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사람, 나를 잊지 말자.
남편과 화해한 후, 남편의 첫마디였다. 전날 퇴근하고 홧김에 체리를 주문했다. 아마도 내가 과일을 즐겨 먹는 편도 아니라서 왜 샀는지, 남편은 궁금했을 것이다. 나는 과수원보다는 정글에 가까운 입맛이다. 남들은 독하다고 싫어하는 채소들을 좋아하고, 과일도 신 맛을 더 좋아한다. 체리, 블루베리, 자몽 같은 종류 말이다. 대체로 수입과일이라서 양껏 사 먹기에 비싸다. 그래서 더욱 나 스스로에게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당장에 안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중요도에 따른 인생'을 강조한다. 살다 보면, 아껴야 하는 순간이 더 많다. 입이 씹는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짧고, 한 달은 길고, 일 년은 더 길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우리들의 10년'이라는 집을 지으면, 세상은 무한궤도에 다다른다. 단순히 돈이라는 물질보다, 노력의 결과물을 함께 완성하기 위함도 있다. 젊으니까 괜찮다, '끝물 과일'을 먹고 매 계절 버티면, 언젠가 계절과 무관하게 과일을 먹게 되는 날이 온다, 믿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믿음이 깨질 정도의 화가 나면, 내면의 어린아이가 불쑥 튀어나온다. '아이 과자가 최소 다섯 봉지고, 계란이 한판사고 남고, 반찬을 사도 한 끼 먹고 남는 데...', 열 번도 넘게 고민해도 주문해야만 했다.
새벽에 도착한 택배를 열고, 체리를 여덟 개 꺼냈다. 흐르는 물에 한번 씻고, 아끼는 흰 그릇에 담았다. 사랑처럼 붉은색이었다. 결제했을 때의 망설임을 다시 기억했다. 손가락 한번 누르는 게 느리고 둔했다. 일할 때는 땀 흘리며 파닥 거리고, 어깨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데 말이다. 아침에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먹는 체리, 달고 달았다. 덕분에 다시 하루가 알알히 맺혔다.
퇴근 후에 체리를 왜 샀냐고 한번 더 묻는 남편에게 말했었다.
"나, 체리 엄청 좋아해. 그래도 비싼 거 알아서 하루에 8알씩, 아껴 먹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샀다. 일적으로 변명의 여지없이, 내 잘못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잘못을 어떻게든 회피한다고 했고, 나는 이미 일어나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거라고 했다. 전혀 다툴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다른 일이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간 노력해서 모아 온 것들을 게워내야 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노력의 흔적들, 각자의 방에서 엉엉 울었다.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가도, 층층이 쌓아 놓은 탑이 무너지듯 예상 못한 비바람에 심신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래서, 못난 자존심은, 충고나 위로를 주접으로 받아들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행동하는 것들에 다른 상처를 받고 있었다. '본인이나 잘하지, 돕는답시고 알량한 손을 아무 데나 내민다'라고 못된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 순간에는 나 스스로를 미워하지 못했다. 왜냐면, 들끓는 분노를 잘 누르는 게 더 급했다.
그랬으니까, 300g에 만원이 훌쩍 넘는 비상식적인 '체리 충동구매'더라도 꽤 합리적이었다.
체리적 사고, 체리는 나에게 '상징적인 자기애'였다.
미국 워싱턴에서 바다 건너온 체리는 씹을수록 달았다. 8개가 아닌 80개라도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하게 체리를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천천히 씹었다. 퉤, 하고 씨를 뱉었다. 하나씩 사라지는 과육과 앙상하게 남은 씨앗과 가느다란 줄기를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하는 자체에 회한이 들었다. 마흔의 내가 쉰이 되었을 때를 상상했다. 옆 동네 다른 사장님들은 환갑이 넘어도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 나도 여전히 하고 있을까? 몇 살까지 해야 할까?
'자영업자 여자 사장'의 최악의 결말은 무엇일까? 함께 장사하다가 큰 몸싸움으로 번져 경찰이 오갔다는 소문도 들었다.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충격적인 글이 떠올랐다. 바빠서 병원도 못 가고, 오랜 세월 일했단다. 몸이 많이 상했지만, 가족과 아이들을 건사했다. 이제 조금 편해지려나 했는데,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면서 이혼을 요구했다. '누구도 너에게 희생하라고 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는 말이 가장 서글펐다. 남는 것은 결국 나뿐이니, 병원을 미루지 말고 늘 본인 건강을 잘 챙기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이 이야기를 나눴을 때, '건강 안 챙긴 사람 잘못이지.'라고 무심히 말하는데, 내 가슴에 멍울이 생긴 듯 아렸다.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체리적 사고'
아들만 하나 있지만, 가끔 딸이 있다면, 상상하곤 한다. 몸이 약하면 최소 12시간씩 일하는 자영업은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성별로 역할을 구분할 순 없지만, 현실적으로 '자영업자 엄마'는 태릉인이다. 아이를 등교시키는 걸로 하루가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 '열정'을 다해야 한다. 미뤄야만 하는 집안일을 못 본척하는 찝찝함도 견뎌야 한다. 항상 해야 할 일을 반 이상도 못한 채 잠들어야만 한다. 워라밸은 꿈꿀 수도 없고, 월차도 뺄 수 없고, 연차도 뺄 수 없다. 아파도 출근 전에 링거 맞고, 약국에서 쌍화탕 사 먹고 버텨야 한다. 자존심이 상한 날을 신경질로 정신이 혼미하다. 몸이 약하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몸도 굵고 튼튼한데, 자영업이 힘들다. 10분에 한 번씩 스트레칭하고, 물은 거의 3L 가까이 마신다. 그렇게 버틴다. 5분 거리 출퇴근 길인데도, 난 항상 보부상처럼 짐이 많다. 최소 5kg은 넘는 가방무게를 버티고 집에 오면, 샤워하면서 어깨에 터진 핏줄이 보인다. 거울 속에 오늘의 모든 상처가 떠오른다. 오후에 종이 박스에 손톱 밑에 상처가 났는데, 피가 멈추길 바랐다. 그러면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본다. 한 겨울에 손 담금질에 쓸려 시커멓게 변색된 손등을 본다. 봄 되면 다 괜찮아진다고 '돈 버는 게 다 그렇지'하는 나를 본다.
그러나,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체리적 사고!'
결국, 마지막에 남을 한 사람, 나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