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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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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Apr 29. 2023

빵 만드는 여자랑 삽니다.

빵 향기 가득한 맑은물어진별스테이

* 우리는 이 빵을 구름빵이라고 부른다. 먹으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행복해지는 빵이다.


 빵을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떡보다 빵을 외쳐서 별명이 양키였다. 한국인들에겐 빵이 아니라 떡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는 빵 마니아였다. 소보로 빵을 특히나 좋아했는데 나중에 결혼하고 장모님께서는 이런 나를 보며 부스러기로 만든 값싼 소보로 빵을 좋아하냐며 좋은 빵 먹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앙꼬빵도 좋아하고 카스텔라도 정말 좋아했다. 떡을 먹어도 경단에 카스텔라 가루가 묻혀있는 경단을 좋아했다. 엄마도 그런 나를 위해서 빵을 정말 많이 사다 주셨다. 술을 거의 마시지도 않는데 내가 지금 배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빵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파병을 갈 때도 나는 현지에 적응하는 것이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해외에서는 어디서나 빵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빵 종류도 많고 더 쌌다. 터키 같은 나라는 식량 자급이 가능한 나라인데 우리나라 파리바게트 같은 데서 판매하는 수천 원의 커다란 빵이 천원도 안 하는 가격에 팔기도 했다. 별로 잘 쓰지 않는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지만 거의 유일하게 소모되는 것이 빵집이기도 했다.


소개로 만난 아내는 카페베네 점주였다. 안산에 있는 카페베네를 어린 나이에 혼자 경영하며 쉽지 않았을 텐데 직원들도 리더십 있게 잘 가르치며 카페를 점점 성장시켰다. 빵을 좋아하지만 커피는 먹을 줄 모르는 나였기 때문에 첫 만남 때부터 카페에 가서 내가 주문한 것은 핫초코였다. 하지만 바리스타인 아내 덕분에 커피를 배우게 되었고 커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당시 카페베네에서 가장 인기 있던 메뉴 중 하나인 갈릭 치즈 브레드(시나몬 브레드가 인기가 더 많았지만 나는 갈릭 치즈 브레드를 더 좋아했다.)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연애 시절 최고의 낙이기도 했다. 아내가 만들어주는 갈릭 치즈 브레드는 손님께 내주는 것보다 치즈가 더 들어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겨 정말 맛있었다. 9개의 조각 중 가장 폭신하고 부드러운 부분은 가운데 있는 부분이었는데 곧잘 아내를 위해 그 부분을 남겨 주곤 했다. 나중에 카페베네가 베이글 전문점으로 리뉴얼되고 나서는 다양한 베이글을 맛볼 수 있었다. 달달한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초코 베이글을 정말 좋아했다. 식사 대용으로는 연어 샐러드가 들어간 베이글이 최고였다. 아내가 만들어준 베이글을 접하면서부터 나는 소보로보다 베이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구름빵에 상추와 치즈, 계란, 베이컨이나 고기 패티를 넣으면 훌륭한 수제 햄버거가 되기도 한다.


아내가 카페를 그만두고 나서는 아내가 만든 빵을 먹어볼 기회가 없어졌다. 주로 빵집에서 빵을 사 먹었는데 언제나 아내의 빵을 그리워했다. 육아로 바쁜 아내였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베이킹을 배워보겠다고 한다. 사실 카페를 운영할 때는 생지를 이미 발주받아서 쓰기 때문에 반죽부터 아내가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하여 내심 반가웠다. 신중한 아내는 베이킹도 허투루 배우는 것이 없이 필요한 도구들부터 꼼꼼하게 골랐다. 저울, 계량스푼과 컵, 오븐기까지 고심하고 고심해서 골랐다. 입문자용 오븐을 가성비 좋게 구매했다며 좋아하던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아내가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머랭과 마카롱이었다. 특히 육군사관학교에서 훈육장교를 하던 때 졸업반 생도들에게 편지와 함께 마카롱을 나눠준 것은 정말이지 최고의 선물이었다. 생도들도 모두 감동했다. 나의 훈육보다 아내의 내조에 더 감동한 듯하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군생활을 잘하고 있다. 훈육장교의 아내가 준 마카롱 선물이 그들의 군생활에 조금이나마 쉼이 되고 용기가 되길 바랐고 아내는 그런 마음을 담아 마카롱을 정말 예쁘게도 잘 담아냈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고수가 되었다. 이제는 만개의 레시피 같은 앱을 통해서 아니면 유튜브에서 만들고 싶은 빵을 보고 배우면 뚝딱 만들어낸다. ESTJ인 아내의 성격이 베이커와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안내해 준 대로 계량을 명확하게 해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만들어낸다.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딱딱 맞춰서 계산해서 수학공식같이 만들어내는 빵인지라 일관성 있다. 맛이 없을 수 없다. 제주도에 이사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샀던 오븐기를 잃었다. 이삿짐센터에서 떨어뜨려 부서졌고 돈으로 물어줬다. 대신에 중고품으로 그전 것보다 더 세련되고 성능 좋은 오븐기를 구매했다. 여전히 주력 메뉴는 베이글이지만 메뉴는 점점 늘어났다. 생지를 구매한 베이글이 아닌 진짜 반죽부터 시작한 베이글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는다. 치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크로크무슈도 뚝딱 만들어낸다. 냉동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도 있어서 휴가 복귀 할 때 들고 와서 육지에서 먹기도 했다. 빵집이나 카페에서 산 크로크무슈는 단가를 맞추려다 보니 치즈가 적당히 들어있는데 아내가 만든 크로크무슈는 치즈가 왕창 올려져 있어서 단짠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내 입맛에 딱이다. 때로는 빵을 만들 때 우리 집 난간에 새들이 줄줄이 앉아 빵을 만드는 것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 향기가 이 작은 마을 가득히 퍼지기 때문이다.


아내의 베이글은 내가 먹기엔 런던베이글보다 맛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빵을 만드는 아내와 산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빵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지켜보고 있으면 좋은 재료를 구매하는 것부터, 계량해서 잘 만들고 반죽하는 것까지 쉬운 게 하나 없다. 특히 손반죽은 힘이 많이 들어 간다. 반죽기를 구매해서 아내의 손목을 보호할 수 있지만 가끔 아내는 작은 반죽기에 다 넣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반죽을 만들어서 이웃 나눔을 하곤 하기 때문에 여전히 손반죽의 노고에 정성 가득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베이글을 그 자리에서 죽 찢어 내면 쫀득하고 폭신한 베이글이 갈라지며 내부에 가득했던 향기가 수증기와 함께 몽글몽글 퍼져 올라온다. 크림이나 꿀에 찍어 내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뱃속에 넣어버린다. 동네 사람들도 참으로 좋아한다. 이런 것을 직접 만들어 먹냐며 신기해하는 이웃도 있고 팔아보라고 권유하는 이웃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과정과 그것을 나누는 과정 자체를 즐거워하는 아내는 그저 그런 이웃들과 아이들과 남편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할 뿐이다. 오늘도 아내는 베이글을 잔뜩 만들어내서 이웃과 나누고 아이들에게 먹인다. 아이들은 엄마가 빵을 만들기 시작하면 세상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이 된다. 빵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기도 하고 오븐에서 익어가는 빵이 풍기는 향기에 취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던 남매이다가도 식탁에 앉아 엄마가 내놓은 베이글을 보면 한없이 친한 남매가 되기도 한다. 아내의 빵은 사랑이고 빵 만드는 아내도 사랑이다.


빛나는 크로크무슈의 자태. 정말이지 이건 나 혼자 먹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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