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게 익어가는 중 : 장과함께
나는 항상 '미니멀'한 삶을 바라며 살아왔다. 미니멀리스트들의 환한 방을 보면 내 기분도 꼭 그러해지는 것 같으니까. 그들의 얼굴 역시 그 말간 방을 꼭 닮았으니까.
허나 나의 경우에는 미니멀이 지향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더 가깝다. 귀찮음을 한주머니 달고 태어난 이 몸은 정신없는 세상에 그 무게가 버거워 방황이 잦았다. 마침 세상에 나타난 '미니멀'이라는 한 줄기를 타고 유유하게 흐르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환한 방과 말간 얼굴을 비슷하게라도 닮지 않을까. 뗏목 하나를 잡아 탔다.
매일 바르는 선크림과 붉은 색소가 들어간 립밤, 특별한 날 바르는 비비크림을 제외하고는 화장대를 싹 치웠다. 일과를 끝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차, 삼차 클렌징을 하기가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진한 화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생김새를 가졌다. 소비를 줄이고 싶은 마음, 유해한 물질과 몸이 만나는 일을 줄이고 싶은 마음, 쓰레기를 되도록 만들지 않고 싶은 마음도 줄줄이 따라왔다.
십 대 때부터 나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것을 바라왔지만 애쓰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옷을 사는 일은 마치 손톱을 깎다가 어디론가 튀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 방바닥을 훑는 기분이었기에. 내가 고르는 옷과 똑같은 옷이 줄줄이 걸려있는 옷을 고르는 쇼핑은 다른 의미로 불안했기에. 그러니 지하철이나 여행지를 오가며 만나는 빈티지숍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옷에 관해서라면 맥시멀리스트인 언니가 '이 옷들 버릴 건데..' 하면서 내놓는 것들을 뒤적거리는 일은 보물찾기처럼 즐겁다. 가장 좋아하는 쇼핑 장소는 친구들과 연 플리마켓. 내가 아는 사람의 옷이라는 것 자체가 어딘가 옷을 특별하게 만든다. 옷장의 한편에는 언제고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바구니가 있고 그렇게 모인 옷은 다시 플리마켓에 내놓는다. 계절에 따라 옷장을 꺼내고 정리하는 부지런을 떤다면 계절마다 한쪽 팔 길이 정도의 옷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나의 평생 운동, 요가. 사실 요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나의 일상과 관계에서 더 이상 요가를 빼놓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요가가 운동이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 나에겐 이제 요가는 수련의 개념에 가깝지만 몸의 건강을 위해서 아사나(동작)를 한다는 점에서라면, 요가는 나의 평생 운동이다.
어쩐지 요가를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아서 끌리게 되었는데, 안 하면 허리가 아프곤 하는 고질병으로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사이드잡으로 요가를 안내하는 사람이 되었다. 미니멀 호소인 이자 귀차니스트로서 요가가 정말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없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좌법으로 앉아서 호흡을 하거나 명상을 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든 캠핑장에서든 몸이 뻐근하다 싶으면 서서, 앉아서, 누워서 바로 동작 두세 개를 할 수도 있다. 미끄러지지 않는 좋은 매트가 있다면 더 없이 좋고 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할 줄 알았지만 다시는 안 할 것 같은 운동, 활동은 스쿠버 다이빙이다. 물에서 노는 걸 무척 좋아하고, 바닷속의 고요함이 좋아서 만나게 된 스쿠버 다이빙. 인연이 닿아서 오픈워터(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는 가장 기초적인 입문 과정의 자격증) 과정을 듣게 되었는데, 길지 않은 그 시간으로도 스쿠버 다이빙과 내가 인연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입을 때 무조건 짜증이 조금 나는 뻣뻣하고 조이는 슈트, 무거운데다가 매번 산소 충전과 안전 점검까지 해야 하는 산소통이라니. 좋은 스폿을 찾기 위해서 차로 이동을 해야 하고, 장소 뿐 아니라 날씨도 잘 골라야 한다. 그날 내가 처음 스쿠버로 만난 바다가 흐린 날의 뿌연 영덕의 바다가 아니라 쨍한 날의 세부나 몰디브의 바다라면 나의 마음은 달라졌을까.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는 스킨 다이빙은 잘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밥. 형제가 세 명인 집에서 먹는 것이 항상 조금 모자란 듯이 자랐다. 한창 클 때는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으로 먹은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를 두세 개 정도 집어먹는 습관이 있었다. 아빠와 막내(아들)에게 돌아가는 닭튀김 속 두 개의 닭다리 앞에서 항상 정의를 논하면서 다른 부위라도 일부러 더 많이 먹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마다 먹어서 지금보다 몸무게가 10kg는 더 나갔다.
채식을 지향하고 총체적인 의미에서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는 식생활이 크게 달라졌다. 몸이 예민해지면서 과식을 하면 뇌의 활동이 곧 멈추는 것 같았고 기절하는 듯 잠에 들었다. (몸이 소화하려고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는 거다.) 적당히 과식해도 잔잔한 짜증이 다음날 아침 컨디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적게 먹자. 음식 공부를 하면서 뭐가 몸에 좋다, 어떤 식사법이 건강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듣는데 솔직히 모두 논란의 여지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소식'만큼은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건강법에 든다.
의도함과 자연스러움이 섞여서 나는 '소식좌'가 되었다. 그러자 곧 외식이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신체 활동이 많지 않은 평소의 나에게는 수북한 밥 한 공기도 많은 양의 반찬도 부담스러웠다. 식사의 양 뿐 아니라 식사의 가짓수에서도 '미니멀'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만족하는 밥상은 내가 차린 밥상이다. (참고로 '맛있는'이라고는 안 했다.) 애정하는 질냄비에 밥을 하고 계절 채소 하나로 국물 맛을 우려 또각또각 자른 두부를 넣고 마지막에 된장을 살짝 푼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담는 김치 하나와 그때그때 있는 채소를 볶거나 쪄서 만든 반찬같은 것들 한두가지라면 충분한 밥상이 된다. 고슬고슬 뜨끈한 밥을 먹을 때는 만족스러운 나머지 희열까지 느껴진다. 구수하고 짭짤한 된장국은 몸을 데워주어 힘이 나거나 피로가 풀린다. 때에 난 채소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가짓수가 적으니 하나하나 집중해 먹을 수 있어 식사의 밀도가 높아진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양을 담고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나는 원하는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책상에 부지런히 앉아 글도 많이 써내려가고 싶고 책도 '이제 그만 좀 내볼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고, 그 집에의 부엌에는 큰 창문이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지향점을 멋지게 담아낸대다가 돈을 버는 시스템까지 갖춘 사업도 해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여행지가 생기면 머지 않아 여행을 하는 여유도 누리고 싶다. 하지만 밥은 이걸로 충분하다.
보글보글 갓 지은 밥,
두부 넣은 된장국,
김치와 계절에 난 채소로 만든 반찬들.
나는 정말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