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

오하라의 온:살롱

by Ohara


날씨가 선선해지는 요즘, 나는 보리차를 끓인다.


여름에는 상할까 걱정되어 생수를 대신 마셨지만, 플라스틱 병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잘 분리수거하면 재활용될 거야."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의 하루는 보리차를 두 번 끓이는 일로 시작된다. 귀찮기보다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작은 환경 보호라도 실천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보리차를 매일 끓이는 이 습관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유난 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때는 그런 말에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웃어넘긴다. 타고난 성향이니까.


어릴 적, 부모님이 보리차를 끓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큰 주전자에 찬물을 받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볶은 보리를 쇠망에 담아 넣으셨다.

10분쯤 지나면 주전자에서 '삑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나면, 나는 후다닥 달려가 가스 불을 줄였다. 주전자가 터질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늘 큰언니를 먼저 부르셨지만, 정작 움직이는 건 귀가 밝았던 나였다.


여름이면 식힌 보리차를 훼미리 주스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겨울이면 주전자째 뒷베란다에 두었다.

그렇게 매일 끓여 마신 보리차는 언제나 시원하고 구수했다.


결혼 전까지 나는 물을 사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나 결혼 후 바빠지면서 보리차를 끓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생수를 사다 먹게 되었다.

캐나다로 아이들과 유학을 오면서, 다시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문득, 시원한 보리차가 그리워졌고, 아이들에게도 그 맛을 전해주고 싶어졌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보리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보리차는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루 두 번씩 보리차를 끓여 식히고, 냉장고에 보관했던 부모님의 헌신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퇴근한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가장 먼저 주전자를 확인하셨다. 보리차가 없으면 직접 끓이셨다.

+

'어떻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끓이셨을까?'


내가 직접 해보니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 나는 전기주전자를 사용해 보리차를 끓인다.

편리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예전처럼 따뜻한 추억이 남진 않을 것 같아 조금 아쉽다.


가끔 귀찮거나 깜빡해서 인덕션에 물을 올려놓고 외출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전기주전자를 들였다.


전기주전자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꺼지니 안전하다.

하지만 그만큼 정성이라는 감정은 조금 덜 담긴다.


요즘 아이들을 위해 보리차를 끓이다 보면, 부모님의 반복되는 성실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편안함과 사랑을 누렸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그 일상의 무게를 안다.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신기하게도 내 아이를 위해서는 어디서든 힘이 솟는다.


보리차를 끓이는 일.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보리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추억이고, 사랑이고, 힐링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는 오늘도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끓인다.


그리고 소망한다. 언젠가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엄마가 끓여주던 보리차를 기억해 주기를.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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