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ADA MOMENT_32. 쉼

by 오하다 OHADA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이상한 불안에 사로잡혔다.

‘황금 연휴니까 알차게 쉬어야해’


하루종일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급하게 해외 항공권을 검색하고, 제주도의 감성 숙소를 들여다보고, 인스타에서 핫한 대형 스파를 비교했다.


그러다 문득 쉬는 일에서조차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발견했다.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잠시 생각하다 스마트폰을 덮어버렸다.

처음으로 아무 계획 없이 연휴를 맞이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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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해가 떠오를 무렵 스마트폰 알림없이 눈을 떴다.

집 안은 고요했고,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잠옷 차림으로 차를 마시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쌓여 있던 침전물들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2년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공기청정기를 분해해 물로 씻어냈고, 세탁기와 건조기의 필터를 털어냈다. 가구를 들어 올려 바닥을 쓸고 닦았다. 걸레에 닦여나가는 먼지만큼 묵은 감정이 함께 녹아나갔다.


청소를 마친 뒤 집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다.

0도의 찬바람이 코를 지나 폐 깊숙이 스며들어 상쾌하게 쓸어내렸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났다. 숨을 쉰다는 감각이 이렇게 선명했던 적이 있었던가.


한동안 미뤄뒀던 명상을 하고,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푼 뒤 산책삼아 동네 시장을 걸었다.

연휴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쾌한 웃음, 흥정하는 소리, 부스럭대는 과일 봉지, 뜰채에 건져진 새우의 파닥임.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의 자리에 생기가 가득 차올랐다.


5일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렀다.

정오의 햇살 아래 그대로 잠들기도 했고, 유명 셰프의 레시피를 따라 짜파게티를 끓여보기도 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충분했다.


연휴가 끝난 출근길 아침,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피부에선 윤이 났고, 눈가엔 느슨한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나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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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쉼을 종종 숙제처럼 받아들인다.

SNS에 올릴 핫플 카페에 가고, 유명한 식당에 기계적으로 줄을 서며 그것을 '쉰다'고 부른다.


사진은 잘 나왔나? 다음은 어디갈까?

시간 아까우니 더 효율적으로 놀아야 해!


쉼마저 성과가 되어버린 숨가쁜 시대.


숏츠라도 봐야 덜 불안하고, 뭐라도 해야 주말이 헛되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우리.

몸과 마음이 진심으로 원하는 휴식이 정말로 이것일까?


어쩌면 진정한 쉼이란

나를 몰아세우던 속도를 잠시 멈추고

해야 한다고 믿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오는 일이 아닐까.


무엇도 재촉하지 않는 시간.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상태.

내 안의 소음이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머무는 고요.


가끔은 전혀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 속도로도 충분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외부 자극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내 얼굴을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휴식은 꼭 생산적이지 않아도 좋다.

근사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몰아세우던 모든 ‘해야 함’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비어 있는 나 자신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


쉴 때만큼은 기꺼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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