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운, 미운 나.

첫 글부터 엄마 밉다고 하는 불효자식

by 김오마

백수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특별히 한 것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지만 그 괴로운 순간도 푹신한 침대 안에서 하는 중이었다. 밤낮은 완전히 뒤바뀌어 해를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요즘 장마 때문에 낮에 나갔어도 해는 못 봤을걸.'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인생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지금의 내 삶은 완전히 망가져 고칠 수 없을 것만 같다. 게임처럼 리셋 버튼이 있다면 좋겠다. 머릿속으로 동그랗고 빨간 리셋 버튼을 떠올려 본다. 그런데 어쩐지 상상일 뿐인 이 리셋 버튼조차 쉽사리 누르지 못한다. 어딘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다시 해야 하는지 무엇을 했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부질없다. 과거를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의 현재마저 그저 현재로서 무용하게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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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좀 좋지 않아서 다소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왜 이렇게 맞아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생존하기에 급급했고 엄마를 지키기 위해 많이 애쓰며 자라왔다. 엄마는 의지할 수 있는 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의젓하고 철든 딸이라는 쓸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은 참 꾸준했고 끝도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 멈춰지기는 했다. 이제는 조용히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나서도 멈출 수 없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왜 나는 마땅히 보호받지 못했는지, 왜 나는 이렇게 결핍이 많은 인간으로 자라 버린 건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머릿속이 어지럽게 살아야 되는 건지 같은 질문들이었다. '왜?'라는 물음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답 없는 물음표들은 나를 짓눌렀다.


이미 일어난 과거는 바꿀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결국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좀 더 어릴 땐 아빠가 집을 어떻게 부쉈고 엄마를 어떻게 때렸고 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면 지금은 실눈을 뜨고 보는 것처럼 흐릿해지기도 했다. 예전엔 매일매일 난장판인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어쩔 줄 모르고 분노했다면 지금은 꽤 까먹고 그냥저냥 지내기도 한다. 솔직히 이젠 아빠한테 맞았을 때 얼마나 아팠는지의 감각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히려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며 쏟아낸 응어리진 감정들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아서 지긋지긋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내 새끼한텐 절대 안 그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부터 뒤늦게 엄마도 미워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미워져 버린 '미운 나'는 계속 울컥울컥 화가 넘쳐서 어디서든 때를 가리지 않고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런 이상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는 내 작은 자취방 침대 속으로 숨어들고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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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리저리 휘청이는 나는 자주 그리고 쉽게 무너지고 절망했다. 정말 웃기지만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하면 반드시 더 큰 불행이 온다고 꽤 오래 믿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긍정적인 생각도 해보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다. 언젠가는 긍정적인 생각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되면 나도 조금 행복해도 괜찮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백수다. 지금까지 어찌어찌되는 대로 살아온 내가 앞으론 어떻게 살면 좋을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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