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건성 하고 해찰만 하는 너 같은 애를 어디에다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에 이끌려 논에서 일할 적마다 귀에 딱지가 끼도록 듣던 지청구였습니다.
어디에다 써먹어야 할지 모른다면서도 그냥 놀리기에는 제 노동력이 아까웠나 봅니다.
학교가 쉬는 날은 아이들과 놀지 못하고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니 휴일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동네 대항전 야구 경기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속상했던지 모릅니다. 몸은 논에 있지만 마음은 온통 학교 운동장에 있었지요.
일은 안 하고 정신 너갱이 팔고 있다고 아버지께 혼나기 일쑤였지요. 제 자랑 같지만 그맇게 야구에 미쳐있다 보니 야구 규칙만큼은 또래들보다는 해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투덜투덜 논에서 일하고 있을 때면 가끔 야구 경기 하던 친구들이 씩씩대며 찾아오기도 합니다. 규칙 문제로 서로 충돌할 때마다 저에게 어떤 게 옳은지 판정을 묻는 거지요.
어느 날은 정말 야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논으로 가서 아버지 일을 거들어야 함에도 그날은 친구들과 야구했습니다.
그런데 시합을 마치고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나오다 그만 아버지와 맞닥뜨렸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야구 방망이를 부러뜨렸고 글러브를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고는 제 손을 이끌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쌀가마니에 흙을 담아 높다란 둔덕에 있는 물꼬의 둑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화가 난 아버지께서 그 쌀가마니에 흙과 함께 빼앗아 온 글러브까지 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글러브들은 제 것도 아니고 제 친구 삼열이 것인데 말입니다. 값이 비싼 것이라 그 친구에게 어떻게 보상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정말 그날의 심정은 글러브와 함께 제가 그 쌀가마니에 구겨 넣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밤, 친구에게 글러브를 어떻게 물어줘야 할지 끙끙 앓던 저는 삽을 들고 인적이 드문 논으로 향했습니다. 무섬증보다는 절박함과 서러움에 울먹울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꼬의 둑에 야무지게 쌓아놓은 무거운 흙가마니 대여섯 자루를 정신없이 해체하고 매장된 글러브들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흙을 담고 원상복구를 하였습니다. 당시 말라깽이 중학생이었던 제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음 날 아버지는 그 논으로 일하러 가자며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체념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이러겠구나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몰랐는데 제가 한 눈에 봐도 물꼬의 둑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제가 어둔밤에 설렁설렁 싸놓았던 흙가마니를 들어내고 새로 흙을 채워 다시 쌓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아버지의 아량이 뜻밖이라 지금도 그 저의가 매우 궁금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달밤에 글러브 구출작전을 했듯 어릴적 야구에 맺힌 한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 한풀이로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야구에 미쳐 사는지 모릅니다.
올해로 사회인 야구 28년째. 그동안 단 한 번도 시합에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등골뼈가 부러진 산재에도 복대를 차고 아내 몰래 야구를 해왔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글러브를 끼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제게는 얼마나 황홀한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허슬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나이도 있으니 이제 그만 살살 좀 하라 합니다.
그러나 야구가 고팠던 어릴 적을 생각하면 야구 앞에서 몸을 사린다는 것이 용납이 안 됩니다.
세상이 거대한 강이라면 야구는 제가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아가미와 같습니다.
야구만 생각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니 야구가 저의 밥이라 해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야구가 밥먹여주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구가 삶이고,
야구가 사랑이고,
야구가 밥입니다.
아니 어쩌면 제게는 저 수식어도 부족합니다.
저에게 야구는 그냥 단순히 야구가 아니고 '숨' 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