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의 온:살롱
"엄마, 물병 좀 깨끗이 닦아줘. 뭐가 묻어 있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게 말했다.
"깨끗이 닦았는데..."
다음 날, 아들은 물병을 꺼내 놓으며 또 불만을 표시했다.
"엄마, 물병이 더러워!"
"깨끗이 여러 번 닦았는데..."
'분명히 닦았는데 왜 자꾸 그러지?'
속으로 생각했다.
그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채 물병을 다시 닦으며 투덜거렸다.
"예민한 녀석."
몇 달이 지나 안과에 시력 검사를 하러 갔다. 눈앞이 침침하고 뿌옇게 느껴져 혹시 눈이 나빠졌나 싶었다.
"노안이시네요. 안구가 많이 건조하고 가까운 글씨도 잘 안 보이실 거예요."
그 말에 당황스러웠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노안이라니.
사실 최근엔 휴대폰, 컴퓨터, 책을 보기 힘들었지만 집중력이 떨어진 탓이라며 자책만 했었다.
돋보기를 맞추고 집에 와 책을 읽어보니, 글씨가 또렷했다. 컴퓨터 화면도 선명했다.
물병을 꺼내 아들이 불평하던 뚜껑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오래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점심시간에 물을 마시려 물병을 열었는데 뚜껑에 낀 물때가 보였다. 너무 창피해서 얼른 덮어버렸다.
그날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물병 더러워. 왜 이렇게 안 닦았어!"
"잘 씻었는데? 뭐가 묻어 있어?"
다음 날도 여전히 더럽게 느껴졌고, 결국 내가 스스로 닦기 시작했다.
그때 엄마는 잘 닦았다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정말 안 보였던 거라고. 지금의 나처럼.
돋보기를 끼고 아들의 물병 뚜껑을 들여다보니, 어릴 적 내가 보았던 그 물때가 그대로 보였다. 뜨거운 물과 얇은 솔로 구석구석 닦으니, 물때가 사라졌다.
'아... 엄마도 그랬구나. 안 보여서 몰랐던 거구나.'
물병을 닦으며 엄마를 떠올리니 눈물이 났다.
며칠 후 아들이 말했다.
"엄마! 물병 깨끗하네!"
"응. 엄마가 돋보기 끼고 봤더니 진짜 더럽더라. 안 보였어. 나도 이제 나이 들었나 봐.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주네. 그리고, 이제는 네가 닦아라. 엄마도 힘들다, 이 녀석아."
내 마음은 여전히 뜨겁고 열정적인데, 몸은 점점 늙어가고 있었다.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해 마음은 과거에 머물고, 몸은 현재의 상태를 알려준다.
삶이 제대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이 듦이란 결국 마음과 몸의 속도를 조율해 가는 과정이다. 급하게 달리면 몸이 멈추라고 신호를 보낸다.
돋보기를 쓰게 만들고,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숨을 고르라 말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은 과거를 자주 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이 듦이 말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오하라의온:살롱 #물때 #육아에세이 #엄마의성장기 #인생성장기 #삶의지혜 #브런치스토리 #삶과성장 #따뜻한글 #힐링에세이 #새로운시작 #일상글 #성장이야기 #치유글 #브런치작가 #힐링글 #치유글 #에세이스트 #마음챙김 #힐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