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살아 있다는 거야?
건식은 문 앞에 서 있는 이혁을 본다. 건식을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벌떡 일어나 달려든다. 건식은 이혁의 멱살을 잡는다.
“너 이 새끼, 네가 여길 왜 와?”
이혁은 두 손을 들고 침착하라는 듯 애써 미소를 짓는다.
“아버님, 일단.”
이혁의 멱살을 잡은 건식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혁을 쳐다보는 건식의 두 눈이 타오를 듯 화가 나 있다.
“누가 네 아버님이야? 누가?”
건식은 주먹 쥔 한 손으로 이혁의 얼굴을 치려 한다.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건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만하세요. 제가 오라고 했어요.”
건식은 한 손으로 여전히 이혁의 멱살을 잡고, 주먹 쥔 다른 속으로 이혁을 칠 듯 쳐들고 고개만 돌려 건영을 본다.
피곤한 얼굴로 일어나 신발을 신는 건영이다.
“그 손 떼세요.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요.”
건영은 하율이 잠들어 있는 침대를 천천히 지나면서 단호하고 차가운 얼굴로 건식을 쳐다본다.
“뭐?”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관심이 없으니 알 리가 없죠?”
건식은 멍하니 건영을 쳐다봤다.
건영은 항상 건식에게 어딘지 모르게 좀 차가웠다. 어릴 적에는 그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잘 웃어 주고, 집에 들어가면 잘 달려와 안겨 주고, 아빠라고 부르면 쳐다보던 그 얼굴이 참 위안이 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건식에게 말도 별로 없고, 조금 차가웠다. 표정을 읽으수가 없게 됐었다.
지 엄마인 윤영에게만 부드럽게 대하는 듯했다. 윤영과 뭔가 대화를 하고 있다가도 건식이 집에 들어가면 입을 다물었다. 건식은 그 이유를 물어 보고 싶었지만, 달라진 건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윤영이 죽고 나서는 서로 연락도 잘 하지 않았다.
건식은 매일 핸드폰에 저장된 건여에게 전화를 걸어 보려고도 했지만, 선뜻 걸어지지 않았다. 건영이 건식의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그 손부터 떼라고요.”
건영은 건식과 이혁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잠들어 있는 하율이가 신경 쓰이는지 조용하면서도 날카롭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건식을 똑바로 쳐다 봤다.
건식은 괜스레 서운한 눈빛으로 건여을 쳐다보고는 이혁의 멱살 잡은 손을 신경질적으로 뗐다. 그냥 화가 났다. 이혁이 눈앞에 나타난 게 더 화가 나는 건지, 건영이 이혁 앞에서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게 더 화가 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화가 났다.
“미안해.”
건식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건영이 이혁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있다. 건영이가 왜 저 새끼한테 미안하다고 하는지 건식은 기가 막혔다.
소파로 가 이혁과 건영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하율이 쪽을 쳐다보며 푹 주저앉았다. 이게 아닌데, 저 새끼가 나타나는 바람에 또 다시 망쳐 버렸다.
“괜찮아. 아버님이야 그럴만하시지 뭐. 하율이 좀 봐도 될까?”
‘누가 지 아버님이야? 언제까지 내가 지 아버님이야?‘
건식은 이혁이 하율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봤다. 그래도 지 자식이라고 애틋한 눈빛, 하율이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는 듯한 애정 어린 표정, 누가 봐도 세상 좋은 남자인 척하는 저 얼굴, 건식을 두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이지 건영이만 없다면 한 대 쳐 주고 싶은 건식이다.
“아직 못 찾았지?”
이혁의 뒤로 가까이 다가가는 건영의 목소리는 사뭇 부드러워져 있다. 그리고 이혁은 뭔가 의문이 생긴다는 듯 심각한 표정이 되어 건영을 돌아본다.
“지금으로선 거기가 마지막이야. 거기서부터 행적을 알 수가 없어.”
건영은 하율이 누워 있는 침대 끝에 걸처 앉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감쌌다. 피곤해 보였다. 피곤하면서도 뭔가 답답한 얼굴이었다.
“엄마가 있어야 해. 그래야만 해.”
건식은 건영이가 엄마라고 하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죽은 지 엄마야 납골당에 있지, 찾긴 뭘 찾아?”
건식이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건영과 이혁이 건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건식은 왠지 모르게 건식을 탓하는 듯한 건영과 이혁의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곱지 않게 느껴졌다. 죽은 지 엄마를 “죽은 지 엄마”라고 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건식은 왠지 모르게 미스테리한 기분이었다.
“아빠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너무 몰라요.”
건영의 목소리가 쇳덩이처럼 무겁게 날이 서서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건식을 쳐다봤다. 이혁은 그런 건영의 한쪽 어깨를 토닥인다.
“됐어. 아직 아무 말씀 안 드렸지?”
“뭐라고 할까? 형사라는 사람이 그 사건 현장을 보고도, 아직도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잖아. 뭔가 이상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모를 수가 있어?”
“건영아.”
이혁은 건영의 바로 옆에 걸쳐 앉아 건영을 살며시 안아 줬다. 건영은 건식에게 등을 돌리고 이혁에게 기댔다.
건식은 자기가 지금 뭘 들은 건지 멍했다. 이혁의 품에 기대어 피곤하고 지친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건영의 목소리가 환청 같았다.
“엄마가 살아 있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눈치도 못 채는 게, 그게 남편이냐고?”
건영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건식은 이혁에게 기대어 있는 건영을 쳐다봤다.
“누가 살아 있어? 너 어디 아프냐? 네 엄마는 저기 납골당에...”
건식은 말을 하다 말았다. 건식을 쳐다보는 이혁의 두 눈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건식을 애원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자기가 다 말씀드릴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건식을 쳐다보고 있다.
건식은 오늘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