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미정 Jul 03. 2017

알지도 못하면서

문상 2 

"미정아, 아버지 돌아가셔서 내려가는 길이다."


갑자기 울컥한다. 30년이 넘게 아는 친구다. 일 년에 한두 번, 혹은 몇 년만에 통화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없어 침묵이 흘러도 그 침묵마저 자연스러울 수 있는, 공기 같고 밥 같은 그런 친구다. 그러고 보니 이 문자도 일 년 만에 받는 소식이다.

일정들을 빠르게 비우고 갈 채비를 한다. 4시간 반 거리가 7시간이 되도록 운전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피로감이 없다. 오히려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검은 날연탄으로 문지른 듯 짙은 회빛 얼굴을 하고서 친구가 나타난다. 허겁지겁 갈증과 허기를 푸는 나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니, 언제 종교를 그렇게 바꿨노?"


내가 오히려 당황스럽다. 뭔가 한참 동안 잊고 있던 게 툭 튀어나온 것 같다. 아니, 잊어버린 게 아니다. 불과 2주 전에도 고달픈 유학시절에 한 주는 교회, 한 주는 절에서 반주하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그보단 내가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걸 직접 보았고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새삼스러워서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는 건 처음이다. 무심코 던져진 그 한 마디에서 30여 년이라는 시간을 느낀다. 힘이 세다.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뿌리를 흔드는 힘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 3주, 마지막이 되어 버린 고인과의 통화로 이어진다. 그 마지막 3번의 통화는 친구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별할 것은 딱히 없다. 그냥 열심히 살뿐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친구에게 미안하다. 친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제일 미안하다. 내가 만나는 이 중에 가장 연식이 오래되어서였을까... 나는 내 멋대로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고 거기에 친구를 끼워 넣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고 보면 그동안 늘 이렇게 끼워넣기하면서 살았다. 끼워 넣으려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끼워 넣으려 하며 살았다. 내가 만든 틀에 맞추어 넘치는 건 도려내고 모자라는 건 채워 넣고 싶어 했다.  일에 쫓겨 지내는 남편이 담배도 끊고 술도 줄였으면 했다. '남편'을 위하는 마음에서...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면 남편에게 화를 냈다. 아이한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별 관심 없어하는 분야라도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랬다. "전인적" 교육을 위해...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고 아이 마음이 편했을 리가 없다. 넘치거나 부족한 건 도려내거나 채워 넣기만 하면 될 텐데 그걸 상대의 탓으로 돌리거나 화를 내었다. 아님 사회를 탓하거나...... 그래서 이 끼워넣기의 결과는 항상 '화남,' '절망,' 혹은 '상실감'이다. 


있는 것을 없어야 한다고 내 맘대로 정하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있어야 한다고 내 맘대로 정해서

스스로 괴로워했다. 

없어야 할 게 있다며

있어야 할 게 없다며...


그뿐인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면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자꾸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어떻게 그려지더라도 그건 그 순간의 모습일 뿐인데... 


사실 남편이 담배를 많이 피거나 술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술 담배 나쁜 거, 당사자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하는 건 마음의 갈증 때문이리라. 마음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나마 숨구멍이라 믿는 술 담배를 억지로 끊으면 거기서 오는 갈증이 겹으로 더할 것이다. 갈증을 더 큰 갈증으로 덮는다고 갈증이 없어지지 않는다. 본질은 술 담배를 하고 아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친구를 보며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깨어나게 해 주는 그녀가 고맙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로 작은 울림이 되어 주는 그녀의 삶이 고맙다. 




若云修悟一時 謂無心忘照 任運寂知

약운수오일시  위무심망조   임우적지  

則定慧雙運 如明鏡無心 頓照萬象 則悟通解證

즉정혜쌍운  여명경무심   돈조만상  즉오통해증 


'마음을 닦는 것과 깨달음이 동시'라는 수오일시를 말한다면,

이는 '무심하여 마음을 비출 것도 없이 인연의 흐름에 맡겨져 고요한 마음에서 저절로 아는 앎'을 말한다. 

곧 선정과 지혜가 함께 움직이니, 이는 밝은 거울에 분별심이 없지만 몰록 온갖 모습을 비춤과 같기에,

깨달음이 '깨달음을 이해한 것'과 깨달음을 증득한 것'에 통하는 것이다.


-절요에서-   

 지음: 보조지눌 

 역해 :원순 




작가의 이전글 음악과(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