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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Nov 24. 2019

반짝반짝 빛나는

쓸데없음의 힘: 조선대 음악교육과 정기연주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일 년에 한번, 지원자들을 중심으로 연주곡을 짜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불러 소소하게 치르는 연주회다. 준비 기간이 무척이나 짧음에도 불구하고 마술피리 서곡, 호두까기 인형, 타자기 협주곡, 아리랑 변주곡, 장구반주가 들어가는 합창곡, 거기다 축배의 노래까지 아주 야심찬 선곡들이다. 다들 연주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흠... 그래서 솔직이 잘 상상이 안 된다. 마음과 현실은 대부분 비타협적이지 않은가. AI한테 학생들에 대한 데이터와 주어진 시간을 주고 성공 여부를 물었다면 당연히 ‘불가능! 삐! 삐! 삐!’ 했을 것이다. 일 주일 전에 봤던 한 팀의 상태로는... 말을 아껴야지. 게다가 이 연주회가 학점에 들어가는 것도, 실기성적에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니다. 요즘같이 셈 빠른 시대의 관점으로는, 학생들에게 직접적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쓸데없음' 이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연주가 시작된다. 오~, 남녀 MC가 나와서 친절히 해설도 한다. 꽉 짜 놓은 대사를 국어책 읽듯 읽어 내려가는 어색함이 풋풋하다. 그 어색함이 오히려 귀엽고 자연스럽다. 마술피리 서곡, 호두까기 인형 등 예정된 순서대로 무대에 오른다. 슬쩍 염려가 되었던 팀도 예상 외로 선전했다. 오펜바흐의 인형의 노래도 드라마가 있고 타자기 협주곡도 재미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나라"는 합창이어서 무대가 제법 꽉 찬다. 거기다 장구 반주까지 중앙에 딱! 자리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무대가 조금씩 빛나기 시작한다. 저 어설픈 장구 소리에 묻어 있는 우직함이, 바짝 얼어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경주마처럼 앞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어리버리함과 귀신도 잡을 목소리에 담긴 뜨거운 마음이 연주회장을 서서히 휘감는다. '쓸데없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기꺼이,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는 이들의 모습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다.


그 '깨움'은 나를 살아나게 한다. 그 깨움은 온갖 욕망과 셈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지쳐 떨어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 깨움의 힘은 무한하다. 거기에는 어떤 ‘셈’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쓸데없음’의 힘이다. 쓸데없는데도 자꾸 하고 싶고 자꾸 하게 되고, 나중엔 쓸데있는지 없는지는 저 멀리 달아나 버렸는데도 계속 하고 있을 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무엇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무대의 힘이 아닐까. 미디어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혹시라도 전달된다면 한 1/100 정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의 힘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힘은 함께 있던 청중들도 같이 느끼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울컥 올라오는 걸 애써 감추는데, 노래가 끝나니 같이 보던 선생님들 두 분이 모두 같은 형편이다. 이럴 때 느끼는 묘한 안도감과 동질감이라곤...


한번 울컥하고 나니 그 다음 프로그램들은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다. 관객들의 열띤 호응은 연주자들을 아주 대놓고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8개의 손을 위한 아리랑 변주곡과 축배의 노래는 무대와 관객의 구분이 무의미하도록 모두를 하나로 녹여 푹 빠져들게 한다.


그 날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하나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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