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와우 Oct 29. 2023

절에 사는 고양이

느긋하고 천천히 걷는


가을 나들이로 절에 다녀왔다. 지난 7월에 왔을 때 만났던 고등어냥이가 있나 기웃기웃거렸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꼬리라도 보면 좋으련만, 속으로 생각하며 처음 걸어보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지난 7월, 뜨겁고 푸른 여름에 만났던 고등어냥. 손을 톡 대도 가만히 쉬고 있었다.
뜨끈하게 몸을 데우고 있는 고등어냥
내가 사진 잘 나왔다 잘 나왔다! 하며 좋아했던 사진




초록, 노랑, 빨강 서서히 물들고 있는 가을 단풍이 멋지게도 펼쳐졌다. 폰 카메라를 들어 사진 몇 장을 찍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검은색의 귀여운 기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빵 굽고 있는 턱시도냥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의자 가장자리 쪽에 턱시도냥(몸 대부분 까맣지만 목부분과 손부분이 하얀 고양이)이 뻔뻔하고도(?) 느긋하게 빵을 굽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도도도 다가갔다. 사람들이 지나가든, 옆에 오든, 사진을 찍든 아무 생각 없다는 듯 도망가지도 않고 느긋하게도 앉아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 집 러키는 내가 너무 만져대서 그런지 옆에 오다가도 도망가는데! 예전에 만난 고등어냥도, 이 턱시도냥도 느긋하게도 사람 손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가 조심히 손을 가져가대도 가만히 있었다.

    

이 친구들은 마치 도망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오랜 시간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처럼. 까만 턱시도냥이를 보며 속으로 안녕, 반가워하고 있는 새에 또 어디선가 귀여운 회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설마? 그렇다! 지난번에 만났던 고등어냥이로 추정되는 친구가 멀리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우왓!”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지르며 반가워서 뛰어갔다. 계단을 오르는 고등어냥 옆을 서성거리며 야아옹하는 인간의 말을 전했다. 가만 쳐다보더니 냥~하고 대답을 해준다. 어슬렁어슬렁 왼쪽 길도 보고 오른쪽 길도 보더니 계단을 올라갈 길을 간다.


인사한 뒤 갈 길 가는 고등어냥

마음 같아선 오래 따라다니고 싶지만, 도망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느긋한 절 고양이들이 그 여유로운 자태를 지킬 수 있도록 꾹 참고 인간인 우리의 갈 길을 갔다. 절 고양이를 만난 시간은 그날의 나의 하루 중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귀여운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사람이 손을 대든 대지 않든 느긋하게 조용히 움직이고 누워있는 모습.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건 마땅히 그럴 이유가 있어서겠단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너무 귀여운 걸!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의 정복 욕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