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용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흙을 다지는 일

by 숨틈

아무것도 없는 하루였다. 그저 일어나서 씻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요리하고, 밥을 먹고, 다시 청소하고, 샤워하고 잠들 준비를 하는. 그저 그런 하루였다. 매일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빠진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음에 허전했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나를 짓눌렀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끝내지 않는 하루, 뿌린 것도 결과도 없는 하루는 내게 익숙하지 않다.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해서 성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없고 칭찬받을 일도 없었다. 나의 삶에 시작과 끝이 사라졌다. 우주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주부라는 우주 같은 공간에서 헤맨 지 벌써 5년. 내가 사는 공간은 시간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가벼워, 어딘가에 살포시 앉았다가도 바람처럼 흩어진다. ‘이러다 10년은 금방이겠군’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5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 우주에서 나는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부유했다.


내게 하루는 행주 같다. 매일매일 쓰여진다. 위도 닦고 아래도 닦고 열심히 닦다 보면 더러워져서, 깨끗이 빨아 널어두면 밤새 말라 다음날 다시 쓰이는 행주 같다. 이젠 그렇게 닳아버린 행주. 나는 내가 로켓이기를 바랐다. 혹은 전차, 혹은 작은 자동차 정도라도. 계속 달릴 수 있는 바퀴가 있거나 날아가고 싶었다. 그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5년 정도 행주로 살았으면 내가 행주일 수도 있겠거니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그렇게 춥진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흐린 가을날. 집 근처 카페의 사장님을 만나게 됐다. 사장님은 언제나 옅은 미소로 반겨주시던 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현재 주부인 것,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시간이 없다는 것, 글을 쓰려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답하셨다. “흙을 다지고 계시네요”.


사장님 또한 어린아이를 키우며 부모님을 부양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책임들에 많은 일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해야 하는 일들, 벌어야 하는 돈, 부양해야 하는 가족. 무거운 짐을 지고 바쁘게 안달복달하던 마음이 결국은 병들어 공황장애로 정신과 약을 먹기도 했다고 하셨다. 병에 걸린 이후, 삶을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셨다. 하루를 잘 보낸 것도 칭찬할 만한 것, 힘들면 조금 쉬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 멋진 카페에, 예쁜 식기들.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와 멋진 사장님이었다. 씁쓸한 이야기였지만 왜인지 은은하고 푸릇하고 깊은 향이 나는 이야기였다. 여기 카페에도 손님이 많을 때는 살만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손님이 정말 적을 때는 정말로 없다고 한다. 그럴 땐 생각하신다고 했다. ‘내가 다져지는구나. 흙을 다지듯 다져지고 단단해지고 있구나’


제주에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올 때는 가게들이 북적이다가도 비수기에는 썰렁함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제주도 안에서도 촌일수록 그런 경향은 심하다. 손님이 없는 순간일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 다져지고 있다는 것. 성과가 나지 않는 순간들에 내가 다져져서 결국은 단단한 내가 되어, 정말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마음이 부러져 본 이가 말하는 흙을 다진다는 말이… 나를 위로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흔들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순간이 없는 제주의 나무들을 보며 ‘나라고 바람에 별 수 있냐’며 담백하게 마음을 먹는다.


매 순간의 성과를 바라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바람에 풀풀 날리는 마른 모래를 쌓아 올리는 일만 끊임없이 해온 느낌이었다. 내가 매일 부리던 욕심보다, 매일 행주로 집을 닦는 일이 오히려 나를 다지는 일이었을까.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명확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난 더욱 다져질 필요가 있었다.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살며 꾹꾹 흙을 다져놓아야, 내가 원하는 삶의 순간에 나를 가져다 놓을 수 있으려나.


“이번에 커피 원두를 새로 가져왔어요. 조금, 흙내음이 날 거예요”


사장님이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며, 크게 뚫린 창밖의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카페에는 흙 향과 편백 향, 그리고 무거운 삶의 무게에도 나아가는 삶의 향도 섞여서 가득 풍겼다. 이상하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면서, 또 중요한 것을 꼭 붙들어 매게 만드는. 그런 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