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 충만한 마음으로 vs 참거나 폭발하거나
나는 착하게 살라는 말에 묘한 거부감이 있다. 착하게 살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때는 언제나 개운치가 않다. 정작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자기가 착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그 말이 맴돌아 다른 이에게 그러는 것 같다. 정말 착한 사람은 착하게 산다 운운하지 않는다. 자기가 착한 것도 모른다. 그냥 착하게 살 뿐이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 하나가 어느날 너무나 피곤한 상태로 수업을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 좀 힘들어 보이네."
"잠을 통 못 자서요."
같이 방 쓰는 학생이랑 생활 패턴이 엇갈려서 그렇단다. 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새벽 두시에 들어와서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켜 놓는데 한 시간 내내 울리도록 일어나질 못한단다. 이 친구도 워낙 숙면이 어려웁긴 하지만 처음엔 그냥 넘어갔는데 두 달 석 달 지나도록 내내 그러니 이제 힘들어 생활에 지장이 생긴단다.
"그 정도면 서로 얘기해서 합의점을 찾아야지."
"그게요..."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해 본 적 없고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감수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한 친구다. 대신 스트레스가 좀 많다. 착하게 살려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마!"
예상치 못한 말에 움찔한다. 그러다 풉! 하고 웃음이 터진다. 귀엽다. 그 착한 모습이 참 예쁘다.
착하게 살려는 게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건 이미 착한 게 아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주지 못할 때에는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빼앗기는 거다. 비겁한 거다. 기꺼이 주지 못할 때에는 차라리 솔직했음 좋겠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주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이건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줄 때는 기꺼이 상대를 배려해서 주라는 말이다. 보답을 바라면서 주는 건 선행이 아니다. 투자다. 그리고 투자의 결과는 항상 반 토막 이하가 아닌가. 못 주더라도 서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기회가 허락될 때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 다단하다. 그래서 대부분 참는다. 기꺼이 줄 수 없어도 착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건 맞서는 거라고, 그래서 뒷감당이 부담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착하게 사는 게 좋은 거니까' 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하지만 그건 착한 게 아니다. 참는 거다. 그리고 참는 것의 결과는 대부분 폭발이다. 주기싫었던 거다. 막상 솔직하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해 보면 생각보다 쉽게 풀릴 때가 많다. 상대는 내가 어디서 불편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스님께서 물으신다.
"착하게 산다는 게 뭐요?"
헉! 학생들한테는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말라고 뭔가 아는 척 폼도 잡아 보지만 스님께서 물으시니 말문이 턱 막힌다. 막상 아는 게 없다. 무릎이 후들후들... 착하게 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스님을 통해 흘러나오는 부처님 말씀은
덕지덕지 생겨난 잡스런 생각들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힘이 있다.
텅 비어 충만한 그 곳에서
기꺼이 믿고 기꺼이 참회하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다.
<착한 마음 열 한 가지>
http://www.btn.co.kr/pre/dharma_detail.asp?ls_StSbCode=CATMT_01&PID=P485&DPID=76983
불교 TV BTN 무상사 일요초청법회 2018년 1월 21일
송광사 인월암 원순스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