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_ 일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어릴 적 자주 부르던 동요였다. 어릴 적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할머니가 막걸리를 드시는 날이면 "노래 한 자락 해라"라고 하시니 나는 할머니 앞에서 동요를 신나게 불렀다.
문득 잊고 지냈던 동요의 한 소절에서 할머니가 생각났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친할머니의 막걸리 심부름은 언제나 나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폿집이라고 불렸던 것 같고, 나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오른쪽으로 스르륵 열리는 문으로 밀고 들어가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고 간 주전자를 받아 막걸리를 부어주셨다. 할머니는 요즘말로 동네 인싸였다.
할머니가 주신 동전을 아주머니께 전해 드리고, 나는 신나게 집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막걸리 맛이 궁금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누가 볼까 무서워서 한쪽 구석으로 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막걸리가 무거워 잠시 쉬는 것처럼 위장하며 치밀하게 행동했다.
차마 주전자 뚜껑을 열어 마셔볼 용기가 없어서 새끼손가락을 살짝 주전자 주둥이 속에 넣어보았다. 손가락에 닿지 않자 주전자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기울어진 주전자 주둥이 사이로 찰랑찰랑 넘칠 듯 말듯한 막걸리를 향해 내 검지손가락을 천천히 밀어 넣어 찍은 후 입에 대어 보았다.
‘우웩, 이게 무슨 맛이야? 쓰다.’
나는 후다닥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내달렸다. 할머니께 막걸리를 전해드리니
"애기야, 오봉 좀 가져오니라!"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은 양은 국그릇을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가져다 드린 국그릇에 막걸리를 붓고, 할머니는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캬, 맛나다!"
"할머니, 맛있어?"
"응, 맛있어."
나는 할머니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먹어보고 싶어."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먹어 볼 테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머니는 권위적인 분이 아니셨고, 자매들과 장난도 치며 재미있게 지내곤 했기에 내가 술을 먹고 싶다고 했을 때 혼날 거라는 생각보다 어린애가 술을 마시면 머리가 나빠지거나 몸에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주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막걸리를 큰 냉면 사발에 3분의 1 정도 담으시고,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병과 설
탕 두 숟가락, 마지막으로 얼음 세 덩이를 넣고 휘휘 저으신 후 숟가락을 3개 꼽았다.
"이리 와봐."
거실에서 TV를 보던 언니와 셋째 그리고 나는 모두 할머니 방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냉면사발에 담긴 뽀얀 막걸리에 담긴 숟가락을 응시했다.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담김 막걸리에 입을 가져다 댔고, 숟가락이 입술 가까이 오자 코끝으로 밀려오는 달콤한 향기에 반해버렸다.
"우와! 맛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막걸리를 처음 맛보게 되었다. 그 느낌은 환상의 맛이었다. 부드러운 우유에 설탕이 탄 맛 같았고, 요즘 시대의 밀키스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의 막걸리 배달 중 몰래 훔쳐 먹었던 그 맛은 뭐지라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할머니가 제조해 준 막걸리를 우리 셋은 신나게 퍼먹었다.
우리는 종종 할머니가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면 할머니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 할머니표 제조 막걸리를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술을 먹인다는 사실을 엄청 싫어했기에 몰래 숨어들었던 것인데,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일탈의 중심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담배도 피우셨는데, "청자"라는 담배를 좋아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88로 담배가 바뀌었고, 주말에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를 보러 친척들이 자주 오셨다.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담배 한 보루와 과일을 사 오셨고, 손님이 많을 때는 담배가 세 보루나 한꺼번에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담배가 많이 생기는 날에는 할머니는 남은 담배를 가지고 집 앞 슈퍼로 가서 현금으로 바꿔서 우리에게 과자를 사주시곤 하였다.
주말마다에 치러지는 손님맞이. 집안은 늘 북적였고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할머니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시던 지인분들이 돌아가실 시간이 되면 부모님과 할머니는 문밖까지 배웅을 나가셨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할머니 방으로 쪼르륵 들어갔다. 맛있는 과자나 간식이 남아 있으니 그걸 먹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재떨이에 피다 남은 담배꽁초가 미세하게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미세하게 올라오는 담배 연기는 마치 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만 할머니의 담배를 집어 들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담배를 입에 대기도 전에 코로 들어온 담배 연기로 기침이 시작되었다. 너무 놀라 꽁초를 재떨이에 내려놓고 할머니 방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아주 긴 시간의 이야기 같았지만 사실 2분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다. 심장은 이미 정수리와 미간, 손목, 목 뒤, 발목까지 진동하며 터질 듯 뛴다. 아무 일 없던 듯 할머니 방을 지나 부모님이 계신 마당 쪽으로 나가
아무렇지 않은 듯 어수선하게 뛰어다녔다.
중학교 1학년 가을 점심시간이 지나 지루한 도덕 수업을 듣던 중 교실 앞문에서 선생님을 어떤 분이 찾아오셨고, 잠시 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집에서 연락이 왔어. 얼른 집으로 가봐야 할 거 같다."
나는 직감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리움이라는 것도 생겼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느 밤 자매들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 담배 몰래 피운 사건에 대한 고백'을 시작으로 네 자매 모두 할머니의 담배를 피워봤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할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요즘 나의 감정은 사춘기 소녀처럼 기쁨과 슬픔, 우울함, 숨 가쁨, 화남, 짜증, 미안함을 반복하며 하루에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할머니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듯해진다.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인 어른도 나를 온전히 지지해 주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지금 나의 불안은 그저 사춘기 소녀적 불안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춘기의 불안은 내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중년의 사춘기는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생간 한다.
그래서 중년의 어른에게도 마음을 응원받을 더 큰 어른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할머니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