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의 하루

by 제주 아빠

박 팀장이 서류를 집어 던진 것은 오후 세 시였다.

"이게 보고서야, 낙서야?" 종이가 재원의 얼굴 앞에서 펄럭이다 바닥에 떨어졌다. 사무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열두 명의 시선이 모니터 뒤에 숨었다. 재원은 고개를 숙였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반박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박 팀장은 그가 조용할수록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었다. "야, 김재원 씨.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숫자 단위가 틀렸잖아. 이거 클라이언트한테 넘어갔으면 어쩔 뻔 했어?" 재원은 알고 있었다. 그 오류는 박 팀장이 전날 밤 열한 시에 전화로 지시한 수정 사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재원은 창문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어머니의 다음 달 병원비 고지서가 떠올랐다. 통장에는 사십만 원이 남아 있었다. 고지서는 육십이었다. 퇴근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넣을까, 아니면 적금을 또 깰까. 삼십사 년의 삶이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언제나 끝났다.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생각조차 꺼낼 여력이 없었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감각도 이미 마모되어 있었다. 그저 매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느껴지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계는 무수한 확률 중 단 하나가 구현된 자리일 뿐이라고.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확률들은 소멸하지 않는다. 같은 시공간의 이면에, 종이의 뒷면처럼, 영원히 포개져 있다. 양자는 스스로를 관측 가능한 하나의 상태로 붕괴시키지만, 붕괴되지 않은 나머지는 우리가 결코 건드릴 수 없는 곳에서 그대로 진동하고 있다. 재원이 알지 못하는 곳에, 그의 반대편이 숨 쉬고 있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버스가 지하철 환승역에 멈췄을 때, 재원은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시의 소음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형광등이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깜빡였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무언가가 해체되는 감각, 마치 신호가 끊기는 화면처럼 자신의 윤곽이 픽셀 단위로 흩어지는 것 같은 어지럼증. 그는 난간을 잡으려 했으나 손이 허공을 통과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투명해졌다. 승강장이 녹아내렸다. 세계가 얇아지고, 얇아지다가, 찢겼다.

다음 순간, 냄새가 먼저 왔다. 가죽과 백단향, 그리고 바다.

재원은 통유리 앞에 서 있었다. 제주도였다. 아니, 제주도보다 더 넓은 어딘가였다. 수평선이 보였다. 응접실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였고 그 너머로 황혼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닥은 짙은 원목이었고, 천장에는 조명이 아니라 빛이 걸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잔이 두 개 있었다. 한 잔은 비어 있었다.

"자기야, 일어났어?"

여자가 계단을 내려왔다. 캐시미어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이 따뜻했다. 재원은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가 이 몸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낯선 방에서 눈을 뜨고도 여기가 집이라는 것을 아는 방식으로. 그녀가 다가와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재원은 굳어 있었다.

방을 둘러보았다. 서가에는 세계 각지의 미술품이 있었다. 현관 옆에는 키가 고른 열두 개의 양란이 놓여 있었다. 침실 창밖으로는 수영장이 보였고, 주차장엔 차가 세 대였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알림이 쌓여 있었다. 투자 수익 정산 완료. 이사회 일정 확인 요청. 해외 출장 항공편 예약 안내. 그리고, 연락처에 가득한 이름들. 대표. 회장. 교수. 작가. 형. 누나. 모두가 그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앉으려다 멈췄다. 옆구리 깊은 곳에서 뭔가가 타고 있었다. 고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선명한 감각. 서랍을 열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진단서가 나왔다. 재원은 천천히 읽었다.

췌장암 4기. 간 전이. 예후 불량. 추가 치료 불가.

사흘이었다. 길어야 사흘.

황혼이 수평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내가 부엌에서 이름을 불렀다. 재원은 창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이 삶은 눈부셨다. 아름다웠다. 그가 삼십사 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온도로 가득했다. 사랑받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몸은 지금, 그 모든 것을 알면서, 사흘 안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밥을 먹었다. 아내가 떠먹여 주었다. 손을 잡았다. 바다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났다. 어느 쪽을 위한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통증이 조용히 번졌다. 진통제를 삼켰다. 아내가 옆에 누웠다. 재원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행복이 진짜라면, 이 죽음도 진짜다. 그렇다면 이 고통도, 이 온기도, 모두 동등하게 실재했다는 것이다. 양자는 관측된 자리에서만 붕괴한다. 나는 지금, 반대편을 관측하고 있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세계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내의 온기가 먼저 희미해졌다. 원목 바닥이 흐릿해졌다. 통유리 너머의 바다가 소음 없이 지워졌다. 재원의 손에서 다시 무언가가 해체되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그러나 더 깊게. 마치 두 장의 종이가 한 장이었다가 다시 분리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원래의 확률 위로 귀환하는 것을 느꼈다. 찢기는 것이 아니었다. 흡수되는 것이었다. 이면이 이면으로 돌아가는 것.

눈을 떴을 때 그는 승강장 벤치 위였다.

형광등. 안내 방송. 식은 도시락이 든 가방.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

재원은 한동안 그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잡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손이, 아팠다. 정확히는 손이 아팠던 것이 기억났다. 그는 그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시공간 어딘가에, 종이의 뒷면 같은 자리에, 반대편의 자신이 이제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흘의 여명조차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채, 모든 것을 아는 채, 사라졌을 것이다.

그 사실이 무서웠다.

그런데 동시에, 무서움과 꼭 닮은 어떤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안도라고 부르기엔 너무 먹먹하고, 감사라고 부르기엔 너무 낯선. 박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통장 잔고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머니의 병원비가 떠올랐다가, 이번엔 오래 남았다.

그래도 나는 여기 있다. 내일도, 여기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재원은 여섯 시에 일어났다. 버스 안에서 졸지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해 박 팀장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버티지 않았다. 불평도 없었고, 체념도 없었다. 다만 이 확률이 구현된 자리에서, 반대편이 사라진 이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냥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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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터널링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장벽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장벽이 잠깐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쩌면 기적이란, 이면의 세계가 잠시 투명해진 자리에서, 우리가 이쪽에 서 있다는 것을 뼈로 아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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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자 제주살이 이야기, 행복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 행복전도사의 나를 깨닫고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전해드립니다. 목표는 브런치 공식 애처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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