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그릇에 담으면 음식이 더 맛있어 보여요."
"......내사 머 그런 거 아나? 암 끼라도 담아 내모 고마이지. (아무 것에라도 담아 내면 그만이지.)"
물론 내가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다. 반찬을 두세번 먹을 만큼 덜어서 찬통째로 식탁에 올려 놓고 먹는 내가 예쁜 그릇은 무슨...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찬통을 고르는 게 고작인데... 식탁에 오를 것을 예상하면서 말이다. 나도 안다.
다만, '그래도 후라이팬을 올려 놓고 먹지는 않아요.' 내지 '대형 냄비도 식탁에 올리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름 어머니와의 선 긋기다. 노련한 어머니는 또 금방 알아들으신다.
"니는 어릴 때부터 그런 좋은 거만 보고 커서 그렇대이."
헉! 그런 뜻은 아닌데...
어느새 어머니는 꽁꽁 싸매두었던 보따리를 푸신다.
작년에 팔순을 맞으신 어머니는 일제의 서슬이 한창 퍼럴 때 만주에서 태어나셨다. 아들을 둘이나 놓고서 본 딸이언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의 아버지는 미리 맞추어 놓았던 영양보조제를 취소하시고 산모는 기력이 없어 아기에게 젖도 못 먹인다. 어찌 아들을 바랬던 아버지를 탓하고 그 생각에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 본 어머니를 탓하리. 그 시대 그 사고방식에 지금의 기준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시절에 충실했을 뿐.
백 일이 다 되어 가도록 제대로 숨 넘어가게 모유 한번 먹어보지 못한 아기는 쉴 틈 없이 배고프고 쉴 틈 없이 보챈다. 몸을 풀고 제대로 조리도 못한 산모는 아기에게 역감정이 제대로 박혀버렸나 보다. 아이가 울거나 말거나 미웁기만 하다. 그게 산모의 진심이 아닌 건 안다. 혹시라도 바깥에서 오는 장애가 있었으면 미안해서라도 누구보다 결사적으로 아기를 보호했을 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자라난 어머니에게 암 끼라도 '먹는' 게 중요하지 '어디' 담는지가 무슨 대수이랴. 생존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걸... 그래서 어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배가 불러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먹이신다. 그렇게 먹이는 게 낙이고 그게 미덕인 줄 아신다.
그런 거였구나. 부끄럽다. 같이 살아 온 몇 년을 하루같이 거의 반 강제적으로 먹이려 하시는 걸 부담스러워만 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 받아 먹겠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젠 좀 덜 부담스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