는다. '책벌레'가 먹는 책은 주식이고, '일벌레'가 먹는 책은 간식이다.
퇴근해서 잠들기 전에 책 표지라도 만진다. 그게 힘들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SNS라도 본다.
불확실한 생각보다는 확실한 활자를 택한다.
그래도 안된다면? 질문하는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안된다 할지라도 해야 한다면? 되물어볼 줄, 그리고 그 답이 똑같을 줄 몰랐다.
독서, 열심히 사는 나에게 보내는 유일한 사과다.
매일 사과하며, 더 열심히 살아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