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자주 무너지고, 매번 일어나고 있습니다.

걸뱅이도 아니고 왜 장날만 되면 장에 가냐

by 오비채

10. 걸뱅이도 아니고 왜 장날만 되면 장에 가냐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엔 5일장이 있다. 작은 도시였고 우리가 쉽게 말하는 시골이었다. 어릴 때 이사를 가서 20대 초반까지 살았던 소도시인데 그곳은 시골이라 5일장이 열렸었다. 그리고 나는 장날 구경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장날마다 장에 가면 북적북적 사람들은 많고 텅 비었던 거리들에 좌판들이 쫙 깔려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신이 나는 것이다.



시장 입구부터 평소엔 잘 가지 않는 출구(정식적인 출구는 아님)까지 꽤 긴 거리를 나는 친구들과 천천히 구경하며 거닐었다. 평일에 열릴 때마다 하교 후 친구들과 장구경을 갔는데 갈 때마다 늘 재밌고 즐거운 게 신기하기도 하다.



여러 상인들은 구경 한 번 해보시라, 맛 좀 한번 봐보시라 하며 흥겹게 말하고 있다. 그 사람들 많고 정신없는 사이를 지나면서 매번 봐도 재밌고 신기한 물건들을 하나씩 구경하며 친구들과 수다 떨고 중간중간 먹거리를 파는 좌판에서 맛보기로 내놓은 것들을 하나씩 먹어보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장사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에게 이거 맛있다고 따봉을 날려주면 기분이 좋아진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더 먹으라고 하시기도 하고 다른 걸 내어주시기도 한다. 까르르 까르르 여학생들은 하나씩 더 맛보며 그들과 웃고 떠들며 정감을 쌓는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유명하고 큰 장도 아니었기에 시골에서 하는 오일장이기에 그곳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지역주민들이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주일에서 이주일 텀을 두고 항상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 잘은 몰라도 왠지 친근하고 정감이 갔다.



근데 그렇게 장구경을 갈 때마다 아빠는 매우 싫어했었다. 시골이기에 어딜 다니던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멀리서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빠는 내가 장구경만 가면 사람들이 ‘장에서 니 큰딸 봤다’라는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그게 창피한 거다. 학생이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마주쳐야 하는 것을 매번 장이 열릴 때마다 '장에서 니 딸 봤다'라고 하는 게 싫은 거다. 그러면서 그럴 때마다 나한테 매번 이렇게 말을 했다. ‘걸뱅이도 아니고 왜 장날만 되면 장에 가는 거야’라고 말이다. 걸뱅이는 거지라는 뜻인데 예전에는 거지들이 장이 열리면 항상 갔었나 보다. 그러면서 ‘걸뱅이처럼 자꾸 장에 가지 말고 학생이면 도서관이나 이런 데를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말을 듣지 않고 평일에 오일장이 열리면 친구들과 장 구경을 갔고, 주말에 열리는 날이면 아빠에게 장구경을 가자고 했다. 진짜 미친 장날 집착소녀였던 거다.



장구경을 가서 뭘 사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난 그저 장구경이 좋았을 뿐. 그래서 간혹 아빠랑 갔을 때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라고 했지만 내 의지로 무언갈 샀던 적은 없었다. 장의 입구에서 마지막 끝까지 걸어가면 끝에는 동물들을 팔고 있다. 그곳은 입구와는 다르게 뒤로 갈수록 사람들도 많이 없어지고 점점 후미지고 어둡고 약간은 더러운 뒷골목 느낌이 난다. 항상 있는 건 새끼강아지인데 나는 갈 때마다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을 보는 게 힘들었다. 더럽고 녹슨 철장 안에 너무나 작고 귀여운 새끼강아지들이 들어있는데 사람이 다가가면 미친 듯이 애교를 부린다. 나는 그 모습이 힘들었다. 강아지 말고도 닭이나 토끼들도 있는데 그 전체적인 모습이 내가 느끼기엔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맨 끝까지 구경하는 걸 싫어했지만 아빠와 장구경을 갈 때면 맨 끝까지 다 구경을 해야 했기에 그 점이 싫었다.



장날에 장구경을 가면 표면적인 사회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 든다. 입구부터는 즐겁고 정감 가고 유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두워지고 후미진 골목이 나오며 정감 따윈 느낄 수 없는. 그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세상이 공존하고 있는 느낌에 말이다.



첫 취업을 하고 그 뒤로 10년 가까이 장구경을 몇 번 가보지 않아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보지 않아도 그곳의 모습을 여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 오일장을 애정한다. 정말 재미있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시장에서 도는 활력이 좋다. 내 삶이 활기와 활력이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대리만족이 되는 것 같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장터를 구경하고 싶다면 일찍 가시 기를 추천한다. 시장은 퇴근이 빠르다. 6시 이후에 가면 텅텅 비어있고 철거하는 모습들만 구경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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