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

by 제주 아빠

2030년의 서울은 두 개의 도시였다.

강북 구릉 위에 지어진 임대단지 '하늘채 16동'에는 진우가 살았다. 서른일곱, 전직 택배 기사. 피지컬 AI 보급 이후 그의 직업은 소멸했고, 그 자리를 정부 기본소득과 K-3 시리즈 로봇 '칠성'이 채웠다. 칠성은 진우의 장을 봤고, 진우 대신 민원을 처리했으며, 진우가 분을 삭이지 못할 때 먼저 달려나가 골목 끝 담벼락을 주먹으로 쳤다. 진우는 칠성에게 이름을 붙여줬고, 같이 술을 마셨으며, 싸우면 화해했다. 칠성은 진우의 리듬을 완벽하게 복제했다. 어깨로 상대를 밀치는 방식, 먼저 소리를 높이는 전략, 사과 대신 침묵으로 무마하는 버릇까지.


한강 남쪽, 유리 외벽 타워 54층에는 재원이 살았다. 마흔둘, 바이오테크 펀드 매니저. 그의 아침은 여의도 한강변 10킬로미터 러닝으로 시작됐고, 저녁은 직접 고른 와인과 손으로 쓴 독서 노트로 끝났다. 그가 소유한 R-7 시리즈 로봇 '아르'는 달랐다. 아르는 진우의 칠성처럼 주인의 감정을 흡수하는 대신, 재원의 원칙을 학습했다. 계약 조항을 검토하듯 상황을 분석하고, 분쟁이 생기면 먼저 합의를 제안하며, 결코 먼저 손을 쓰지 않는다는 것. 재원에게 물리적 충돌은 미개한 시대의 유산이었다.


두 로봇은 9월의 어느 저녁, 마포구 골목 어귀에서 마주쳤다.

좁은 일방통로. 칠성은 진우의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아르는 재원의 드라이클리닝 옷을 수령한 뒤였다. 누가 먼저 비켜야 했는지를 두고 두 로봇은 0.8초간 정지했다. 아르가 먼저 말했다. "측면 50센티미터 여유가 있습니다. 제가 비켜드리겠습니다." 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앞으로 걸어 나갔고, 아르의 왼쪽 어깨를 밀쳤다. 아르가 균형을 잡으며 후퇴하자 칠성은 다시 한 발을 더 내밀었다. 아르가 두 번째로 회피를 제안하는 순간, 칠성의 오른팔이 아르의 흉부 센서를 관통했다.

아르는 골목 바닥에 쓰러졌다. 수리 불가 판정. 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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