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오마주 Jun 12. 2024

부부가 여전히 남녀라면

내게 천을귀인이 갑자기 생겼으면 좋겠다


"부부가 여전히 남녀라면"

feat. 내게 천을귀인이 갑자기 생겼으면 좋겠다.




날씨 탓을 해본다.


주방에서 일하는 나는 더운 날씨에 몸이 축 처졌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슈퍼가 있는데, 그늘로만 걸을 수 있는 무인 아이스크림가게로 뛰어갔다. 3Kg짜리 봉지 각얼음을 슈퍼보다 100원 더 줬다. 흔한 사치다. 물병을 냉동실에 넣으면 언다. 살얼음은 늘 아쉽다. 스테인리스 텀블러에 굵고 큰 얼음을 넣으면 요란하게 달그락 거리는 게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더운 날, 도로 위 오토바이는 석쇠구이 오징어다. 신호등이 빨갛게 점화되면 지글지글 굽힌다. 빨간불은 여름에 더 자주 오는 것 같다. '어우 삐, --삐이----삥삐삐삐이이이-', 불만을 표하는 남편을 보며 나의 성정체성을 의심한다. 더울 때 욕하면 시원해지는 건가, 나도 욕을 해본다. 괜히 날씨 탓을 해본다. 그래, 우리는 더운 날씨에 녹아 없어질까 봐 성별을 집에 두고 왔다. 퇴근 전까지 공동의 목표는 그저 일이다.


짠돌이와 짠순이는 그렇게 만나 가정과 일에서 동업한다. 끝까지 참다가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흘리고 자본주의 바람을 맞이한다. 집 나간 성별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낄 때쯤, 티 나지 않게 의자를 끌아다가 다리를 꼰다. 우리는 날씨 때문에 결혼한 사실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결혼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상으로 유지하고, 욕망과 분노사이를 갈팡질팡하다가 자본주의에 비로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고민한다.


속히 더위를 내쫓기 위해 자본주의 냉방마찰, 혹은 냉방등목, 냉방풍토병을 선택한다. 색깔도 없는 바람을 눈으로 직선을 긋고 곧게 자리 잡는다. 맹수는 얼음 동동 띄운 오미자차를 한잔 달라고 한다. 불필요한 남성성은 더위가 한수 걷고 나자 돌아온다. 앞머리를 왼손으로 탈탈 터는 왼손잡이의 손이 남자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내가 천을귀인이 없어서 그런가 봐."


홍익인간 정신에서 황인종으로 돌아온 다음 그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천을귀인이 있었으면, 덜 더웠을 텐데 말이야."


갖고 싶다, 천을 귀인...

 천을 귀인은 하늘에서 내려준 귀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주에서 귀인 중의 최고로 꼽는다. '천상의 신'으로 모든 흉살이 피하고 숨는다고 해서 예부터 '귀한 신분'이라 했다. 상황 자체가 수호신 역할을 해주거나, 귀인을 보내준다. 안 좋은 사건 사고들이 있더라도 부정적인 기운을 완화시켜 주고, 좋은 일에서는 긍정적인 기운을 강화시켜 준다. 중요한 일이나 좋은 일은 작게 일하고 크게 가져간다. 인복자체가 많다. 부모, 배우자, 자식 등 주변의 도움으로 편안한 삶을 살아가니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외모의 생김새를 떠나서 귀티가 난다. 반듯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스스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주변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


아직 남편에게는 말 못 했지만, 우리에게 천을 귀인이 있었다면 당신도 나도 여전히 남녀로 알콩달콩 일하면서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너는 T 나는 F, 나는 대문자 A형 너는 소문자 o형, 너는 사이코 나는 스톤아이 이런 이야기 말고, 우리 연애 때 이야기나 하면서 퇴근길에 카페에 앉아서 웃으며 했던 이야기 말이다. 그와 자주 올랐던 하늘 정원은 고층 아파트가 되었다고 한다. 한 여름에도 꼭 껴안고 사진 찍었던 그때가 그립다.


내게 천을 귀인이 있었더라면, 귀인 탓을 해본다. 사주 탓을 해본다.

귀인이 많아도 게을러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던데 라는 말로 위로해 본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힘들다면 그것은 더운 날씨 탓, 천을 귀인이 없는 탓입니다.

오늘 이 글이 당신의 '일일 천을 귀인'이 되길 바랍니다! 리미티드 에디션 선물입니다 ;-)




 

이전 06화 나는 삼합이고, 너는 방합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