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다른 말. 똥.고.집

오하라의 온:살롱

by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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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눈다래끼가 심해져 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캐나다에서는 웬만해선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데, 오랜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답답했다.


얼른 항생제를 먹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사는 따뜻한 찜질과 청결 관리를 권하며 약품 묻은 티슈와 찜질용 안대만 처방해 주었다.


며칠 후, 딸은 더 큰 눈다래끼가 생겼다. 결국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약 좀 보내줘. 다른 건 필요 없고, 약만. 먹을 거는 보내지 말고, 조미김 두 팩만."


엄마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잔소리처럼 신신당부했다.


다음 날,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박스가 남아서 과자 몇 개 넣었다."


나는 약만 받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늘 내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결국 예상보다 훨씬 비싼 국제배송비를 지불하고, 일주일 후 커다란 박스가 도착했다.


마이쮸, 고소미, 자색고구마튀김, 검정콩튀김, 조미김, 북어, 생강젤리... 그리고 딸아이 약봉지.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택배 잘 도착했어."

"그래? 빨리 갔네!"

"응, 그런데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 다 누가 먹어. 애들도 다 커서 이제 잘 안 먹어. 자기들이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고.."


물건 값보다 더 비싼 국제우편으로 받은 큰 박스를 바라보다 짜증이 치밀었다.


'정말 내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렇게 엄마에게 짜증이 난 채 일주일쯤 지나, 중학교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엄마에게 짜증을 냈던 것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 친구 어머니는 우리 엄마와 동갑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늘 건강하시리라 믿었지만, 부고 소식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생과 통화하며 하소연했다.

"엄마 진짜 내 말 안 듣는다. 배송비 줄이자고 했는데, 결국 잔뜩 보내셨다니까."


동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 나도 얘기 하나 해줄게."


코로나 때 동생이 기침감기로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동네 병원에서는 모두 거절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보건소에 서른 번 넘게 전화를 걸어 결국 입원가능한 병원을 연결해 주셨다.


그러나 동네 병원에서 증세가 좋지 않다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갑자기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병원에 들어가지 못한 동생은 차가운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동생과 제부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하면서 나이 드신 엄마께 코로나가 위험하니 병원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딸의 부탁을 들어줄 엄마가 아니었다.


응급실로 걸오는 길.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인 채 주저앉아 있는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아저씨! 저 애 너무 추운데, 이러다 얼어 죽겠어요. 담요라도 좀 주세요."


엄마가 몇 번이고 소리치자, 그제야 경비원이 담요와 보온병을 건넸다.


그 추운 날 두 시간 반 동안 응급실 앞에서 딸을 지켜봤다고 했다.


동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엄마에게 느꼈던 짜증과 서운함이 미안함으로 바꿨다.


'나는 왜 이렇게 엄마한테 늘 화가 나는 걸까?'


미안함에 눈물이 터졌다.


딸아이가 내 방에 들어와 울고 있는 나를 꼭 안았다.


"엄마, 왜 울어?"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울고 싶으면 울어. 실컷 울어도 돼."


딸 한마디에 그간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처럼 터지고 말았다.

그날,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다.

일상이 바쁘고, 사회 속에서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곳, 타향에서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타향살이는 외롭지만, 그만큼 자유롭기도 했다.


요즘은 영상통화 중에도 엄마와 말다툼이 잦다. 엄마는 여전히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 말들이 가끔은 내 가슴을 쿡 찌른다.


오늘, 사춘기 딸이 이유 없이 나에게 화를 냈다.

'이유가 있겠지.'


나는 오늘만큼은 참아보기로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립지만, 동시에 통화 중에 쉽게 화가 나버린다. 사랑과 미움, 감사와 서운함이 뒤섞인다.

나는 엄마의 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여전히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사람이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그저 안아주는 신과 같은 존재의 엄마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신이 너무 많은 인간을 도울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인간에게 보내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어떠한 시련에도 꿋꿋이 버텨나가는 불도저 같은 모습을 가지고 계신 건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멀었다.


하지 말라는 것, 오지 말라는 것, 사지 말라는 것 어느 하나 들어주지 않은 엄마라는 이름의 다른 말은 똥고집 맞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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