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라 더욱 혼자 있고 싶은 유부녀
주말이 무엇인지 잊은 지 오래다.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는 참 길다. 더욱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니, 깨어 있는 시간이 길다. 7시 반에 일어나서 다음날 새벽이 돼야 일정이 끝난다. 그렇게 휴게음식점 사장으로 10년 차다. 지금은 출근 오전 11시, 퇴근은 밤 10시다. 원래는 12시간 풀타임 일했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할 일이 많아지면서 한 시간을 줄였다. 그렇다고 수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더 이상 영업시간을 줄이지는 못했다. 자영업자가 내키는 대로 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칫 경쟁가게에게 손님을 뺏길 수 있다. 우연히 한 번 먹어봤는데, 맛있으면 단골집을 바꾼다. 파이를 나눠가져야 한다. 혹은 조각이 아닌 통째로 없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쉬었었다. 아이가 조금 크니 그것도 타협했다. 아직 부모와의 추억이 필요한 아이를 위해 2번으로 바꿨다. 부모란, 쉽지 않다. 내가 일을 하지 않을 때에 더욱 피곤하다. 피곤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은 조바심과 비슷했다.
4학년이 되니 아이는 학원을 많이 간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를 가는데, 하교해서 저녁 먹을 때까지 학원을 간다. 두 가지 운동을 하다 보니 일주일에 세 번은 8시에 집에 온다. 씻고, 저녁을 먹고, 학원 숙제를 한다. 학교나 학원 일정 빼는 게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휴일을 한 번은 아이를 위해 쓰고, 한 번은 우리 부부를 위해 썼다.
함께 하는 부부는 그저 다른 이들의 주말이었다. 매일 같이 있는데, 장소만 바뀌었다. 아침을 잠으로 보내고, 점심이 되어서야 나갈 준비를 한다.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가서 얼큰하고 펄펄 끓어서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 여름에도 국물을 찾는다. 그와는 달리 나는 데이트 다운 음식이나 여느 커플처럼 식사 후에 예쁜 카페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혼이란 사랑보다는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하는 체제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위해 아끼기를 바랐다. 섭섭했지만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일은 너무 힘든데, 돈 쓰는 건 쉽다.
각자 의미를 찾기 위해 조금씩 변형했다. 못 봤던 대학 친구를 점심때 만나기도 했고, 홀로 아침에 등산을 가기도 했었다.
올해 봄, 또다시 바뀌었다. '아티스트 웨이'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청승맞다'라는 말이 적합할 것이다. 혼자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가진다.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 작고 사소하지만 나의 순수한 영감을 떠올릴만한 물건들을 사거나 보고 만지며 내면을 끄집어내면 된다. 내 경우는 책 내용을 실천하기보다는 실험에 가까웠다.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 나이에도 영감을 추출하는 게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이십 대를 떠올렸다. 그 시절 되는 일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기차를 타고 떠났었다. 세월 탓 하는 마음을 해소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추위가 조금 가신 4월에는 부산, 5월에는 대전, 그리고 오늘은 경주를 간다. 부산 광안리에서 배회했고, 카페에 한참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대전에서는 햇빛아래 지독하게 걸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멈출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 내뿜는 에너지를 만끽했다. 강력하게 이 과정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째, 남편은 아내가 부재중이라 당황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같이 할 수 있으려나.'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고 있다. 쫓아올 것만 같아서, 어디 가는지 가기 직전까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깨우지 않고 아이가 학교 갈 때 같이 나왔는데, 점심때쯤 전화가 온다. '어디야? 점심 먹으러 가자.' 그제야 여행 왔음을 알렸다. 쉬는 날 본인은 일정이 없고, 점심도 혼자 먹어야 하는 게 내심 섭섭해 보였다. 나에게는 좋은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섭섭한 날이었다. 그럴수록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가족이 아니라, '나'를 알고 싶었다.
만세력도 그렇게 마음을 따라 더해갔다.
만세력을 해석하면서 '일과 인간관계'를 설명할 때 놀랐다. 나는 대체로 삼합이고 남편은 방합이다. 만세력에서 합, 충, 해, 귀문 등이 있다. 아주 어려웠다. 10개 정도의 동영상을 봤는데, 상세한 건 앞으로도 더 많이 봐야 알 것 같다. 많은 영상에서 간략하게 말할 때, 삼합은 '능력 위주', 방합은 '사람 위주'다. 인생에서 일을 풀어내는 방식이 어떤가를 뜻한다. 남편과 나를 놓고 보니 더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다.
남편은 친구가 참 많다. 남편 능력의 시작은 사람이다. 남편에게 어떤 일에 대해 묻거나 공사 등을 하기 전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다방면으로 많이 온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흔쾌히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면 친구들이 술 먹자는 전화가 온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깨닫는 듯이 말하곤 한다. 사업 아이디어나, 일상에서 좋은 요령등을 배워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은 흘려듣고 반은 새겨듣는다. 간접적인 경험이 되는 글감도 꽤 있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대화하는 오후를 좋아한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방임하거나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여지없다. 그저 내 속에 내가 많아서, 남편도 남편의 속에는 남편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 것뿐이다. 불만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끝이 없을 불만에 의미를 두지 않을 뿐이다.
나는 뭐든 혼자 스스로 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경험해 보고 스스로 깨우쳐서 일궈내고 싶은 사람이다. 누군가 도움을 주려하면 '필요하면 꼭 부탁하겠다.'라고 거절한다. 거의 부탁하는 일은 없다. 하다 보면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과 축하는 힘이 된다. 경험상 무작정 응원하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안 되었다. 가족의 평가는 특히 위험하다. 응원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 남편은 예민하게 꼬아서 듣는 거라고 한다. 서로 설명해도 서로 공감할 수 없다.
가끔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라 서글프기도 하다. '행복'이라는 이상 때문이다. 행복을 떠올릴 때마다 각자 행복하면, 행복한 집단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극단적으로 시골개와 도시개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목줄 없이 동네 메뚜기 잡고 노는 게 좋을까, 이미용과 호텔 등 천수를 누리는 게 좋을까? 그저 안위를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다. 건강 이외에는 잔소리의 이유가 없어진다.
최소한의 나만 떠올린다. 미래를 떠올릴 때, 새벽부터 밤까지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사주팔자를 공부하면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 들지만,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리 없는 단단한 마음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부산 : https://blog.naver.com/lov3of1000/2234109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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