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통장

by 오 진엽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을 저금하러 아내가 은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고3과 중2가 되는 아이들이 용돈을 받을 때마다 저금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되어갑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29년 전, 군입대 날.

앞집 친구네에 들러 입대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뒤에서 기척이 들립니다.

돌아보니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신 앞집 아주머니가 저를 따라오고 계셨습니다.

날도 추우신데 그만 들어가시라고 권하는데 아주머니 눈물이 글썽글썽하십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한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앞집 아주머니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구박데기로 자란 제가 안쓰러웠을까요.

그렁그렁한 아주머니가 제 손을 꽉 잡더니 손에 돈을 쥐어주십니다. 펴보니 꼬깃한 오천 원 권 지폐였습니다.

저는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아서도 한동안 그 오천 원 지폐를 쓰지 못하고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꼬깃한 그 지폐의 가치가 아주머니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돈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들도 자라면서 어른들께 용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용돈 중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친지들이 주는 꼬깃꼬깃한 돈도 있습니다. 부유한 누군가 주는 만원의 용돈보다 가난한 누군가의 몇 천 원 용돈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전미동에 사시는 할머니가 세뱃돈으로 주신 3000원은 그 할머니한테는 큰돈이란다"

"몸이 아파서 돈을 벌지 못하는 외삼촌이 주신 용돈은 저축해서 나중에 갚았으면 좋겠구나"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주신 용돈을 허투루 낭비하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줄 테니 저금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용돈을 받을 때마다 저금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다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만으로 20세가 되면 통장을 돌려줄 계획입니다.

군것질이나 하면서 낭비했을 그 용돈들이 어느새 통장에 제법 쌓였습니다.

통장에 쌓인 것이 어디 이자뿐일까요.

액면금액 만원이 누군가에게는 천 원의 가치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십만 원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쌓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잘한 일 몇 가지를 꼽으라 하면, 아이들 용돈 통장을 만들어 준 것도 그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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