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1
큰개는 내가 이십 대 때 우리 집에 왔다.
동생이 아는 지인에게서 받아왔다고 했다. 처음 본 큰개는 내 손바닥에 딱 맞게 올려놓을 만큼 작았다. 세상에 그렇게 귀여운 새끼 강아지는 처음 봤다. 나도 막 예뻐해주고 싶은데 그때 당시 동생이 큰개를 집에 데려오기 위해 한 거짓말 때문에 큰개는 동생이 군대 가기 전까지 나와는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큰개는 나랑은 좀 서먹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귀여운 놈.
큰개는 새끼 땐 무지 작더니 크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개가 성장통 때문에 끙끙댈 수 있다는 걸 우리 집 큰개를 보고 처음 알았다. 큰개는 일어서면 나만큼 클 정도로 컸다.
이 놈 새끼는 사고 치는 스케일도 지 덩치만큼 컸는데 쥐새끼도 아니면서 내 방이랑 동생 방 벽지를 다 뜯어 버리고 내 이어폰이며 핸드폰 충전 케이블이며 두루마리 휴지며 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아주 신나게 씹어놨다. 아니, 장난감을 사주면 뭘 해. 너덜너덜해진 이어폰을 보면 화는 나는데 그 와중에 지가 잘못한 건 알아서 눈치를 보는 그 동그란 눈이 너무 웃겨서 호되게 혼내지도 못했다. 내 인형들은 어느새 큰개가 가져가서 맨날 싸웠다. 소파 가죽은 발톱으로 다 파놓고 팔걸이 나무 부분은 이로 다 갉아서 아주 새로운 소파를 창조해 냈다. 만족스럽게 소파에 드러누워있는 모습이 아주 웃기는 놈이었다. 내가 소파에 앉을라 치면 뒷다리로 어찌나 차던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집에서 처박혀 있기만 했던 나는 큰개 때문에 밖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큰개는 뛰는 걸 좋아했다. 산책을 나가서 사람이 없는 길에선 무조건 뛰었다. 활동량도 많아서 한 번 나가면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다. 우리 집 큰개는 뛸 때 진짜 멋있었다. 근데 이제 나는 추리닝에 후드까지 뒤집어써서 최대한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꽉 동여맨 채 목장갑을 끼고 엄마 등산가방에 2L짜리 물 두 통과 큰개의 똥주머니를 달고 뛰어 땀에 절어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큰개 덕분에 세상에 사계절이 지나가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다. 겨울에 눈이 내린 날, 새벽 동트기 전 큰개와 동네 뒷산의 산책로에 있는 작은 전망대에서 일출을 본 기억이 있다. 큰개와 함께 눈길을 뽀드득 걸었다.
언제 한 번은 큰개를 데리고 닭강정을 사러 갔는데 길을 지나던 어떤 사람이 큰개의 종을 알아보고 진짜 멋있다고 감탄하면서 칭찬해 준 일이 있었다. 자기 칭찬하는 건 기똥차게 알아들은 큰개가 으쓱해져서 고개를 더 치켜드는데 속으로 참 자랑스럽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우리 큰개는 정말 잘생겼다. 산책 나갈 때마다 잘생겼다는 얘기는 꼭 들었다.
동생은 작은개와 큰개를 데리고 애견펜션에도 놀러 가곤 했다. 펜션에는 애견 수영장이 있어서 작은개랑 큰개랑 수영도 했다고 한다. 내 세상은 너무 작아서 애들을 데리고 제대로 놀러 가본 적이 없는데 동생이 잘 데리고 다녀서 참 다행이다.
큰개는 작은개와 다르게 성격이 소심하고 예민한 부분이 있었다. 한마디로 쫄보였다. 큰개랑 놀아주다 꽤 물렸는데 얼굴을 두 번 물리고 나서부터는 나는 큰개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못난 얼굴에 흉터도 꽤 크게 남아서 나는 큰개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큰개를 예뻐하긴 했지만 점점 멀어졌다.
나는 작은개가 죽고 나서 이제야 독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왔다. 나는 큰개를 본가에 두고 집을 나왔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본가와 가깝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되도록이면 본가에 가지 않는다. 어쩌다 본가에 가게 되면 그래도 큰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가게 됐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본가 근처 마트에서 제일 큰 개껌을 사간다. 그 집에 갈 때마다 이젠 날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었는데 큰개는 매번 슬금슬금 다가와 냄새를 맡고 꼬리를 살랑살랑 치고 자기 얼굴을 내 손에 갖다 대줬다. 그럼 나는 큰개의 말랑하고 촉촉한 코를 느끼며 쓰다듬어 주고 눈곱을 떼준 뒤 가방에서 개껌을 꺼내줬다.
큰개는 내가 갈 때마다 조금씩이지만 눈에 띄게 늙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큰개는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못했다. 걷는 것도 버거워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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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는 죽기 한 달 전부터 더더 아팠다고 한다. 너무 아파서 매일 밤새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거나 돌봐주지 못했다. 엄마가 큰개가 숨을 가쁘게 쉰다는 카톡을 보냈는데 나는 그것마저도 늦게 봐서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 큰개가 죽는다니 무서웠다. 이내 큰개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아팠다던데 이젠 안 아플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눈물이 터진 건 동생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누나, 괜찮아?' 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우리 큰개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 엉엉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본가에 갔다. 조용했다. 마치 자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눈은 미처 감겨있지 못했다. 작은개는 죽었을 때 눈을 감겨줄 수 있었는데 큰개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제 큰개의 눈동자엔 내가 비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몸이 많이 아팠어서 그 큰 덩치의 개가 너무 앙상했다. 차가운 얼굴을 쓰다듬는데 눈물이 났다. 미안한 마음, 후회하는 마음,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 뒤섞여 엉켰다.
큰개의 장례는 동생부부가 치렀다. 큰개는 작은개의 장례를 치렀던 방에서 장례식을 했다고 한다.
그날은 날이 좋았다. 큰개는 이제 아프지 않을 테니 강아지별까지 가볍게 달려갔을 것이다.
동생이 보내준 사진엔 동생이 큰개의 몸에 얼굴을 묻고 있었는데 화면엔 큰개의 어린 시절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큰개의 짧은 생이 그 사진에 녹아있었다. 나도 큰개의 몸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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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나갈 때 사람이랑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거의 어두울 때만 산책 나가서 미안해, 목욕시켜줄 때 털 말리는 거 너무 힘들어서 가끔은 완벽하게 말려주지 못한 것도 미안해, 빗질 더 자주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항문낭 짜줄 때 내가 좀 질색한 것도 미안해. 사슴 정강이뼈 좋아했는데 많이 못 사준 것도 미안하고 더 마음껏 예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 마지막에 많이 아팠을 때 한 번도 돌봐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같이 걸을 때 나랑 발맞춰 걸어줘서 고마워. 가끔 뛰어가다가도 뒤돌아서 기다려줘서 고마워. 그 큰 몸으로 나랑 겅중겅중 춤춰줘서 고마워. 나 혼자 누워있을 때 무심한 듯 와서 내 품에 '훙' 하면서 쓰러지듯 기대어 체온을 나눠줘서 고마워. 내가 다리라도 올릴라치면 너는 기겁하긴 했지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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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개야, 큰개야. 나는 이상하게 오늘따라 너희가 너무 보고 싶어. 조금 눈물 나다 말겠지 했는데 밥 먹으면서는 예능 보면서 깔깔 웃기까지 했는데 다시 너희 생각이 나니까 너무 큰 그리움이 눈물로 흘러넘쳐서 멈춰지질 않아. 인터넷 보면 강아지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 꿈에도 놀러 간다던데 내가 너무 못해준 게 많아서 너희는 내 꿈엔 놀러 오지 않는 걸까. 주인이 죽으면 먼저 간 너희들이 마중 나온다던데 그땐 너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작은개야, 큰개야. 너희 짧은 생을 내 곁에 머물러 줘서 고마워. 난 덕분에 감히 행복했어.
작은개야, 큰개야. 너흰 내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내 보석들, 고마워.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