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_ 일상
"엄마. 고민 있어!"
"뭔데? 말해 봐."
"근데 아무런 말하지 말고 내 얘기만 들어줘."
"알겠어."
딸아이의 고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아이의 이야기가 한 시간쯤 흘렀을까? 중간중간 아이의 말을 끊고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약속한 것이 있어 꾹 참았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의 위로가 필요하겠구나 싶어 한마디 덧붙였다.
"엄마!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들어달랬더니, 또 잔소리야!"
"잔소리는 무슨 잔소리야. 엄마는 네가 걱정돼서 말해준 건데..."
당황스러웠다. 딸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고, 위로를 해주었을 뿐인데 잔소리라니.
'못된 녀석, 어미 속도 모르고...'
딸아이의 사춘기 변덕을 치부하고, 아이와 함께 있다가 큰소리가 날까 싶어 자리를 피했다. 집밖으로 뛰쳐나와 심호흡을 했다.
'이그, 못된 녀석. 사춘기라고 정말...'
혼자 씩씩거리며 집 근처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올라온 화가 점점 사그라들며 속에서 갈등이 든다.
'그런데 딸은 왜 화가 난 걸까? 내가 뭘 잘 못한 거지? 대체 어떤 위로가 필요했던 걸까?'
문득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와의 카톡 내용이 떠올랐다. 75세의 나이지만 유독 스마트폰 활용을 잘하시는 엄마. 세상의 온갖 좋은 글, 명언에 관한 동영상과 사진들을 수시로 보내신다.
“멀리서 사는 딸이 고생하는 게 안쓰럽고 걱정되니까 마음을 비우고 살라며…”
그러나 전해주는 글들과 동영상 메시지들을 보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이고 잔소리 또 시작이시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엄마가 보낸 동영상과 사진, 좋을 말씀들 위에 따라오는 짧은 메시지들은 늘 이랬다.
《누구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중략) 뿌린 대로 거두는 현실을 직시하고 겸손하게...(중략) 사람은 자기 복대로 산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중략) 착하게 살아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꼭 두들겨 보고 건너거라. 파이팅 (하트)(하트)(하트)》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메시지는 마음속에 울림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결국 내 선택이 또 틀렸다는 걸 말씀하신 거로구나.' 생채기 난 내 마음에 소금을 뿌리듯 아프고 내가 선택한 캐나다의 삶을 언제나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문자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상대를 위한 위로와 공감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본인이 하고 싶은 조언과 충고들. 하나부터 열까지 옳을 말들 뿐이었다.
75세의 어머니는 여전히 딸을 독립시키지 못하고 본인의 품을 벗어나려는 딸을 끌어들이려만 하고 계신 듯하다.
47세의 딸은 엄마 그늘에서 완전한 정서적 독립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애어른들이 수두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