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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Apr 21. 2017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개강이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길어서였을까, 학내의 바쁘고 분주한 걸음들이 새삼스럽게 반갑다. 호기심은 가득하나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새내기들의 우렁찬 “안녕하십니까!!!”는 언제 들어도 날 웃음 짓게 한다.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길이 없는데도 이렇게 인사하는 걸 보면 ‘모르는,’ 나이 들어 보이는 ‘모든’ 이에게, ‘무조건,’ ‘크게’ 외치는 게 지금의 그들에게 최선이리라. 그 풋풋함이 좋다. 그 순수함이 예쁘다.      

그 새내기들이 레슨실로 들어온다. 의례적인 인사와 몇 가지 심문 같은 질문들, 피아노는 언제부터 쳤느냐, 어디서 배웠느냐 등등 영혼 없는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준비한 것을 치기 시작한다.     


‘잘 치고 싶다. 딱히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치고 싶다. 잘 치고 싶어 긴장된다. 긴장하면 잘 안 쳐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치고 싶다...’      


물론 실제로는 뻣뻣하게 굳어서 뭘 치는지도 모르고 치고 있다. 이놈의 손이 언제 말을 들었던 적이 있던가... 예전엔 왜 이것이 안타까와 보였을까? 지금은 이런 모습들이 천진하고 사랑스럽다. 장난기가 발동한다.     

 

“너는 피아노를 왜 치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잘 치고 싶어서요.”

“그래? 잘 쳐서 뭐 할 건데?”

“예? 그건...”

“그럼 어떻게 치는 게 잘 치는 거야?”

“음... 음... (왜 이런 걸 물으시지? 하는 표정으로) 즐기면서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학생의 얼굴에서 ‘즐기는’ 것 같은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호~ 딱 걸렸다! 다시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겨져?”

“(기절할 것 같은 목소리로) 어... 어...”     


짓궂은 질문은 여기까지. 그렇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잘 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잘 친다는 사람들의 음악을 들었고 그들의 템포, 그들의 다이내믹을 따라했다. 한 사람 것만 듣고 따라하면 표날까봐 여러 사람 걸 듣고 적당히 짜깁기 했다. 그래서 누가 “여기는 왜 이렇게 했어?” 하면 “누구누구가 이렇게 쳤어.”라고 방어했다. 많이 듣고 많이 짜깁기할수록 많이 공부한 것처럼 생각했다.


20년도 넘은 일이다. 대학 은사님을 따라 외국에 여름캠프를 간 적이 있다. 어느 날, 내가 제일 좋아하던 연습실에서 누군가 연습을 하고 있다.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를 치는데 너무 신난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그 곡을 치는 사람이 없는 걸로 안다. 훈련으로 다듬어진 솜씨가 아닌데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한참을 듣다가 결국 못 참고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그랬더니 웬 소년이 벌떡 일어나 연신 미안해한다. 자기는 옆 동에 어학연수를 왔는데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어서 들어왔단다. 나도 방해하려던 생각 아니었다, 너무 재미있게 치길래 궁금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문을 열어 보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면서 통성명을 했다. 이태리 출신의 그 소년은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전혀 없는데 그냥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가끔 친다고. 

충격이다. 나는 피아노 오래 배워서 앞으로 피아노로 먹고 살고 싶은데도 피아노 전혀 안 배운 그 소년처럼 치지 못한다. 피아노 치면서도 누가 이렇게 친 적이 있으면 ‘따라’ 치는 것 같고 아무도 이렇게 친 적이 없으면 ‘내 마음대로’ 치는 것 같아 불안하다. 항상 이렇게 눈치 보며 쳤다. 내 음악에는 ‘나’가 없었다. 하지만 레슨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소년의 피아노에는 생동감이 있고 오롯함이 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내내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있을 새내기가 다음 주에 들어오면 얘기해 줄 것이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네가 이 선율을 들으면서 무얼 느끼는지, 이 화음을 들으면서 무얼 느끼는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치 

봄이 이렇게 오는 것처럼...

긴긴 겨울동안 

회색 가지 아래 깊숙이 움츠려 있던 생명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따스한 기운에 

파아랗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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