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의 온:살롱
요즘 부쩍 짜증이 늘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화가 많은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별일 아닌 일에도 화가 나고, 그 화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젊은 시절엔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못 참고 언성을 높이는 어른들을 보면 속으로 비웃었다.
‘나이 들면 이해심이 커지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질 거야.’ 나는 그땐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도 40대 후반.
나는 점점 속이 좁아지고, 예전엔 참고 넘겼을 일에도 쉽게 화가 난다. 감정이 고통받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자주 목소리가 높아지고,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불쾌한 말만 던지는 지인,
무례하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
예전엔 “성격이려니…” 하며 꾹 참았지만, 이젠 참을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 "네가 참아라."
그래서 화가 나도 꾹 참는 게 미덕이라 믿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됐다. 그렇게 참기만 해선 정작 내가 불편하고, 내가 불행하다는 걸.
속 좁은 내가 괜히 죄책감에 사로 잡혀있는 이유는 그간 나를 억누르던 비합리적인 신념들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의 말은 곧 진리이자 신처럼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진리를 거스르는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나는 가끔 정색도 하고, 때로는 욕도 한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너 많이 까칠해졌어.”, “예전 같지 않아.”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 좋다.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 생각을 말했을 때 “넌 너무 예민해.”,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둬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인연이 아니라, 정리해야 할 불필요한 짐이다. 그간 참고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에, 이제야 겨우 말문을 트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갱년기’나 ‘예민함’이라 치부한다.
그 말조차도, 이젠 불쾌하다.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나를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그들에게 맞춰주지 않으니까. 결국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를 존중해 주던 사람들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정리하자 비로소 나에게 진심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무례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늘 자기 방식대로 살면서 남의 삶에 간섭한다.
그걸 ‘걱정’이라고 포장하지만, 그건 걱정이 아니라 참견이고 지적이다.
본인의 걱정이 아무리 옳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모든 생각은 주관적이다. 당신에게 맞는 삶이 타인에게도 옳은 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거절도 잘하고, 화도 낼 줄 알고, 나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살다 보면 대부분의 감정은 정말 사소하고 별일 아닌 게 된다.
그렇기에, 중년의 나는 그렇게 화가 많은지도 모른다. 그동안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참고만 살아왔으니까.
젊은 시절, 화를 내는 어른들을 보며 참 못나 보인다고 생각했던 나.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는 그때가 옳았고, 지금은 지금이 옳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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