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느라 잠시 서툴렀을 뿐

과거를 다시 보라 4

by 오하루


흔들린 시간을 자책하지 말자.

갈팡질팡했던 길 위의 시간은

한 사람 분량의 삶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자라느라 애썼다. 정말 애썼다.

그 사실 하나로도 충분히 대견하다.



✒️ 다시 쓰는 인생 질문

서툴렀던 시절을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시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배움은 무엇이었나요?




☘️ 작가의 해답 에세이


서툴렀던 시절에 대해 생각하면, 중고 신입으로 뷰티브랜드 마케팅팀에 입사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마케팅에 입문했습니다.

작은 주간지 신문기자, 학원 강사, 일반 기업 운영팀 직원으로 짧은 기간씩 근무했던 경력만 있었죠.

흔히 말하는 '중고 신입'이었습니다.


이 브랜드에 지원하면서 보니 지원자가 무려 300명이 넘었었는데요.

간절함이 통했는지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저 같은 마케팅 무경력, 중고신입이 뽑혔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꿈같은 합격의 기쁨도 잠시, 덜컥 겁이 나더군요.

'수습 3개월 동안 내 실력이 들통나면 정규직이 되지 못할 텐데' 하고 말이죠.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갖은 미사여구로 저를 포장했고요.

대표님 면접도 실력이나 성과를 어필했다기보다 '이미지'와 '말빨'로 통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 볼 때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떠올랐어요.


이런 불안이 잠재된 상태로 두 달가량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제게는 이런 버릇이 새로 생겼습니다.


상사에게 모자란 것을 들킬까 봐 초조함과 긴장감 속에 일하고,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다가 '이것도 몰라?'라며 낮은 평가를 받는 걸 회피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가끔 실수 한 번이라도 하면, 그 실수가 오래도록 저를 괴롭혔어요.

사람들은 제 실수를 이미 잊었겠지만, 저는 그것을 몇 날 며칠 동안 되새기며 자책했습니다.

아주 유능한 입사 동기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요.


특히 밤이 되면 하루 동안 잘못했던 일을 곱씹었습니다.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다가 새벽에 겨우 잠들었어요.


그런 어느 날, 대표님 앞에서 개별로 아이디어 발표를 하게 되었어요.

어찌 보면 중간 평가인 셈이죠.

주제는 화장품 샘플링 방안이었습니다.

저 포함 입사 동기 세명과 1년 차 사원 한 명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뷰티업계도, 마케팅도,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것도 처음인 초짜였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경쟁사 서칭을 하고 제 아이디어를 넣어서 PPT에 정리했어요.

하다 보니 많이 거창하게 되었고 PPT 디자인에도 엄청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발표 전날에는 새벽 두 시까지 고치고 정리하고 발표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발표 직전에 가서야 '아, 알맹이는 적은데 포장지만 크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수정할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발표를 하게 되었죠.


역시나 대표님은 딱 한마디 했습니다.


“이거 하나는 쓸만하네.”


대표님이 말한 ‘이거’는 샘플에 동봉할 엽서에 QR코드 넣기입니다.

며칠 동안 애써서 길고 긴 PPT를 만들었지만 딱 하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만 인정받은 것이죠.

다른 동기들과 선배들 앞에서 너무 부끄러었습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요.


반면, 1년 차 사원의 아이디어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좋았습니다.

낮은 비용으로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죠.


발표를 했던 날 밤.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바보같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도 못하니? 이 멍청이야! 회사입장에서 좋은 게 뭐겠어? 적은 제작비로 멋지게 보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야지! 아이디어만 딱딱딱! 핵심을 얘기해야지.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못난 나를 탓하며 이불킥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표님께서 모든 팀원을 한 자리에 모아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했습니다.


“S는 카피를 잘 써. 광고 쪽 출신답게 아이디어가 좋아. J는 경력직이라 뷰티를 잘 알고. 그런데 하루는… 확실히 경험이 없는 게…….”


말 끝을 흐리며 저를 쓱 쳐다보는 대표님의 그 눈빛.

와르르 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역시 나는 부족하구나. 이렇게 실력이 들통났으니 정규직은 절대 못되겠구나.'


평가를 듣고 하루 종일 울음을 꾹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서부터 펑펑 울었죠.


앞으로 뷰티업계에서 일할 수 있을지, 마케팅 재능이 영 꽝인 건지.

이제야 부모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조금은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또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지

온갖 자책과 걱정에 괴로웠습니다.


스스로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지각 한 번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광고 카피를 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카피는 SNS 캠페인 영상에 그대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누구 하나 '카피 괜찮았다, 좋았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열심함은 무가치하게 느껴졌어요.

허무하고 절망스러웠고요.

'무능력한 노력가는 직장에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제 걱정과 다르게, 다행히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3년 7개월을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5년 후. 굉장히 놀라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제 사수였던 분과 저녁을 먹었는 자리였는데요.

저는 그때 일을 언급하며 부족한 저를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 사수는 놀라며 말했죠.


“하루 씨 평가가 가장 좋았는데, 몰랐어? 태도, 기획안 정리하는 거, 배우는 속도. 이런 거 두루두루 밸런스가 좋다고.”


그 말을 듣고 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비난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를 책망하고 다른 사람과 사사건건 비교했다는 걸요.

나에게 던진 비난과 객관적인 사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서툴렀던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서투른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모르면 안 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저를 옭아맸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처음 시작할 때, 서투름은 당연하다는 것.

'처음이지만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 잣대로 자기를 비난하지 않을 것.

서툴렀던 시절을 지나왔기에 지금 능숙한 내가 있다는 것.

나 자신뿐만 아니라 서툰 누군가를 볼 때도 이러한 마음으로 품어줄 것.


서툴렀던 시절을 지나오면서 제가 얻은 깨달음들입니다.


여러분의 서툴렀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그 시절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여러분의 서툴렀던 시절을 다시 써보며, 자신을 인정하고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 <다시 쓰는 인생>은 자신과 대화하는 내면 대화 에세이입니다. 문장을 읽고, 질문에 답하면서 여러분의 해답을 발견해 보세요!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오래 남는 건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