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지옥 Toast9. 푸른 바나나

정의와 적의(敵意)

by oh오마주

질긴 바나나송이의 모서리를 뜯었다.


실타래 같은 바나나의 두꺼운 껍질을 벗기면 얇고 하얀 속살이 나왔다.

서걱, 차가운 속살이 입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졌다. 떫은 마지막 한 입을 삼킨다.

바나나는 원래 바나나, 바나나의 보편적인 맛이라는 건 없다.


푸른 바나나를 좋아한 건 엄마가 김씨 아저씨를 만나고 난 뒤였다.

학교를 처음 들어갔던 3월의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집에 오면 따뜻한 국과 밥을 했다.

어느 날은 오므라이스에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주기도 했다.

와- 탄성을 지르며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면, 우리 딸 많이 먹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날도, 우리 딸 이제 너도 컸으니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주일만 김씨 아저씨네 집에 있겠다던 엄마는 갈수록 기간이 길어졌다.

라면, 햇반, 김, 마른반찬, 그리고 푸른 바나나

이 정도면 일주일 먹을 거야, 이 정도면 한 달 먹을 거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제 혼자 있을 수 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엄마는 통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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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토리 중독자 oh오마주입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독후감을 쓰고,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 글들은 제 눈으로 보는 작고 소중한, 아름다운 모든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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