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줄

by 오 진엽

내 어릴 적 고향집은 해방 전 일본사람이 살았던 마당이 넓은 적산가옥이었다.

두레박줄을 던지면 한참 만에야 두레박이 닿는, 우리 집은 마을에서 제일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들어가던 첫날, 입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근처 농가에서 도망쳐 나왔을 타조만큼 커다란 칠면조를 발견하고 쩔쩔매는 또래들 앞에서 호기롭게 칠면조를 잡겠다고 나섰다.

한참을 실랑이 끝에 칠면조를 잡아 등에 올라타고 칠면조를 데리고 놀았다. 그렇게 또래들과 놀다가 그만 칠면조를 찾아 나선 주인과 맞닥뜨렸다. 혼비백산 도망치다 보니 우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도망치게 되었다. 집에 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이 아이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그렇게 집에 오니 우리 집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사연인 즉, 입학식이 끝나고도 일곱 살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온 동네사람들이 나를 찾아 나섰던 모양이었다, 당시 직장을 다니셨던 아버지는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오시고.

결국엔 내가 우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커다란 거울을 우물 안에 비추어보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물이 한길 물속이 아니라 열길 물속보다 깊다 보니 어림이 없었을 터.

그때 내가 우물가에 몰려있던 사람들 틈에서 본 아버지 모습은 지금도 3D영상처럼 생생하다.

친엄마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새엄마를 들여서 밉기만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를 찾겠다고 막 웃통을 벗어젖히고 수직 동굴 같은 깊고 캄캄한 우물 속으로 두레박줄을 타고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내 말썽이 원인이었겠지만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매를 많이 맞고 자랐다. 지금도 밥상머리에서 새엄마 말 한마디에 맨발로 한겨울에 내쫓겼던 기억이 아프게 남아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껏 아버지와 나를 이어 준 것은 그때의 두레박줄이었으니.

그러니까 그때 아버지가 타고 내려가려던 두레박줄은 질긴 핏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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