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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Jan 30. 2018

모차르트, 사람과 음악

비엔나 모차르트 하우스에서

"모차르트 하우스 in Wien"    

갑자기 호기심이 일어난다. 주체할 수가 없다. 기획사 사무실이 있는 비엔나에서 여장을 푼 지 이틀째다. 곧 있을 카르키프 연주를 위해 내일 떠난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시내구경이야 아예 생각해 볼 수도 없지만 왠지 여기는 꼭 가봐야 할 것 같다. 협연곡이 마침 모차르트의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아노 협주곡 21번 다 장조, K. 467 (1785).

이 곡을 공부하면서 모차르트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십 년이 넘게 수업마다 꽤 비중 있게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루어 왔지만 정작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수많은 단편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궁정음악가인 아버지 Leopold 와 어릴 때부터 같이 연주여행을 다닌 누나 Nannerl 등 빛나는 이름의 음악가족, 서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닌 화려한 연주 커리어, 만하임, 파리, 브뤼셀, 베를린, 프라하, 잘츠부르크, 비엔나 등에서 작곡된 작품들,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교회와 궁정을 떠나 프리랜서로 나서기까지...... 하지만 이 단편들은 아무리 많이 모여도 전체를 웅변해 주지 못한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내가 추측해 온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협주곡 21번은 버금딸림조를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버금딸림조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5도 올라가는 (딸림조) 대신 5도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방향은 실제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겨 준다. 5도 올라가는 딸림조로의 전조는 올림표가 하나 추가됨으로써 새로움을 선사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으뜸조로 돌아가면서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딸림조의 으뜸화음은 으뜸조의 속화음, 5도가 되기 때문에 양쪽으로의 이동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충분히 새롭지만 과하지 않은 적절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 이후 작품들에서 딸림조와의 구성을 자주 접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버금딸림조의 구상은 쉽지 않다. 버금딸림조에서 등장하는 속화음이 원조의 으뜸화음과 일치하여 긴장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을 이 협주곡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게 풀어내고 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여기서 버금딸림조는 세 가지 층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넓은 시야에서, 2악장의 조성이 1악장의 버금딸림조인 바 장조라는 점 (2악장은 너무나 아름다워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된다); 둘째, 1악장의 제 1주제가 대위법적 모방기법 중 5도 관계의 ‘응답’으로 짜여져 있어 재현부를 버금딸림조로 시작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 마지막으로, 재현부의 버금딸림조에서 으뜸조로 돌아오는 297-305 마디는 바그너를 연상시킬 만큼 반음계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이 화음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1악장 피아노 솔로가 시작되기 직전인 73마디에서 이태리 6화음으로 이미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치밀함과 지적 유희가 오직 휴머니즘과 순수함,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언뜻 등장하는 단조의 조성들조차도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메시지로 때로는 슬픔이 되어, 때로는 탄식이 되어 아름답게 빛난다.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이런 작품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버지 레오폴드는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의 집안이 대대로 음악가는 아니었다. 아마데우스의 조부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였고 증조부는 석공이다. 그 이전 조상의 이름이 14세기에도 등장은 하지만 귀족이나 음악가가 아니라 장인이다. 그것이 아마도 음악적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와 각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한편, 어릴 때부터 자기 음악을 가지고 유럽 전역의 궁정과 교회를 다니며 연주를 했던 신동은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대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는 무렵의 영국, 계몽주의 철학과 절대 권력에의 저항, 새로이 부상하는 시민사회, 이렇게 격렬하게 요동치는 유럽사회와 권력의 핵심에 선 사람들을 마주하고 교류하던 천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교회나 궁정을 굳이 박차고 나와 불안하고 고단한 프리랜서의 삶을 택한 그는 어떤 세상을 본 것일까?     


잠시라도 모차르트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뛴다. 친절한 기획사 분들이 일러준 대로 가니 높고 거대한 성 스테판 성당이다. 저물어 가는 햇빛을 가득 머금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프리메이슨이었던 모차르트가 이 교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욕망이 종교나 권력과 결합했을 때 그 위선과 한계를 일찍이 알아보았기에 돈 지오반니나 마술피리를 구상하게 된 거겠지? 그런데 왜 굳이 이 성당 옆에 이렇게 가까이 아파트를 얻었을까? 이 성당이 혹시 프리메이슨과 연결되어 있었나? 가톨릭 교회는 프리메이슨을 박해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우리에게 남겨진 결과물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단편들이다.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일단 지금은 모차르트 하우스에 집중하자. 성당을 지나 작은 골목길을 두어 번 도니 목적지다. 벌써 어둑하다. 30분 후면 마감이라는데 지금 나에겐 단 1분도 감사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3층부터 투어가 시작된다. 모차르트가 1784년 비엔나로 옮겨 와서 쓴 편지들, 1784년 12월 입회한 프리메이슨 자료, 그리고 그가 만나던 사람들의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작곡된 것도 1785년 3월, 이 집에서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초 박애주의, 세계시민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설립된 비밀결사로 당시 계몽주의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워싱턴, 쟝 자크 루소 등이 참여하였고 모차르트도 입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터 메이슨으로 활동하였다. 프리메이슨의 음악에 대한 생각은 루소의 언급에서 드러난다.   

    

“(프리메이슨의) 음악은 선한 생각을 전파하고 구성원들이 순수함과 기쁨으로 결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적 이상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일치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에 깔려있는 휴머니즘은 인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성질의 소재들을 등장시키는 대담함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교함과, 장조와 단조가,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3화음과 7화음, 심지어 9화음까지도 하나같이 인류애를, ‘순수한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나 보다. 하나의 작품은 탈고하는 순간 작곡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 작품의 마지막 1%는 그의 뿌리, 작곡가의 인생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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