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의 감정노동, 색상=예쁜 민트라떼

겉으로 보는 게 다는 아닌 게 세상의 겉모습이다.

by OH 작가



겉으로 보기엔 참 색상이 예쁘다. 부드럽고 포송해 보이는 하얀 우유 거품 위에 밝고 은은한 초록빛이 둥글게 섞여 있다. 싱그럽고 초록한 게 색상은 참 예쁘다.


보고 있으면 색상이 예뻐서 맛도 싱그럽고 향긋할 거 같다.


그런데 민트의 맛이 호불호가 강한 거는 사실이다. 치약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고, 약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예쁘게 초록한 민트의 색상과는 다르게 민트의 맛은 그다지 달콤하다거나, 상큼하게 싱그럽지는 않다. 쓴 맛도 아닌 것이 살짝 뭔가 입 안의 냄새를 없애 주기 위해 기능성으로 만들어진 약품의 맛 같기는 하다.

호불호가 강한 게 민트다.


나도 그저 한 번, 민트의 예쁜 색상을 즐기고 싶어서 민트 라떼를 마셔 봤다. 싱그럽거나 달콤하거나 향긋하게 예쁜 맛은 아니지만 나는 가-끔 민트에서 개운함은 느낀다.








아침에서 어중간한 오후의 시간 때까지 파트로 일하는 매장의 캐셔 일은 매우 힘들지는 않다. 다만, 내 감정을 내려 놓아야 한다. 아무것도 느끼거나 담지 말아야 한다.


"셀프 계산대 싫다니까. 왜 일하기 싫어? 아침부터 재수없게, 셀프 계산대에서 하라고 지랄이야."


중년의 남자 손님에게 난 교육 받은 대로 일단 "카드는 셀프 계산대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강요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수 없다며 화를 내셨다. 그냥 셀프 계산대 하기 싫으니 그냥 현금 계산대에서 해 달라고 요청하셨다면 해 드릴 수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재수없다며 화를 내셨다.


어떤 젊은 여자 손님은 픽업을 오셔서 매장에서 픽업 준비중이라고 돼 있어서 아직 픽업 바코드가 생성돼 있지 않은 화면을 보여 주셨다.


"네, 고객님 아직 픽업 준비중이라고 돼 있네요."


"뭐라고요? 그럼 내가 기다려야 해요. 아니, 내가 지나는 길이라 일부러 들렸는데 나보고 기다리라는 거에요? 내가 지금 찾겠다고 왔잖아요."


부점장님이 옆을 지나가시다가 그 젊은 여자 손님을 조용히 양해를 구하고 데리고 나가셨다.


캐셔라는 일이 계산대 앞에서 짧은 순간에 처음 상대하는 타인들을 수십명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솔직히 아무 감정이 없다. 모욕적인 말인데 울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기분이나 감정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만다.

점장님이 "그렇게까지 말했어?"라고 놀라서 물으시는데, 그냥 냉소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네."라고 대답한다.


"뭐, 별로 할 말도 없고 뭐라 하기도 그래서 그냥 죄송합니다만 5번 한 거 같아요.'


어떤 여자분은 딱 하나 있는 현금(취소와 환불도 도와주는) 계산대를 힐끔하고 바구니를 끌고 셀프 계산대로 가서 잘 계산을 하는가 싶더니, 셀프 계산대 도우미로 옆에 서 있는 나 들으라는 듯 막 짜증을 냈다. 얼굴을 있는대로 찡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입력한 물건을 던지면서,


"뒤로 물건 떨어 졌어요. 빨리 주워줘요. 물건도 많은데 그냥 계산해 주지 왜 셀프 계산대로 가라고 그래. 짜증나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순간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 요즘 힘든 일이 있나 보지, 그러고 냉소적으로 넘기고 말았다.

방송일에, 이혼에, 내 감정이 많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나를 건드리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거 같다. 아니, 못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냉소적이 된 거 같다. 그냥 저러다 금방 갈 거니까, 나랑 상관 없는 사람이니까,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고 우연히 길거리서 만나도 아는 척 할 사람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나는 타인에 대한 감정을 무심하고 차갑게 밀어내고 있는 거 같다.


그게 스트레스는 많이 안 받아서 좋긴 하다.







민트 라떼처럼 세상 일이 겉보기의 색상과 입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맛이 똑같을 순 없다. 보이는 색상과는 다를 수 있다. 그게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겉과 속이다.


겉이 예쁜 초록색이라고 해서 속까지 그 초록색을 닮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감당하거나 인내하거나, 무심히 넘기며 살아야 하는 일들이 분명 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다.

겉과 속이 똑같지 않다해서, 겉으로 보여지는 세상과 속으로 부딪기는 세상이 다르다고 해서 굳이 주저 앉을 필요엉 없다. 그냥 그런 거다. 그것도 나름의 살아가는 매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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