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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느 때,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물음에 난 당연하듯 ‘그래’ 아니면 ‘좋아’라고 대답을 했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의미 없는 물음에 무의미한 대답들이 섞이면서 생각지도 못한 쓸데없는 의문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째서 그 많은 시간 카페만 다녔을까?
내 손에 들려있는 검붉은 액체는 왜 또 커피일까?
녹차, 전통차, 과일차, 허브와 같이 널리고 널린 게 마실거리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손에는 또 다른 커피 한잔이 들려있다. 나와 다른 누군가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약속을 잡을 때, 또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거나 할 일이 없을 때, 걷다 보면 어느덧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있다. 커피 한잔할까? 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쌍화차나 녹차를 마시러 가자’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카페가 아니더라도 내 손, 내 책상, 당신과 내가 자리 잡은 곳이 어디든 우리는 쉽게 카페를 가고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출근을 해도, 여행을 가도, 집에서 쉬고 있어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커피 한잔은 습관이 된 듯 우리 식생활과 붙어있다. 저마다 개성이 달라 선택의 폭이 넓어 보이지만 커피라는 주제 안에서는 그들만의 개성은 온데간데없고 서로 같은 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커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 속에서 채워져 가는 이 검붉은 액체를 채워가고 비워낸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커피를 대신할 그 무언가가 없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커피를 즐기고 있지만 ’맛‘ 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를 떼어 놓고 커피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설로 전해져 내려온 이 커피가 소담스럽게 열린 붉은 열매가 아니라 노랗게 메마른 콩깍지 안에 한 줄로 정갈하게 담겨 있는 서리태라고 생각해보자. 커피가 시작된 전설의 시작부터 우리는 커피라는 단어보다는 서리태라는 단어로 불리고 정의된 음료 한잔을 들고 있을지 모른다. 적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커피 밸트안의 수많은 나라에서도 서리태를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올 수도 있다. 서리태 생산국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보지만, 서리태는 커피와 달라 한 줌의 간식, 식량이 되었다. 품종이나 생산 방법, 가공 상태에 따라 변해가는 커피와는 달리 서리태 그 특유의 향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좀 더 다양한 향미를 보여주는 차는 어떨까? 찻잎을 수확하는 방법이나 덖음, 발효하는 정도에 따라 서리태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향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잘 여문 과일의 향미나, 열매, 꽃 향, 견과류, 캬라멜, 초콜릿, 고구마, 구운 고기 등 세상 모든 향을 표현 할 것만 같은 커피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서리태와는 다르게 낱알 하나가 하나의 향미를 보여주기 보다는 낱알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향미에 매력을 느끼고 우리는 이렇게 말을한다.
’맛있다‘
나날이 생겨나는 다양한 음료들과의 경쟁에서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맛있으니까. 그 어떤 과학이나 수학적 근거로 맛이라는 독특한 감각을 수치로 표현하려 하지만, 밤하늘의 우주와 같이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내 감각이다.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서로 간의 기호가 달라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이 맛을 평가하기도 어렵다. 누군가는 과일이나 열매의 달콤한 신맛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다른 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집집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누군가는 어느 집이,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어느 집이 최고라 한다. 창백한 푸른 점안에 살고있는 우리는 그 수만큼이나 서로 다름을 표현하지만, 커피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는 서로 닮아 보인다. 커피가 보여주는 다양한 향미는 과일의 신맛을 싫어하는 이도, 화산 토양 특유의 스모키함을 싫어해도, 심지어 카페인에 약한 체질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커피가 생겨난 시대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지나오면서 세상 모든 이들의 기호를 파악한 듯, 지금도 누군가의 감각을 어지럽힐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커피로 채워진 공간을 메우는 우리는 나와 비슷한 기호를 가졌지만, 또 다르게 보면 같다고 볼 수 없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쌉싸름한 커피를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맛이라는 주관적인 기호 차이로 서로 다른 음료를 주문하고 있지만, 어쨌든 커피다. 커피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 서로 다른 공간을 메우고 다닐 뿐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커피가 가진 다양한 향미와 커피로 만들어진 다양한 음료, 그리고 새로이 생겨난 커피 음료는 그 시대를 적응하 려 끊임없이 서로 다른 맛의 기준을 맞춰나가며 바꿔나간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내 앞에 반쯤 남아 식어버리 들큼한 커피와 같은 커피가 다른 이들의 책상 한 켠, 한 손에 들려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맛으로 개성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도 허무할 것이며,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커피는 기억에서 멀어져 버린 단어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