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별하는 방법

떠나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법

by 숨틈

우리 집은 한라산 자락의 아래쪽에 있다. 해안가보다 지대가 높아, 자동차를 타고 구불구불 지나가다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일 때가 잦다. 가을 어느 날, 높은 곳에서 문득 바라본 바다는 별이 수 놓인 것처럼 반짝였다. 오징어와 한치를 잡기 위한, 제주 바다의 별천지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쓸쓸하고 냉랭해진 밤바다를 은은하게 비춰주는 불빛이 아련하게 따뜻했다.


쌀쌀해진 가을을 느끼며, 최근 아주 친한 친구와 멀어진 일이 기억났다.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 친구의 똑 부러짐, 시니컬함, 비식 하며 웃는 웃음, 담백한 위로, 담담한 일상을 보내는 힘. 모두 내게는 잘 없는 것이라 신기하게 관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함께 열심히 보내던 치열한 20대 초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막 나온 그쯤이었다. 아픈 청춘이 유행처럼 번졌다. 성인이라는 택을 달고 처음으로 겪는 우리의 고생들을, 사람들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덮개로 덮어버렸다. 대학 생활, 가족들의 외면, 학비와 생활비 부족, 반복되는 아르바이트, 그 와중에 미래를 꾸려나가야 하는 벅참, 대인 관계에 가득한 갈등, 혼자 세상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 등. 다른 이들에게는 딱히 이해받지 못하는 각자의 멍을 안고, 서로의 시퍼런 봄날을 위로했다.


같이 자취방에 살면서 밤이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고, 새벽이면 이불을 덮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대화는 마치 어린 시절 서랍에 숨겨두었던 눅눅해진 별사탕을 밤과 새벽하늘에 흩뿌리는 듯했다. 이제까지는 누구도 받아주지 못했던 속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다. 쓴 이야기들이었음에도 꺼내놓은 말들을 주고받는 시간은 달콤했으며, 재밌었고, 눈물 났고, 후련했다. 돌이켜보니 참 무섭게도 따뜻했다.


평생 갈 것 같은 우정이었다. 마음을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친구는 내가 있는 곳에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환하게 빛나는 어마하게 큰 별이었다. 아주 크고 따뜻하고 반짝여서, 함께 대화하지 않아도, 서로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갈등이 있어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 손을 놓지 않는다면 여전할 것 같았다.


내게 닿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버리는 친구의 말들에 속상하고 외로웠다. 우리가 무엇이 그렇게 변했냐며 속상함을 토해내듯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여전히 샤워하고 나와놓고선 실수로 팔에 비누 거품을 묻히고 나오는 덤벙거림이 있고, 친구는 여전히 시니컬한 웃음을 귀엽게 짓는 친구였다.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가를 물으면 차고 넘쳐 뜨겁게 원망하던 마음이 파삭 식어버린다. 먹은 나이만큼 생의 과업도 척척 해내오며, 남편과 아이가 생기고, 적어지는 체력에 비해 맡아야하는 많은 책임들이 생겼다. 그리고 사는 도시도 다르고, 매일 하는 대화의 내용이나 가치관도 다르다. 한 달 식비와 여가비, 저축 스타일, 주말에 놀러 가는 곳, 지금 꿈꾸는 미래도 이젠 다르다.


내가 아는 친구가 그곳에 없고, 친구가 아는 나도 없어져버렸다. 과거엔 서로를 알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모르는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며 다른 세월을 쌓아가며 지낸 우리는, 그 세월만큼 서로를 모르고 있었다. 진짜가 아닌 내 속의 허상에게 과거와 같은 것을 기대하고, 실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대화 이후에 울적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무슨 기분이었는지 한참을 모르다가, 이별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해버린 내가, 이젠 친구를 떠나보내야함을 직감했다. 하지만 도저히 보낼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라, 방법을 달리 해보기로 결심했다. 과거의 친구를 떼어내어 내 속에 깊이 남기기로 했다. 눅눅해진 별사탕을 함께 나누어 먹던 친구를 아주 예쁜 포장지로 포장해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다. 젊은 한때를 위로받고 행복하게 해 주었던 시간을 기리며 별이 총총 포장지가 좋겠다.


그 상자를 품에 안고 한동안은 울어야 했다. 내 마음속 서랍 속에 있을 거지만 그래도 다신 이런 시절이 올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으니까. 이별의 슬픔이 가득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친구를 상징하는 큰 별이 허상임을 적응한다면, 그 별은 내게서 물러나 작아지겠지. 그 별이 적당히 작아진다면, 이젠 그만 울어도 된다는 이야기겠지. 이후에는 확실히 내 마음에 새겨야 하겠다. 너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친구가 아니라, 한때 멋진 선물을 준, 지금은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로운 사람을 보듯이 다시 친구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예쁜 별을 하늘에 보내주겠다. 행복하라고, 잘 지내라고 밤하늘에 띄워 보내겠다. 친구를 내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겠다.


여러 날을 울며 친구와 이별한 후였다. 내게 너무 큰 존재여서 그 친구라는 별이 작아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눈앞을 가리던 별의 빛이 줄어들며 까맣게 바뀐 밤 풍경에 다른 불빛들이 보였다. 제주 까만 바다의 오징어 배 불빛처럼 작지만 선명한 빛들이 내게 괜찮다고 손짓했다. 여러 불빛들이 내 옆에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그저 지금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내게 얼마나 많은 작고 큰 별들이 생길까. 친구와의 이별의 경험이 아파 괜한 겁에 미리 마음을 주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둔 예쁜 선물상자를 떠올려야겠다. 언젠가 헤어질 사람들일지라도, 사랑했던 순간들을 예쁘게 포장해서 서랍에 가득 채우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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