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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Jan 26. 2019

밥은 왜 하노

나뿐 메느리


1시가 넘었다. 방학이라 아침도 점심도 늦다.


"밥은 왜 하노?"

엥?


늘 이런 식이다. 장을 봐 오면, "이거는 왜 사노? 니는 비싸게 주고 사지? ㅇㅇ시장 가면 싼데... " "이거 비싸지? 이런 거 왜 사노?" 더 절약하란 말씀인가 보다. 그런가 하면, "ㅇㅇ네는 ㅇㅇ(얼마)주고 ㅇㅇ(물건) 샀단다. 이런 거는 거기다 댈 바가 아이다." 도대체 아끼라는 거야, 쓰라는 거야... 뭐 하나를 그냥 넘어가시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장단 맞춰드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다. '예' 해도 탈, '아니오' 해도 탈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다 보면 어머니는 어느새 다음 이야기로 옮겨 가 있으시다. 그래, 내 대답을 원하셨던 게 아니야. 그러다 보니 이제는 무슨 말씀을 하셔도 안 들린다. 음식을 만들 때도 옆에서 ㅇㅇ네 집, ㅇㅇ네 집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내 기억엔 없다. 내가 대꾸를 한 것 같기도 한데 뭐라 말했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래서 이제 강도를 높이시나 보다.


"밥은 왜 하노?"


ㅋㅎ이번엔 성공이다. 말문이 턱 막힌다. 이 한 마디 질문에 온갖 생각이 떠돈다. 실로 오랜만이다.

밥 시간이 되어 밥 준비를 하는데......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

밥 시간인데요... 애들 밥 주려고요...

이걸 모르고 물으셨을까?

국수를 원하시나? 죽을 원하시나? 짧은 겨울해에 밥을 너무 자주 하나?


내가 아직도 이렇게 하심을 못하는구나. 그래도 말 속에 칼날이 서려 있지 않은 게 어딘가? 하면서도 개운하지 않다. 칼날까지는 아니지만 이 부정적인 냄새는 뭐지? 복잡해진다.


"밥 때가 되서 밥 하는데 왜 하느냐 물으시니 무어라 대답할지 모르겠나이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 버린다. 수행을 많이 했으면 "삼이 서 근" 했으련만 아직 멀었다. 반항은 아니고 순종은 더더욱 아니다... 이젠 뭐, 수습할 생각도 안 든다. 그럴 기운이 없다.


"허허..."

하며 돌아서신다.

엉? 이건 또 뭔 일이래? 너무 순순하시다. 한쪽 끝이 아리다. 나뿐 메느리...


며칠 뒤...

입시준비에 초죽음이 된 둘째아이가 안쓰러워 보양식이라도 해 볼까 싶어 장을 간다. 이것저것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약과를 찾는데 없다. 아침에 먹일 바나나도 샀으면 좋겠는데 오늘따라 바나나가 마음에 안 든다. 다른 데 가서 사지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어머니도 장을 보신 것 같다. 장 본다고 말씀드릴 걸... 아니, 뭐, 잔소리 한번 더 듣고 사 온 건 천천히 다 먹으면 되지...


아!

갑자기 전기가 찌릿 온다. 식탁에 약과와 바나나가 떠억! 하니 기다리고 있쟎은가!


"장 보러 갔다가 약과, 바나나가 옳잖아서 그냥 왔는데 어머니, 알고 사셨나 봐! ㅇㅇ야, 할머니가 약과 사 오셨네."

"ㅇㅇ가 약과 좋아하니까 이 할미가 온 시장 다 뒤져서 제일 좋은 걸로 샀다."

심지어 그 의기양양한 목소리도 듣기 좋다.


쿵!




나는 어머니와 대화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머니의 이야기 보따리에 영혼 없는 추임새만 보탤 뿐... 변명거리야 많다. 어머니 이야기는 이제 한 오백번씩은 들은 것 같다. 첫 단어만 들어도 그 다음 그림이 다 그려진다. 80년 된 이야기, 70년 된 이야기, 60년 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도 처음 한 번이지 그도 벌써 수십번이다. 등장인물은 달라도 내용은 결국 똑같다. 하고 싶은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내가 반응할 때쯤이면 어머닌 벌써 저만큼 가 계시다.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내가 반응하기 시작하면 점점 흥분해서 기어이 화까지 나 하신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밖이다.

매일 아침 그날 내가 뭘 하는지 매우 궁금해는 하시나 설명하자면 너무 길다. 그걸 물어보실 때 나는 이미 신발을 신고 문 밖으로 뛰쳐 나가고 있다.

음식 준비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내가 하는 음식은 당신 입에 맞는 게 없다. 내가 음식을 준비해도 어머닌 당신 찬을 따로 준비하신다. 어쩌다 함께 저녁 식탁에 앉으면 앉기가 무섭게 "그거는 ㅇㅇ줘라, ㅇㅇ줘라, 나는 안 먹어도 된다, ㅇㅇ 먹어라, 너는 ㅇㅇ 먹지 마라, ㅇㅇ 먹지 마라, 이거는 소고기보다 낫다,..." 정신이 어찌나 맑으신지 누가 언제 무얼 가져왔는지, 무얼 만들었는지 나는 기억도 못하는 것들을 깨알같이 다 밝히신다. 쏟아지는 말씀들이 나는 이제 전혀 들리지도 않는다. 못 참고 폭발하는 건 오히려 남편이다. 반응 없는 아내에 대한 반감도 함께일 것이다.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우리 식구를 위함이라는 건 알지만 왜 이리 코드가 안 맞는지 모르겠다. 큰 폭풍이 지나고 어머니와 재밌게 잘 지낸다 생각했는데 산 너머 산이다. 부엌의 주도권? 그야 당연히 어르신 거지, 나는 애시당초 관심 없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점점 쌓이는 것도 느껴진다. 이 미묘한 게 뭘까? 딱히 뭐라 꼬집을 수는 없는데...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김치는..., 부산 (친정) 김치는..." (그 상황의 앞뒤는 이제 다 하얗게 바래져 사라졌다.)


아하, 이거였구나... 곧장 돌직구다. 

"어머닌 같이 살면서 왜 맨날 니 거, 내 거 하세요? 그럴 거면 집도 가르고 공기도 가르지..."

... (나뿐 메느리)...


반응 없이 돌아서신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가슴 속에 삼킨다.

부처님도 그러셨어요.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지고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없어지는 곳이 깨달음이라고... 




나한테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단상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여전히 매사에 옳고 어머닌 여전히 답답하고 고집센 분으로.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 요즘은 그런 말씀이 싹 사라졌다. 더 이상 니 거, 내 거 하지 않으신다.

...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세찬 소나기처럼 쉴새없이 쏟아지던 밥상 앞 잔소리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아니, 거의 없다.


이제서야 그걸 알아차린다. 그래, 어머니가 그동안 애써 오셨구나. 어른 체면에 티나게는 못하시고 이렇게 안 보이게 계속 애써 오셨구나. 어머니가 그렇게 애쓰시는 동안 모자라고 나뿐 메느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예전 모습만 생각하고 '싫다' 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이미 없어진 경계를 아직도 혼자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부처님 말씀 운운하면서.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나보다.


그대들은 내가 말한 법이 뗏목 같은 줄 알아야 한다.
법조차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맑은 법을 중생놀음에, 내가 옳다고 시비하는 데 쓰지 말라고 이렇게 따끔하게 일러주셨나 보다. 철없는 며느리의 투정에 매번 아무말 없이 돌아서 주신 어머니가 고맙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나뿐 메느리의 "알고 사셨나 봐," 한 마디에 어린아이처럼 목청이 한껏 올라가신다.


그리고

온 시장을 다 뒤져서 사신 그 약과는...

참 찰지고 맛있다.

여태 먹어 본 약과 중에

최고다.




汝等 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여등 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法尙應捨 何況非法

 법상응사 하황비법    


- 우리말 금강반야바라밀경, 법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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