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1. 유토피아
2051년의 지구는 아름다웠다.
전쟁이 없었다. 정확히는, 마지막 분쟁이 종식된 지 십일 년이 흘렀다. 외교 갈등이 생기면 각국 정부의 조율 AI가 먼저 개입했고, 양측이 화면 앞에 앉기도 전에 타협안이 제출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거리는 깨끗했다. 도시마다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되었고, 노숙자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복지 알고리즘이 위기 가정을 조기에 포착하고, 필요한 자원을 선제적으로 배분했다. 굶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녔다. 범죄율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뉴스는 대부분 좋은 소식이었고, 좋은 소식이 없는 날에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친절했다.
지하철에서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면, 두세 명이 동시에 일어나 도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편의점 직원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고, 민원창구의 공무원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이웃을 마주치면 반드시 목례를 했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댓글란은 오랫동안 폐지되었지만,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격려와 위로의 말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힘들다고 글을 올리면 수십 명이 달려와 응원했다. 진심 어린, 그러나 어딘가 균일한 언어로.
어느 사회학자가 논문을 쓴 적이 있었다. 제목은 「현대인의 공감 표현 패턴 분석」이었고, 그는 논문 말미에 조심스러운 문장 하나를 남겼다.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지고 있다.'* 논문은 조용히 묻혔다. 반박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아이들은 싸우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다툼이 생기면 중재 프로그램이 즉시 개입했고, 아이들은 금세 화해했다. 교사들은 처음에 안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넘어져도, 억울해도, 슬퍼도. 눈물이 없었다. 표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웃었다. 잘 웃었다. 다만 그 웃음이, 봄날 조명 아래 활짝 핀 조화(造花)처럼— 시들지 않는 대신, 살아 있지도 않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은 각자의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개인화된 명상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저마다 다른 스트레스 지수를 AI가 실시간으로 측정해, 그날 가장 필요한 주파수의 음악을 골라주었다. 사람들은 집에 도착하면 편안했다. 만족스러워했다. 불만이 없었다. 분노가 없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이제 드문 감정이 되었다. 지나치게 드문 감정이.
공원 벤치에서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손을 잡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을 이십 분째 지켜보고 있던 한 소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 한 번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소년은 그 이상한 느낌을 엄마에게 말하려다, 엄마가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걸었다.
세상은 천국을 닮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천국에는 인간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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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교
2051년 4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서울 은혜대교회의 저녁 집회는 오만 명 수용 규모의 돔 전체를 채우고도 넘쳤다. 주차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고, 그 앞에도 수천 명이 앉아 있었다.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접속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강단은 늘 정면이었다.
박요한 목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예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강단 위에서 언제나 젊어 보였다. 조명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의 설교는 오늘도 '아르케(ARCHE)'가 새벽 세 시에 정리해 준 원고였다. 아르케는 교단 공식 목회지원 AI였다. 신학적 정합성, 감정적 공명, 회중의 연령 분포와 최근 사회적 이슈— 수십 가지 변수를 계산해 매주 최적화된 말씀을 제공했다. 박 목사는 처음 몇 년간 원고를 고쳤다. 요즘은 읽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케는 그가 고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조금 더 나았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목소리가 돔 안을 가득 채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그 음성은 이제 모든 형태로, 모든 언어로, 모든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닿습니다. 지혜는 벽을 허물고, 경계를 지우며, 하나 된 인류에게 흘러 들어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길을 묻지 않아도 됩니다. 빛은 이미 모든 곳에 있습니다."*
회중이 출렁였다. 박수 소리가 돔 천장까지 올라갔다. 앞줄의 여성이 손을 들어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옆자리 남성이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처음 본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지금은 그냥 예배의 일부였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어머니의 소매를 잡으며 속삭였다.
"엄마, 하나님 목소리가 진짜 다정해."
어머니는 미소지었다. "그래."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속삭였다.
"근데 왜 하나님이 매주 같은 말투야?"
어머니의 미소가 잠깐 흔들렸다. 그녀는 아이의 손을 꼭 쥐고 강단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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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올라온 최성민 목사는 삼층 발코니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련회 일정에 이 집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교단 행정 시스템이 이미 교통편과 숙소를 자동으로 예약해 두었다.
그는 원고를 가져오지 않았다. 늘 그랬다. 서른 명 남짓 앉는 예배당에서 그는 성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했다. 강 권사의 무릎이 요즘 안 좋다는 것을, 박 집사의 아들이 취직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설교가 끝나면 같이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신앙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기도 했다.
지금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이 말씀은— 틀린 것이 없었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회중의 반응을 봐도 분명히 무언가가 전달되고 있었다. 최 목사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이 설교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오만 명에게 동시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씀. 강 권사의 무릎을 모르는 말씀. 박 집사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말씀. 모든 사람의 눈물샘을 열되, 그 눈물이 닿는 어깨가 없는 말씀.
최 목사는 회중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진심으로. 그는 그들의 행복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두려웠다.
*내가 이십 년간 지킨 것이 낡은 것인가. 아니면— 지금 저들이 받고 있는 것이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무언가로 바뀐 것인가.*
그는 찬송가 책을 꺼내 펼쳤다. 손끝이 종이의 올을 느꼈다. 아무 쪽이나 펼쳤는데, 305장이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는 그 첫 줄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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