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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Jan 31. 202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학원 수업 중의 일이다. 첫 시간, 다섯 남짓 되는 학생들한테 서로 좀 알자는 취지로 질문을 했다. 

"......지금 음악 관련 일을 하시는지, 그렇다면 어떤 일인지 얘기해 주시면 좋고요......"

"저는...... ㅇㅇㅇ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뿔싸, 이런 것도 물어 보면 안 되는 거였구나... 당혹스럽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학부 전공이 뭐였는지는 수업 진행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지금 음악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해서 이 수업을 듣는 건지 아닌지, 그런 것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답했던 학생에 대한 미안함과 소심한 변명이 속으로 잔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이 학생이 제일 열심이다. 실시간 온라인수업인데 시간이 안 맞아 이동 중에 듣는다 하면서도 누구보다 수업에 열심이다. 그런 걸 보니 마음이 더 아프다. 

"이렇게 음악 좋아하는 분이 음악 못하셔서 어떡해요? 선배들이 잘 했어야 하는데 책임을 통감합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그 학생이 최고점을 받으며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고맙게도 나를 써 주겠다는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한 학기, 한 학기, 한 학년씩 전공실기 수업의 분량이 줄더니 급기야는 한 학기 수업이 통으로 빠진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공실기 수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음악교육학과에서 음악교육에 음악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해야 하는 이 역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나는 피아노를 하신 어머니 덕에 어릴 때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접했다. 그래서 누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면,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피아니스트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질문과 내 대답에 대한 반응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게 좋았다. 그 당시 통금 사이렌을 들었던 기억도 얼핏 남아 있다. 통금이 해제되면 곧 세상이 불지옥으로 떨어져 버릴 듯 유난을 떨던 친척들의 목소리도 아직 남아 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에 반공은 곧 나의 정체성이었다. 어느 날,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서거하셨다'는 뉴스에 엉엉 목놓아 울기도 했다. 

그랬던 나의 세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87년도에 삭발을 하신 학교 선생님을 보면서였다. 다들 쉬쉬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누군가 나타나면 갑자기 말이 뚝 끊기고 영문 모를 일들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해를 넘겨 대입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문득, 한심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이 보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피아노 연습에 여념이 없단 말인가. 멍하다. 피아노는 우리 역사도 아니고 우리 음악도 아닌데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베토벤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끝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가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 그보다 나는 한국에서 서양음악의 역사가 부끄러웠다. 고종황제도 피아노 연주를 들으셨다 하지만 이미 나라는 넘어간 후였고 음악하는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독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못 들었다. 심지어 우리는 애국가도 남의 나라 민요를 개사해서 부르다가 지금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장 못 견디겠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좋다는 것이다. 왜 좋은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좋다. 아무리 둘러봐도 음악을 할 이유보다 안 할 이유가 수백 수천가지로 넘치고 심지어 음악을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물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시절은 하얗게 타들어갔다. 정말 열심히 했다. 피아노만 빼고.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지금까지도 피아노 옆에 얼쩡거리고 있다. 


음악은 사람을 이야기하게 한다. 음악이 좋은 것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아도,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게 예술이고 음악이지만 나한테 보이는 만큼, 나한테 들리는 만큼만으로도 예술을,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음악만큼 보편적인 매체는 없다. 음악만큼 보편적이면서 짧고 강하게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없다. 음악은 그 한순간에 그 사람의 모든 것,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사가 없어도 혹은 가사를 몰라도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힘이 여기 있다.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바로잡아 줄 수 있고 모차르트의 음악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줄 수 있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 어려울 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어려울 때 사람들을 보듬어 주고 사람이 조화로워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화로워지게 하는 그런 이상한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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