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

I hate summer.

by 김오마

8월의 여름은 뜨거웠다. 나의 여름도 굉장히 뜨거웠다.

에어컨이 고장 났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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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어느 날, 문득 에어컨 바람이 미지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긴 개뿔. 3일 뒤, 에어컨은 냉방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실외기를 살펴보니 실외기랑 에어컨을 연결해 주는 호스 부분이 완전히 얼어있었다. 집주인께 연락했더니 기사님 연락처를 주셨다.

에어컨 냉매가스 부족이랬다. 연락드린 다음 날, 기사님이 방문하셔서 실외기 냉매가스를 충전해 주셨다. 에어컨에서 다시 시원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신속하게 처리되어 다행이었다.


일이 여기서 마무리 됐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 5일 지났을까 에어컨은 다시 냉기를 잃었다. 다시 살펴본 실외기의 호스 부분은 여전히 얼어있었다.

결국 정식 서비스 센터에 AS신청을 하게 됐다. AS신청을 한 건 금요일 오후, 방문 예정 알림톡은 월요일에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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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풍기가 없었다. 독립하면서 가져온 선풍기는 이미 옛날에 당근에서 나눔 한 지 오래였다.

왜냐? 에어컨이 있었으니까!

독립하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언제든 내 마음대로 에어컨을 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살던 그곳에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틀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뭐든지 돈이 드는 일은 질색했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을 보면 휴지 한 칸, 큰걸 본 뒤엔 휴지 세 칸만 쓰라고 가르쳤다. 써보면 알겠지만, 휴지 세 칸은 뚫린다.

돈 아껴 써라. 검소해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물건을 때려 부술 때는 예외였는지 멀쩡하던 TV는 시원하게 터뜨렸는데, 그곳의 멀쩡했던 가구들이나 물건들은 자주 그런 식으로 부서지고 새로 채워지곤 했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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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선풍기 없이 그냥 버틸까 생각했다. 에어컨을 고치면 선풍기는 다시 쓸 일이 없어질 테니까.


'그래, 창문을 열면 좀 나을 거야. 여름이어도 바람은 불잖아.'


아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열기가 집 안에 더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35도의 기온에 쓸 인내심 같은 건 없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쿠팡으로 탁상용 선풍기를 구매한다. 선풍기는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왔다.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더위는 강해서, 내 작은 탁상용 선풍기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주말을 보내면서 제발 월요일에 기사님이 바로 방문해 주실 수 있기를 빌었다.


월요일 오전, 알림톡이 왔다! 기사님 방문 예정일은 5일 뒤 금요일이었다!

와! X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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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서 깬다. 잠든 지 겨우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싶다. 끈적거리는 몸이 불쾌하다. 몸을 뉘인 요는 축축하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텁텁한 공기 속에 찌든 땀냄새가 퍼졌다.

자다깨다자다깨다자다깨다.

우리 동네 매미새끼들은 정확히 오전 5시 50분부터 울기 시작했다. 또 하루가 밝았다. 끔찍해.


도대체 인간의 몸엔 땀구멍이 얼마나 많은 걸까. 와, 인간의 몸에는 약 200만~400만 개의 땀구멍이 있단다.

불쌍한 내 몸의 땀구멍들은 정말이지 쉬지도 못하고 땀을 흘렸다.


찬물 샤워를 한다. 시원하다. 다 씻었는데도 한동안 찬물을 계속 맞는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수도를 잠근 뒤 밖으로 나온다. 물기를 채 다 닦아내기도 전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땀 때문에 몸은 금방 다시 축축하고 끈적거린다. 시원한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힘없이 침대에 늘어진다. 덥다는 건 단순히 땀만 많이 흘리는 게 아니다. 무더위는 뇌를 녹인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욕이든 판단력이든 뭐든 다 녹여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늘어져 버린다. 그냥 증발해 버렸음 싶다. 염병, 진짜 더워서 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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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받으니 AS 기사님이었다. 마침 근처라 바로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와, 하루라도 일찍 오시다니...!...!!...!!! 드디어 끝이 보인다!


실외기 응축기가 고장 난 거라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근데 오래된 모델이라 지금은 부품이 없어 부품을 수배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대체품으로 수리를 해야 한다는데 부품이 언제 구해질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드디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결국 나는 또 한 번의 주말을 에어컨 없이 보냈다.

친구도 없는 무직 백수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끌어모았던 인내심은 증발해 버린 지 오래고, 이젠 그냥 슬프기만 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 나는 기사님께 원모델의 부품이 없으면 제발 대체품으로라도 최대한 빨리 수리해 달라는 간절한 문자를 보냈고 에어컨은 화요일에 고쳐졌다.


다시 냉기를 되찾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나는 고요히 건조됐다.

나 혼자만의 재난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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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무더위는 너무 무자비해서 내 모든 걸 녹여버릴 것 같았는데 결국 나는 녹아 없어지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 듯 날이 갑자기 추워져 후리스도 꺼내 입었다. 동네 붕어빵 사장님은 다시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셨다. 시간은 그저 또 흘러 이제 곧 겨울이 오고 올해도 끝나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문득 느낀 시간의 흐름에 마음이 또 불안해진다. 무딘 삶의 감각이 별안간 날카로워지며 내 뒤통수를 후린다. 모든 걸 놔버리고 싶다는 오랜 체념과 그래도 한 번 더 일어나 보자라는 마음이 어지럽게 섞여 현기증이 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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