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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Jun 27. 2017

음악과(科)

우리가 알아야 할 음악의 진실

문화와 의식은 하나의 체계를 조직하고 한번 규정된 체계는 미래의 문화와 의식을 형성한다. 그래서 무심코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끊임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음악대학,’ 또는 ‘음악과’이다.      



한국에는 총 350여 개의 대학교가 있고 그 중 음악대학 혹은 음악학부가 있는 곳은 80여 개에 달한다. 음악대학, 음악과 아래에는 피아노, 성악, 관현악, 작곡, 국악 (또는 한국음악), 실용음악 등이 편성되어 있다. 이 프레임을 벗어나는 대학은 아쉽게도 단 한 군데도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상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이런 구조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음악은 보편적인 개념이다. 음악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 표현의 주체가 속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음악은 보편적 개념이지만 작품화된 개별의 음악은 특수한 것이다.

한국 음악대학의 성악, 피아노, 관현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다. 4세기 중세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어 유럽사회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연주되어 온 음악이다. 그 중 최근 300년 남짓의 작품들이 주로 연주된다. 어떻게 시작되었든 간에 그런 유럽음악이 20, 21세기 한국사회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공감을 얻고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풍부하고 깊이 있게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무한하다.

그러나!

특수는 특수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긍정하는 것이 음악을 서로 비교하고 순위를 매겨 계급짓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서양 클래식 음악은 결코 ‘음악’ 자체가 아니다. ‘유럽 사회에서’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라는 특수한 공간과 시간대에 걸쳐 형성되고 향유된 음악일 뿐이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인식하게 되면 자연히 떠오르는 게 있다. 한국의 전통음악이다. 5세기 가야국에서 이미 전성기를 누린 우륵선생의 가얏고를 비롯하여 그 유구한 전통과 예술적 가치는 서양 클래식 음악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위 조직표에 따르면 서양 클래식 음악이 보편적이며 참된 음악이고 한국 전통음악은 지엽적인 음악인 것처럼 보인다. 수적으로도 80여개의 전국 음악대학 중 전통예술학부 또는 국악과는 고작 15 군데에 불과하다. 우리 전통을 부정하고 강대국의 그것을 이식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깊이 뿌리를 내려버렸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중요한 건 ‘지금’이다. 보편과 특수를 명확히 자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가려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우리 음악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기 때문이다. 서양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라는 것에 동의가 된다면 음악이 지금 이 시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해결책은 나오게 되어 있다. 다음은 다시 그려보는 가상의 음악대학 조직표이다.      



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는 음악은 없다. 음악이 순수예술이어서 정치나 사회적인 걸 표방하지 않는다? 왜곡된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표방하지 않는 그 자체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이 되기도 한다는 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의 음악인들은 서양음악이 ‘진정한 음악’이라는 절대적 프레임 안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한국인들이 서양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들이 아직 수준이 안 되니...’하는 식으로 스스로 위로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음악 자체도 죽이는 일이다. 연주자 스스로도 이해 못하는 음악을 백날 연주해 본들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이제 눈을 뜨자.

음악이 무엇인지 알면, 서양음악도 보이고 전통음악도 보이고 한국음악도 보이게 된다. 그러면 서양음악도 더 풍성해지고 우리음악도 그 깊이를 더할 것이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한국음악’도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자연히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편과 특수의 시각으로 담아낼 때 음악은 참된 의미의 ‘음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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