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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 Aug 27. 2024

7. 맛을 잡다

Oc


맛을 잡기 위해선 내가 사용하는 추출 방식 그대로 사용하면 좋다. 앞서 설명했듯 여기저기 보이는 다양한 추출 방식들은 어차피 나에게 맞지 않아 실망감만 안겨 줄 뿐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익숙한 커피를 사용하는 걸 권한다. 분쇄도 늘 해오던 그대로며, 추출도 그대로다. 뜸 한 번에 추출을 세 번 나눠서 내려도 되고, 뜸 한 번에 한 번의 추출로 끝내도 상관없다. 단순히 추출 시간에 따른 맛만 비교하면 된다. 추출 도구도 그대로 사용하되 커피를 받을 잔이나 서버와 같은 도구만 세 개 준비한다. 드리퍼에 여과지를 접어 놓고 평소에 사용하던 양만큼 커피를 갈아 넣으면 준비는 끝이다. 물 온도도 평소 내리던 습관대로 사용한다. 다만 추출 시 사용하는 물의 회전을 똑같이 맞춰주면 좋다. 1차 추출에서 물 주입을 5번에 걸쳐 회전했다면, 2차, 3차도 동일하게 5번 회전하면 된다. 최소한의 변수로 맛을 확인해야 좀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대로 뜸을 들이고 편안하게 1차 추출을 한다. 이후 2차 추출하기 전 드리퍼를 빈 잔이나 서버에 옮겨 2차 추출을 한다. 3차도 똑같이 드리퍼를 옮겨 추출한다. 첫 번째 잔에는 1차 추출한 커피가, 두 번째 잔에는 2차 추출된 커피가, 세 번째 잔에는 마지막으로 추출된 커피가 담긴다. 워낙 익숙한 커피라 첫 잔부터 차례대로 들이켜보면 추출되는 시간에 따라 신맛, 단맛, 쓴맛이 변해가는 과정과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흐름이 앞쪽인지 뒤쪽인지, 아니면 중간인지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다. 세 번에 나눠 추출하는 경우와 다르게 뜸 한 번에 한 번의 추출로 우려내는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나눠서 추출하는 게 아니다 보니 평소 추출하던 시간을 나눠 사용한다. 예를 들어 뜸 들이는 시간을 제외하고 추출에 사용하는 시간이 2분이라 했을 때 세 번에 나눠 잔이나 서버에 담으면 된다. 그럼, 약 40초 정도가 된다. 뜸 들이고 평소대로 물을 회전하면서 부어 주거나, 스틱이나 숟가락 등으로 저어도 상관없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드리퍼를 옮겨주고, 또 시간이 되면 드리퍼를 옮겨 준다. 에스프레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 잔에 나누어져 있는 맛의 흐름을 확인했다면, 비로소 내가 내린 커피 한잔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고, 값비싼 장비를 사용하고,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판단하지 못하면 별 의미 없는 한잔이 되어버린다. 내가 내린 커피 한잔이 나에게 맛있는 한잔이 됐을 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커피 한잔이 된다. 맛을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앞서 설명한 방법을 이용하되 평소 그대로 추출하면 된다. 회전수를 동일하게 했던 부분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래야 어느 부분을 내가 수정하고 어디까지 추출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맨 처음은 뜸 한 번에 1차 추출까지, 두 번째 잔은 뜸 한 번에 2차 추출까지, 세 번째 잔은 뜸 한 번에 3차까지 추출한다. 세 개의 드리퍼로 세 잔을 한 번에 추출해서 비교하면 좋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 한잔을 기억하고 또 다른 한잔을 기억하면 된다. 이렇게 추출된 커피는 드리퍼를 옮겨 다니면서 추출했던 맛의 흐름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첫 잔은 대부분 신맛으로 이뤄져 있다. 조금의 단맛이 느껴지긴 하나 너무 강한 신맛이 부담스럽다. 이전 테스트에서 1차만 추출했던 신맛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물 주입을 하면서 주전자를 회전하는 수와 물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혹여나 첫 번째 잔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신맛과 단맛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면, 이는 1차 추출이 다소 길어서 생기는 현상이 대부분이다. 물 주입 시 회전이 많거나, 물을 너무 약하게 사용해 커피를 가로지르는 물의 흐름이 느려 추출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경우 1차 추출을 지금보다 더 길게 사용해서 추출을 끝내던지, 회전량을 적게 사용하거나, 물의 흐름을 조금 더 빠르게 해 주는 방식으로 1차 추출을 조금 일찍 끝낼 필요가 있다. 아무런 수정 없이 마지막 추출까지 가버리면 기분 좋은 신맛이나 단맛은 가라앉고 후미에 쓴맛이 올라온다.

두 번째 잔은 적당한 신맛 뒤로 단맛이 그리고 조금의 쌉싸름함이 남는다. 앞에서부터 후미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는 균형감은 아니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여기에서 ‘맛있다’라고 감탄하거나 훌륭한 균형감이 느껴진다면,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맞는 추출 시간이다. 굳이 마지막 추출까지 할 필요가 없다. 세 번에 나눠서 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지금의 시간을 기억해 두고 그 시간까지 세 번에 나눠서 추출하면 된다. 내가 생각했던 추출량이 얼마였던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까지 추출해서 맛을 잃어버리느니 이게 낫다. 모자른 추출량은 물을 조금 희석해 마셔도 좋다. 

세 번째 잔에서 완벽한 균형감을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앞쪽의 맛보다 점차 후미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면 지금의 추출 시간보다 시간을 조금 줄여줘야 한다. 이때 후미에 쓴맛과 함께 독특한 향을 하나 더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맛이라 착각했던 매운 향이다. 쌈 채소에 같이 나오는 고추 향보다는 바짝 말린 고추 향에 더 가깝다. 페페론치노와 같은 향 또는 이와 유사한 매운 향이다. 추출이 길어질수록 이 흔적은 강하게 나타나며, 그 정도가 약할수록 단맛 나는 커피에 가까워진다. 이와는 반대로 앞에서 후미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는 맛 없이 짧게 끝나버린다면, 추출을 지금보다 더 길게 해줄 필요가 있다.



신맛, 단맛, 쓴맛으로 흘러가는 이 맛의 흐름은 에스프레소와 드립뿐만 아니라 커피를 추출하는 모든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카 포트나, 프렌치 프레스, 클레버와 같이 커피를 우려내는 방법이 서로 다름에도 맛이 흘러가는 방향은 같다. 다만, 서로 간에 가지고 있는 감각의 정도나 경험의 차이로 이 맛이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기도 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커피가 이 신맛, 단맛, 쓴맛을 두루 갖고 있지도 않다. 검붉은 열매 안에 들어있는 씨앗인 커피 생두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며, 이 생두를 원두로 만들어내는 과정인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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