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의 온:살롱
며칠 전,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한국 시간에 맞춰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42년생 아버지는 늘 따뜻하지만 서툰 애정 표현과 눈빛으로 딸과 손자, 손녀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항상 할 말이 없다며 엄마에게 전화기를 넘기셨다.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귀를 쫑긋 세우고 모녀의 대화를 엿듣다가, 엄마의 말 한마디에 가끔 추임새를 넣으셨다.
'그럴 거면 직접 통화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바꿨다.
어색한 말투로 전화를 넘겨받은 아버지는 "엄마랑 통화하지, 뭘 또 통화하냐"며 쑥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과 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얼굴이 푸석하다?”
“응,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딸과 더 긴 대화를 하고 싶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긴 대화에 서툴렀다. 직접 말하기보다는 모녀의 대화를 옆에서 듣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은 가까이 있지만 멀리 느껴졌고, 냉정한 듯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사랑이 넘쳤다.
요즘 말로 츤데레의 대표 주자였다.
주 6일 근무제였던 그 시절에도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면 무조건 6시에 일어나셨다.
아침 식사를 하시고 카메라를 챙겨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어린이회관극장, 한강 스케이트장, 국립박물관,
과학박람회, 어린이대공원, 독립기념관 등 다양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가셨다.
그때는 왜 주말마다 밖으로 나가야 했는지 몰랐고, 가기 싫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이회관 극장에서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 시리즈, 만화영화와 외화를 아버지와 함께 본 기억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만, 이곳저곳 다닐 때마다 아버지가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야야, 똑바로 서, 여기 봐, 하나 둘 셋!" 하던 순간들은 귀찮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남긴 수많은 사진이 지금은 중년의 내 삶에 작은 기쁨이 돼주었다.
한 번은 KBS홀 견학을 가는 택시 안에서 동생이 구토를 했다. 택시 기사님은 화를 내며 차가 더러워졌다며 고함을 쳤고, 아버지는 미안해하시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기사님께 소리를 지르셨다.
“애가 토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하냐고! 치우면 되잖아!”
아버지는 맨손으로 동생이 토한 것을 닦아내셨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신 건, 딸이 울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아버지는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운동하시며 "100살까지 살아서 손자 손녀 결혼식도 봐야지" 하신다.
덕분에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신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아버지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보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와 엄마가 더 아파하실까 봐 참는다.
나는 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따뜻한 추억들이 지금 내 삶의 큰 버팀목이 되어 있다는 걸.
'아버지도 저렇게 건강히 버티시는데, 나도 버텨야지.'
고난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그 원천은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온 것 같다.
항상 우리 곁에서 건강히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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