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남편의 지혜로운 아내 찬양글
아내는 만 26살의 어린 나이에 나에게 시집을 왔다. 연애를 시작한 지 197일째 되는 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알렸을 때 처음엔 주변에서 만류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응원해 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럴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내의 현명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일찍부터 지혜롭고 신중함으로 사람들에게 늘 존경을 받아왔다. 그런 아내가 일생일대에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덜컥할 리 없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결혼 후 13년 간 우리 가정은 아내의 현명함으로 지금까지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삶고 있다. 물론 우리 집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정 역시 여타의 가정처럼 부동산 문제, 금리 문제, 자녀 교육 문제, 직장 문제 등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삶은 아무 문제 없이 깨끗한 녹찻잎 같이 살고 있느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설령 흠이 있고 모양이 곱지 않더라도 우려내었을 때 얼마나 깊은 향과 맛을 낼 수 있느냐다. 그런 풍미를 가진 삶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삶 속에 얼마큼 품위를 갖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아내는 오늘 가구를 재배치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다. 침대는 동쪽으로 머리를 내던 것을 남쪽으로 바꾸고, 책상은 침대와 나란히 동쪽을 향해 있었는데 북쪽으로 옮기겠다고 한다. 책꽂이와 부수적인 것들 역시 책상과 함께 이동하겠다고 했다. 아내와 잠시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무거운 가구들을 옮겨야 하는데 걱정부터 앞섰다. 아내에게 그런 짐을 지어주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아내는 1년에 두어 번 이렇게 가구 재배치를 통해 기분 전환을 하겠다고 나서는데 그럴 때마다 그 효과가 크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다. 부디 안전하게 하고 무거운 것 있으면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하라고 일러주었다. 무엇보다 이미 옮기겠다고 말을 내뱉었을 때 지금까지 봐온 아내 성격 상 이미 수십 번도 더 고민해 보고 나름대로 시뮬레이션해 본 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입 밖으로 아내가 말을 꺼내면 웬만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에게 못내 마음이 걸려 한 마디를 건넨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면 힘들게 가구 재배치 말고 가구 몇 개쯤을 사는 게 어떨까?" 금리 인상과 부동산 여파로 인해 빠듯한 살림에 이뤄주기 쉽지 않은 제안이지만 아내가 이 힘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가구 같은 것 사지 않아도 가구 옮기는 것으로 충분히 기분 전환 할 수 있어."라고 우문현답을 한다. 그렇다. 사실 돈을 쓴다고 해서 꼭 기분전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이런 자기 학대적 기분 전환이 가장 좋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속상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과소비를 하거나, 과식을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기도 한다. 잘못된 만남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는 범죄(마약 따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절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명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내는 자기 학대적 과소비 대신 현명한 가구 재배치를 선택했다. 그렇게 말한 아내는 한 동안 연락이 없었다. 밤이 되어서야 갑자기 휴대폰에 "띠링 띠링"하는 문자 오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이 텀으로 소리가 계속 난다는 것은 사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가구 재배치가 완료되었음을 짐작하고 휴대폰을 열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새로 옮긴 가구들의 사진과 전체적인 방 분위기 사진을 보냈다. 창고처럼 쓰이는 그래서 온갖 짐이 있어서 정리가 쉽지 않아 내 전담이었던 드레스룸까지 본인이 다 정리했다며 신나 보이는 문자를 나에게 보냈다. 아내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딸에게 자신은 슈퍼 우먼이라며 자랑을 했고 딸은 그럼 아빠는 뭐 하냐며 엄마보고 겸손하랜다. 나 역시 내 도움 없이 혼자 다 해내는 아내를 보며 내 역할 좀 남겨달라고 투정 부려본다. 그런 아내는 나 없이는 못 산다며, 나를 필요로 함은 가구 재배치 수준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고 드높여주는 우문현답을 또 한다.
새롭게 정리된 방을 보며 아내는 뿌듯하고 만족스럽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보니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HSK 6급을 따겠다며 이곳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했던 아내인데 시험이 끝나고 한 동안 다시 엄마 모드로 돌아왔던 차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당장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드라마 정주행을 해보겠다고 한다. 기분이 좋은지 잘 먹지 않는 과자까지 준비했다며 자랑스레 사진을 보낸다. 정갈하게 정리된 터라 더 넓어져 보이는 공간이 아이들도 좋은지 자기 방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해서 매 사진마다 침대에 길쭉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아내의 현명함에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니 가족 모두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많이 했다고 한다. 덕분에 인테리어 시장이 급성장을 했는데 여행을 통한 소비 대신 인테리어 같은 것을 대체제로 지출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일컫는 말이 보복 소비라고 한다. 보복 소비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감정과 행동 두 가지가 모두 불행해 보인다. 아내는 보복 소비대신 땀을 빼가며 운동 겸 가구 재배치를 통해 승화 절약을 했다. 안나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중 하나인 승화를 통해 힘을 냈고, 돈을 쓰지 않고도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기에 절약을 했다.
이렇게 바뀐 가구의 위치가 올여름 내 유지되고 가을에는 바뀔지 아니면 올 한 해는 그대로 유지될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매해 깊이를 더해가는 아내의 현명함을 생각해 보면 올 가을 다시 옮겨진다고 해도 혹은 내년까지 유지가 된다고 해도 그저 묵묵하게 나는 아내의 선택을 존중한다. 홀로 육아를 견디며, 일까지 해야 하고, 소소한 어느 가정집에나 있을 어려움들을 갖고 있는 아내의 어깨는 무겁다. 그런 아내는 매 순간 이런 문제들로 하여금 생기는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현명한 품위를 선택한다. 아내의 삶을 우려낸 차는 그 깊은 풍미가 어느 차에 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