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적의(敵意)
실타래 같은 바나나의 두꺼운 껍질을 벗기면 얇고 하얀 속살이 나왔다.
서걱, 차가운 속살이 입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졌다. 떫은 마지막 한 입을 삼킨다.
바나나는 원래 바나나, 바나나의 보편적인 맛이라는 건 없다.
푸른 바나나를 좋아한 건 엄마가 김씨 아저씨를 만나고 난 뒤였다.
학교를 처음 들어갔던 3월의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집에 오면 따뜻한 국과 밥을 했다.
어느 날은 오므라이스에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주기도 했다.
와- 탄성을 지르며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면, 우리 딸 많이 먹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날도, 우리 딸 이제 너도 컸으니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주일만 김씨 아저씨네 집에 있겠다던 엄마는 갈수록 기간이 길어졌다.
라면, 햇반, 김, 마른반찬, 그리고 푸른 바나나
이 정도면 일주일 먹을 거야, 이 정도면 한 달 먹을 거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제 혼자 있을 수 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엄마는 통장을 내밀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