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의 단맛은 어찌 보면 인생에 위로일지도 모른다.
나는 카페에서 커피에 얹어 주는 유 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달아서만은 아니다. 나에게 부글부글한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파트 알바가 끝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갔다. 아들의 학원이 끝나는 걸 기다려야 했다.
조금 늦은 점심 시간을 배당 받았을 때 아들 학원 시간 라이딩과 시간이 맞물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일을 하다 가 점심 시간이 되면 칼 같이 집으로 빠르게 걸어와 준비가 끝난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간다. 마지막 20분의 계약 시간을 마무리 해 주고 퇴근해야 한다.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산책을 하기엔 너무 춥고 부담 되는 날씨였다. 그래서 들어간 스타벅스였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주문한 프렌즈 시나몬 돌체폼 카푸치노였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슬며시 흘려 넣자마자 아차 싶었다. 몰랐다. 살짝 차가운 크림의 부드럽고 아주 살짝 단 맛이 밀려 들어 올 때 알았다. 우유 거품이 아니라는 걸, 유 크림이라는 것을.
커피의 독특한 진한 쓴 맛을 위로해 주는, 아주 살짝 단 그 유 크림의 맛이 어찌 보면 위로의 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유 크림의 단맛이 싫은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조금씩은, 아주 조금씩은 필요한 섞임의 맛일 수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정신 없고 피곤함을 느낀다. 그 피곤함 속에서도 나는 이제 항상 나를 다독이고 주입한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 있으라는 거 보니 잘 될 거야.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 나는 잘될거야. 잘 살 거야."라고.
어릴 때부터 대부분 알아서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누가 시키고 가르쳐 줄때까지 기다리는 성격이 아닌 건 맞았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노력하면 되는지, 혼자 생각하고 스스로 찾아서 노력하는 스타일의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엄마의 아들과 딸을 대하는 차별, 평탄하게 고생 없이 자란 성장 과정, 방송 작가일, 결혼, 출산, 이혼, 생활고를 겪으며 안 그래도 독한 면이 있는 내가 더 단단해진 거 같기는 한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지칠 거 같은 피곤함을 잔뜩 느낄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이니까.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잘 못하는 내가 이혼하고 생활고 겪으며 참 많은 분들의 따스한 도움의 손길을 받았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결국 나 혼자 만으로는 안 될 때도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인생의 어떤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나 혼자만의 강한 멘탈과 점점 독하고 단단해지는 정신력 만으로는 이 현실을 다 이겨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반면 자식이 이제 버겁고 부담 된다며, 나의 노후와 돈이 제일 중요하다며, 얘기도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다는 확실한 그 표정과 행동을 온전한 상처로 받아들였다. 엄마의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로 나는 남동생과 다르게 부모 돈이라도 항상 갚아야 한다는 실천으로 살아 왔다. 부모에게도 내가 남동생 보다 더 노력해야 그나마 칭찬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지킬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 그러한 것들이 나를 내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노력하는 성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주변 타인들의 따스한 온기와 가족이라는 냉정한 차가움을 동시에 체감했다. 제일 힘든 순간에 어차피 세상은 내가 해결하고 감당하며 책임지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뼈져리게 느꼈다.
어느 것이 정답은 아니다. 인생은 여러가지가 같이 공존하니까. 한 가지 만으로 경험 되고 살아지는 삶은 없는 거니까.
말 그대로 나는 작년 일 년 동안 정말 다양한 경험의 감정들을 겪은 한 해였다. 상황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카페에서 커피에 사용하는 살짝 차갑고 너무나도 부드러운 유 크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 유 크림을 입 안으로 흘려 넣고 소화 시켰을 때 내가 느껴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인생에서 그 독특한 쓰디씀으로 자리 잡은 커피 원액에 살짝 차갑고 너무나 부드럽게 단 유 크림은 위로의 틈새일지 모른다. 부드럽고 담백하게 얹어져 그 쓴맛을 감싸주는 우유 거품과는 또 다르게.
정말 다양한 표정과 사연과 감정들이 존재하는 우리의 삶이 그래도 살아 있으면, 살아 남아 있으면 너에게 오는 보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잘 될 거라고, 나를 달래고 날르 붙잡아 주는 정신력의 긍정적인 보상 같은 틈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