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물결이 너무 좋아

쇳덩이 같은 몸, 힘 빼기

by 숨틈

여름에 제주로 이사를 왔다. 오자마자 온통 물과 함께했다. 바다, 용천수, 바다, 마당의 풀장, 그리고 또 바다. 수영은 못하는 주제에 물이 좋았다. 발에 물이 처음 닿을 때 깜짝 놀라는 차가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의 압력과 간질거림, 튜브에 몸을 맡기며 떠 있을 때 느껴지는 바다의 울렁임이 좋다. 특히 해가 뜨거운 날 잠수해서 수경으로 물바닥을 보면 물과 햇빛이 부딪혀 만들어지는 물그림자가 보이는데, 그 일렁임과 반짝임은 일품이다. 바닷물은 언제나 흔들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선언을 하듯, 모랫바닥에 물결모양 도장을 찍어두기도 했다.


물을 좋아해도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자주 망설인다. 우선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 무섭다. 그리고 들어갔다 나왔을 때의 찝찝함과 씻어야 하는 귀찮음도 한몫한다. 그래서 간간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괜스레 두 발이 꼼지락거린다. 어릴 때 친구가 준다던 과자를 쿨한 척 거절하고는, 괜히 아쉬워 후회하는 마음에 두 발을 문지르던 때처럼. 막상 물에 들어가기를 선택만 하면 머리까지 물에 담가야 직성이 풀린다. 두려움과 주저함을 이겨내고 온몸을 물에 담그면 그제야 그 감정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물은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저항감 따위는 없이 그저 흐른다. 나는 물결보다는 철길에 가깝고, 튜브보다는 둔탁한 소리를 내는 기차에 가깝다. 철로를 벗어나고 싶지만 내가 정해둔 것, 가야 할 길에 몰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치고만 나가던 기차 같이 살았다. 심지어 ‘나는 이 일을 좋아해’, ‘이들은 내가 너무 사랑해야 마땅한 사람이야’와 같이 내 즐거움이나 사람들에 대한 마음도 정해두었다. 모든 것은 흘러 떠내려 가고 새로운 물이 밀려들어와 있을 수 있는 것임에도. 물을 손아귀에 잡으려 들었다.


흐름에 탄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언제나 자연스러운 자유를 동경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느긋한 결정, 닥쳐올 악을 모르는 듯이 웃는 순수함. 자신도 모르게 재채기 마냥 튀어나오는 질투와 미움까지도. 나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불안을 야기한다. 어쩌면 내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긴장하지 않으면 젖은 손에 쥐어진 솜사탕처럼 모두 망가져 있을지도 몰랐다.

수영 초급반을 잠시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내게 가장 큰 문제는 힘을 빼지 못하는 것이었다. 강사 선생님의 “힘 빼세요! 힘주면 가라앉습니다!”하는 말에 왜 그렇게 무력감을 느꼈던지. 초등학생 때부터 내 어깨는 바짝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힘을 빼고 물에 올라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일인가. 안전요원이 대여섯은 되는 안전한 상황에서도 무엇이 두려워 자꾸만 물아래로 가라앉았을까. 속상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기차라, 쇳덩이 같은 나는 또 열심히 힘 빼기를 연습했다. 연습을 위해 머리끝까지 몸을 넣어서 죽은 사람인 마냥 등만 둥둥 띄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괜찮다, 괜찮다’만 되뇌며 둥둥 떠 있으면 그나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자연스러움도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이다. 발도르프 교육관에는 ‘들숨’과 ‘날숨’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의 호흡에는 들숨과 날숨이 있듯이, 일상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리듬을 타게 된다는 의미이다. 들숨으로 바깥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날숨으로 내 속의 것을 바깥으로 뱉어내는데, 들숨과 날숨의 교차가 신체적, 정서적 안정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안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날숨만 쉬어댔다. 내가 동경하는 물결을 따라 하려면, 보다 연습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뱉을 생각만 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보고 챙기며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제주라는 바다에 왔다. 내 인생에도 큰 물결이 밀려온 상태임이 틀림없다. 어떤 인생이 펼쳐지던지 코를 잡고 머리끝까지 나를 집어넣어 힘을 빼고 ‘괜찮다, 괜찮다’고 되뇌며 힘을 빼보려 한다. 내 내년의 행보, 남편의 직장, 아이들의 미래. 붙잡고 고민하면 원 없이 고민할 수 있는 문제들을 물에 흘려보낸다. ‘긴장 마, 괜찮아, 물에 몸을 맡겨’라며 나를 다독인다. 내 삶이라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몸을 담그고, 머리카락 끝까지 담가 보려 한다.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워질 테다. 진득진득하게 망가져 버린 못난 솜사탕도 맛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