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체 형식을 일부 사용하면서 '반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도 요즘 반말방이 인기인데 브런치에서도 굳이 존대를 쓰지 않고 편하게 쓴 점 양해 바랍니다.
내 기억에 처음으로 제주도에 와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성읍민속마을에 들렀었고, 말을 탔고, 타는듯한 더위와 파란 하늘, 높은 구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동생이랑 말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부터 나를 설레게 했고 잠깐이지만 지내는 동안 참 좋았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분명 한몫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과외를 해서 번 첫 월급으로 제주도에 온 적이 있다. 친구와 짧은 일정 속에 무리해서 자전거 여행, 한라산 등반, 모슬포 항에서 방어회 먹기 등 다양한 것을 즐겼고 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특히 겨울 한라산 등반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너무 멋진 풍경을 보면서 아마 그때 내가 제주도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자전거 여행은 1일 코스로 제주시 ~ 성산 일출봉 왕복을 했는데 왕복 90km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땐 젊어서였는지 해냈다. 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멈췄던 게 기억이 난다. 본격적으로 제주를 즐기기 시작한 건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시작됐다. 그중 백미는 임신한 아내가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무심코 툭 던진 말에 비지니스석 제주행 비행기를 그 자리에서 예약해서 3박 4일간 다녀온 것이다. 3박 4일에 무려 150만 원을 썼다.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한 겨울에도 딸기를 구해다 준다는데 멀쩡하게 있는 제주도 못 가랴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다녀왔다. 당시 중위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무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덕분에 두어 달 고생했다. 하지만 3박 4일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를 참 좋아한다. 그 이후로는 파병 가있던 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해 제주도에 한 번씩 다녀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추억으로 제주도를 기억한다. 그렇기에 제주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입도하니 섬에 간다는 게 더 실감 났다. 제주 입도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자 일부러 배편을 선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역시 제주에서 추억이 쌓여갈 때마다 자연스레 제주에서의 삶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이미 간직했던 꿈이 살면서 선명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점점 더 선명해지는 제주살이의 꿈이 실현된 것은 2019년 11월이다. 제주살이를 오랫동안 꿈꿨기 때문에 제주에서 겪게 될 어려움은 낭만으로 덮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잘살지 궁리를 더 하기로 했기 때문에 뭘 해도 용서가 되었다. "제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렇게 하나씩 현실적인 준비를 해가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기적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해결되어 순조롭게 제주 1년 살이 준비를 마쳤고 11월 23일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을 만큼 짐으로 꽉꽉 채운 세단에 몸을 욱여넣고 진도로 향했다. 밤늦게 도착한 진도에서 몇 시간 잠시 뉘일 곳에서 여독을 푼 후 새벽같이 일어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진도항으로 향했다. 레드펄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이 차가운 밤공기 가운데 위용을 드러냈고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차를 싣고 여객실로 올라와 환호성을 질렀다. 육지 안녕!(BGM 볼빨간사춘기 '여행' 단, 공항 아니고 항구로 떠남.)
처음엔 1년만 살기로 한 제주도에 햇수로 벌써 3년째 살게 되었다. 아직 제주살이 초보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지냈던 10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제주도를 너무 제대로 즐겨봤기 때문에 제주살이에 대해 누가 물어봐도 답변할 수 있을 만큼 나름대로 잘 알게 되어 제주살이를 꿈꾸는 많은 지인들에게 설명해주곤 한다. 유튜브나 브런치 글, 네이버 지식 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주살이에 대한 질문을 접하면서 역시 제주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꿈꿔볼 만한 꿈같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보며 참으로 뿌듯하다. 하지만 반대로 2020년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인해 10년 만에 제주도 유출 인구가 유입 인구보다 더 많아지면서 제주살이의 환상을 깨라는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실망할만한 상황이 있을 수 있어 제주를 위한 변명 따위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분명하게 느낀 것은 제주살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할 수 있는 건가. 돈이 많은 사람? 친화력이 좋은 사람?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굳이 제주에 정착하기 가장 좋은 사람을 꼽자면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이 여유는 경제적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관광지에 산다는 것은 사실 여유 없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로마 같은 관광지에 사는 것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낭만이 그려지지만 시끄럽고 더럽고 복잡하고 여하튼 불편하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게 항상 가장 예쁘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있다. 로마에 가보니 세계적인 관광도시라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심지어 교황을 볼 수 있다는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전 세계에서 교황을 알현(?) 하기 위해 방문한 신부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정말 온갖 사람이 모이는 로마에서는 가방을 꼭 껴안고 다녀야 하고 아무나와 말을 섞으면 안 되고 살인적인 물가를 견뎌야 하고 등등... 인터넷 찾아보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다. 거지가 많고 도둑이 많고(친구는 그곳에서 멀쩡히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와서 사기를 쳤다고 했다.) 이런 로마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몰릴까? 그리고 그 로마에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매일 아침 콜로세움 주변을 산책하고, 포로 로마노 언덕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티칸 박물관에서 로마의 역사를 배우게 될까? 곱씹어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로마 정도는 아니지만 국제적 입지가 있는 섬이다. 제주에 산다는 것은 로마에 산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광지에 산다는 것. 근본적으로 이 질문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살이는 꿈꾸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이 많이들 물어보는 질문들을 추려서 QnA 형식으로 남긴다.
제주도는 바다뷰인가 한라산뷰인가를 따져보는 게 좋다. 1년 살아보고 우린 한라산뷰로 정했다.
1. 제주도 어디가 좋아?
제주도는 서울의 약 3배에 달하는 넓은 섬이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부분은 한라산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중산간 ~ 해안에 이르는 부분이고 이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중산간 지역은 아예 마을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살기 어렵다. 게다가 제주도는 육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토 불균형이 심한 곳인데 전체 인구 69만 명 중 50만이 제주시와 그 부근에 거주하고 19만 명이 서귀포와 그 부근에 거주한다. 한림~제주시~화북에 이르는 지역에 사실상 거의 모든 제주 사람이 몰려 살고 있다. 서귀포 신시가지에 그나마 좀 사람이 살지만 서귀포는 전체적으로 띄엄띄엄 사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하천리는 마을 총인구가 약 1,300명에 불과하다.(표선면 하천리 사이트 기준) 그나마 하천리는 큰 마을이라서 이 정도다. 전에 살던 신천리(성산읍 소재)는 600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천리는 표선면에 있는 마을로 표선면은 표선해수욕장, 해비치 콘도 등이 있어 제주도 내 꽤나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웬만한 시설은 다 있다.(심지어 마을회관에 헬스장도 있는데 시설이 꽤나 좋음.) 사정이 이러한 바 제주도 어디가 좋아라고 묻는 질문은 대한민국 어디가 살기 좋아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니즈(needs)를 생각한 후 이러이러한 삶을 꿈꾸는데 그것과 잘 어울리는 제주는 어디야?라고 묻는 게 더 나은 질문이지 않을까. 제주의 모든 곳에 다 살아보지 않아서 다 알 수는 없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이거나 아이가 어리다면 집을 구매하기보다는 월세로 여기저기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테마를 정해서 돌아다녀보면 제주의 각 마을별 특성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제주시에 사람이 많이 사는 이유는 제주도민 대다수는 말 그대로 이곳이 생활 터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 살 것들이 몰려있는 그곳에 사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부터 제주목관아가 있던 곳이니 한마디로 도심이고 중심부다. 마치 육지에서 서울에 대다수 시설이 몰려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도시의 삶이 싫어서 제주에 왔는데 또 도시로 들어간다는 것을 난 반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에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제주 토박이라면 모를까 제주를 사랑해서 이주한 이주민이라면 제주시 말고 다른 곳에 살아보길 권장한다.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작성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런 태풍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나는 제주도에 왜 왔는가?
바다인가 산인가?
잘 갖춰진 인프라와 목가적인 시골 분위기 중 어는 것을 선호하는가?
궂은 날씨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호젓함을 가졌는가?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가?
제주도에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아파트? 전원주택? 농가주택? 다가구나 빌라 등 어떤 형태의 주거 양식을 선호하는가?
우리 부부는 제주도에 꿈꾸러 왔고, 산이고, 목가적인 시골이고, 궂은 날씨를 좀 피하고 싶었고, 자녀 교육은 홈스쿨링이라 적당히 고민했다. 그 결과 지금의 집에 살게 됐다.
위의 내용들을 토대로 알아본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디가 좋은지 결정할 수 있다. 질문의 순서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좁혀나가는 방법이다. 제주도에 왜 왔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게 당연히 가장 중요할 것이고, 바다인지 산인지 결정하는 게 제주도에선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후 인프라가 잘 구성된 제주도 내에서도 도심인지 아니면 목가적인 시골인지. 바다가 좋고 도심 쪽이 좋고 제주도에서 여유로운 삶보다 다양한 풍류를 즐기고 싶다면 애월읍~제주시 사이가 좋겠다. 하지만 정 반대로 산이 좋고 목가적인 게 좋고 한적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다면 애월읍~제주시 사이를 제외한 나머지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물론 애월읍과 제주시도 중산간 쪽으로 들어가면 목가적인 곳이 있다. 하지만 다녀보니 그런데는 벌써 각종 카페나 유명 관광지로 많이 개발되어 있어서 일단 차량이 다니는 수준부터가 다르다. 제주도 와서 차가 막혀서 답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유일한 구간이 화북~애월읍 사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제주도에 오는가인데 제주도는 결코 호락호락한 섬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왜 제주도가 유배지였겠는가.(한자로 제주의 제는 '건널 제'다. 배 타고 건너야 가야지 있는 고을이란 뜻.) 하지만 그 유배지에서 추사 김정희 같은 사람도 나왔다. 대정읍에서 유배 생활을 했고 추사체의 완성이 이곳 제주에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제주도에 오겠다는 뜻이 분명하다면 제주는 정말 환상의 섬일 것이다. 사실 이건 서울에 살아도 마찬가지고 속초에 살아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역시나 분명한 자기 인식과 목적의식이다.
주로 제주에서 많이 먹는다는 '접짝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 일품이다. 간은 왕소금 그냥 한소끔 집어 솔솔 뿌리면 그만.
2. 제주도에서 먹고살만해?
제주도는 굉장히 독특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자세한 자료는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생략하겠다.(참고로 올해 2021년이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된 지 15년 해 된 해이고 특별자치도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제주 생활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독특한 산업구조 때문에 제주도에서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이유 때문에 평균 임금이 낮고 이주민들이 단기간에 적응해서 직업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묻고 싶다. 육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직업을 제주 와서 뚝딱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이다. 이 부분은 정말 취준생으로서 충분한 준비를 통해서 제주도에 와야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자영업을 이곳에서 하려고 한다면 자본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할 것이며, 제주도 특성상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는 시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영업을 계획하면서 이 정도 정보도 없이 하는 것은 꽤나 무리라고 본다. 친한 형님 한 분이 오래전부터 제주도로 이주를 하려고 하셨는데 지금 서울에서 내는 수익만큼을 제주도에서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쉽게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처럼 동일 직종이라면 제주도가 확실히 급여가 적은 게 사실이다.
무 파치를 줍줍 해서 깍두기 담그고 청은 바람에 말려 시래기로 만들어 겨우내 비타민 공급원으로 잘 먹었다. 땀 흘려 일해 주시고 그걸 나눠주신 농민분들께 감사.
하지만 반대로 동일 직종이 아니라 새로 개척하는 분야라면 또 다를 수가 있다. 정부 통계지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제주 농가소득은 전국 2위(1위 경기도), 농업소득은 전국 1위다. 귤농사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겨울무의 90%는 제주산이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메밀의 주산지도 봉평이 아니라 제주도다. 그 외에도 블루베리, 바나나, 귤 가공식품 등으로 다양한 농업소득을 발생시키고 있다. 자본이 있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농업소득은 이주민이 접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소작농 개념으로 소작인들도 많다. 농지가 워낙 많다 보니 마을 공동체에 잘 녹아든다면 마을에서 공동 경영하는 농지를 이용해서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도 있다.(고되긴 하지만 요즘 한국인들이 워낙 없어 노동 집약적인 일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가 하고 한국인들은 작목반장과 같은 업무를 한다고 알고 있다.) 참고로 제주도에 이주한 이후 아내는 현재 유치원 급식 교사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방역 봉사를 하고 있는데 최저시급 혹은 그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소일거리로 하기에 나쁘지 않은 이러한 일들도 많이 있고 특히 시니어들을 위한 여러 일자리들이 잘 마련된 편이라서 노후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어디든 내가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다 먹고살 수 있다. 어느 수준에 만족하는가 그리고 내가 제주도에 왜 내려왔나 이런 것들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할 뿐이다. 여유롭게 지내려고 내려왔는데 일하느라 오히려 더 힘들면 제주도에 내려온 의미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제는 또 여유롭게 일하자니 이래저래 빠듯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여유롭게 지내다 보니 제주는 참 풍족한 곳이라 말 그대로 여유 있게 지낼 수 있는데 인간의 욕심에 그렇게 살기 참 어렵게 만든다. 먹고살만하냐는 질문에 난 분명 먹고살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의 본업이 있어서 육지에서 받은 내 급여로 제주도에서 가족들이 생활하는 기형적 구조만 본다면 우리는 제주도민 중에서도 중산층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준으로 먹고살만하다고 평가한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이 역시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알아보자.
파이어족이어서 경제적 자유가 완전히 주어진 상태인가?(혹은 충분한 연금생활자인가?)
제주도에서 본업을 얻어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인가?(결혼, 육아, 노후 등을 제주에서 살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지만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몸이 고되지만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날 힐링시켜주기 때문에 어떠한 일도 버텨낼 수 있는가?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
제주 생활을 실패할 경우 육지로 올라가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제주도 이마트 있어요. 없는 거 빼고 다 팔아요. 육지랑 가격 비교해도 별 차이 없어요. 혹시 이마트에서 일하신다면 제주도 이마트에 지원해보시라.(서귀포점 추천)
제주도 물가가 비싸다고 한다. 근데 사실 잘 모르겠다. 기름값이 리터당 100원 정도 비싼 건 확실하다. 하지만 탐나는전*을 이용하면 10%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육지보다 싸다.(육지에도 지자체별 화폐가 기름값 할인을 해주는지는 모르겠다.) 그 외에 공산품은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다이소, 하나로마트 등에서 구입하면 별반 차이가 없다. 택배비가 더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쿠팡 와우 회원으로서 제주도가 은근 쿠세권이어서 혜택을 잘 누리고 있다. 네이버 회원이기도 한데 배송료가 많이 나오는 것 같은 경우는 때에 따라 육지에서 받아서 제주도 갈 때 바리바리 싸들고 가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충동구매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어서 썩 나쁘지 않다. 아직까진 택배비로 인해서 제주도가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전기료는 제주도가 확실히 더 싸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전기가 남아도는 거의 유일한 지자체로 육지로 역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풍력발전소, 태양광 발전소 등의 인프라가 섬 전체에서 쓰고도 남을 만큼 잘 구성되어 있다. 지자체 중 이러한 친환경 에너지로 지역 전체가 자급하는 것은 최초라고 한다. 우리 집도 다음 달에는 가정용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게다가 제주도는 전기요금이 낮에는 싸고 밤에 조금 할증이 붙는 방식이라 유리하다. 다만, 도시가스가 거의 없어 가스가 비싸다. 겨울철에 멋모르고 난방을 뗐다가는 엄청난 가스요금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온풍기가 같이 되어 있는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한다거나 전기 온풍기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제주도민은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 알아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집에서 끓이는 라면에 그냥 문어를 막 집어넣는 너란 녀석 제주.
해녀분들의 어장을 망치는 수준의 해루질이 아니라면 이 정도 통발에 문어 몇 마리쯤은 애교로 상생한다.
식료품값도 비슷하다. 오히려 풍족한 제주의 바다, 산, 들에서 나오는 식재료들은 더 싸고 신선하다. 무는 돈 주고 사본적도 없고 양파, 당근, 파, 감자 등 주변 밭에서 파치를 캐다가 먹거나 주변 사람들이 나눠주신다. 심지어 귤 농장 옆에 살 땐 한라봉, 천혜향 등을 많이도 얻어먹었다.(제주도에선 귤 떨어지면 인심 떨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 제철 고사리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고기도 싸다. 비싼 고기 먹으면 육지도 비싸긴 매 한 가지.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제주산 돼지 앞다리살은 100g당 천 원 안팎이다.(흑돼지 아니고 그냥 제주산 돼지 기준, 굳이 흑돼지 안 먹어도 맛있음.) 쌀이 안 나온다는 게 흠이긴 한데 하나로마트 같은 데서 쌀 사다 먹으면 된다. 우리도 처음엔 기름값이 무서워 이마트에 2주에 한 번 정도 가서 잔뜩 장을 봐오곤 했는데 요즘엔 탐나는전으로 기름 넣거나 그냥 전기차로 하나로마트 가서 필요할 때마다 사 오곤 한다.(하나로마트, 유드림마트 등 제주 마트 포인트도 적립 가능) 또한 낚시를 통해서 물고기도 건져 올릴 수 있고 불법이 아닌 선에서 통발로 문어도 잡아 올릴 수 있으니 결국 내가 그런 걸 하면서 살 여유가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주말마다 제주도 가면 가장 즐겨 찾는 요리는 엄마가 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와 부추를 이용한 겉절이.(상추 : 제주산, 부추 : 제주산, 고춧가루 : 제주산, 간장 : 이마트, 식초 : 이마트)
* 탐나는전 : 제주도 지역화폐로 1인당 월 70만 원 연 500만 원까지 쓸 수 있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성인이 3명인 관계로 월 210만 원, 연 1,500만 원까지 쓸 수 있는데 10%를 포인트 형식으로 차감해준다. 이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를 제외하고 하나로마트, 주유소, 다이소, 대다수 업종이 가맹점인 관계로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고 특히 주유소에서 쓰는 것이 체감상 가장 이득이다.
제주는 관광지라 맛집도 꽤나 많다. 그래서 유명한 제주도 식당들(오는정 김밥, 연돈 돈까스 등)은 현지인도 먹기 힘들다. 100통의 전화와 삼고초려만에 오는정 김밥을 먹어보았다.
3. 괸당 문화가 불편해?
괸당.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한다. 하지만 괸당이 불편하다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할 수 없다. 육지에도 텃새라는 단어가 있다. 괸당은 사실 텃새라는 말의 뜻과 다르다. 기회가 되면 제주 해녀박물관에 가보길 권장한다. 제주의 전통 괸당 문화 그리고 해녀 할머니들이 만들어 놓으신 제주 문화는 척박한 땅에서 누구 굶어 죽게 하기보다 모두가 함께 조금씩 십시일반 나눠서 부족하지만 다 같이 살아남자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4.3 사건 등을 겪으면서 육지 사람들에 대해 일부 안 좋은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5.18로 인해 광주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듯 우리가 오히려 보듬고 이해해줘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운이 좋게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먼저 제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다 보니 우리 가족은 모두 너무나도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었고, 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엄마는 그곳에서 만난 제주 토박이 분들과 정말 잘 어울리신다. 그분들은 외지인인 엄마를 한 번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매번 가지, 호박, 물고기, 고사리 등 많은 것을 나눠주신다.(아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정통 제주어를 구사하시면 아예 알아들을 수 없다.) 들은 바에 따르면 일부 자영업자들이 제주 토박이 분들에게 횡포를 당하셨다고 한다. 근데 이곳에 있으면서 반대 이야기도 좀 들었다. 제주 토박이 분들은 장사를 해도 상생하는 장사를 한다. 하지만 카페나 식당 등을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개업을 하면 그 규모에서부터 어마어마해서 도저히 주변 상권이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상생이 되질 않고 기존에 있던 상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해서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누가 잘했고 누가 나빴고가 아니다. 위의 사례 둘 다 있었던 일이고 어딘가에서 피해받는 이주민 분도 제주 토박이 분도 있다는 게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중요한 건 제주라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으며, 그들과 어떻게 지내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다시 또 말하지만 여유가 있어야지 허락되는 것이 제주에서의 삶이다. 여유 없이 생존을 위해 매달리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도 다 알아채고 고운 시선으로 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유 있게 이곳에서 지내며 사람들을 알아가고 얘기도 나누면서 한가로이 저녁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앞다리살을 굽고 방금 밭에서 딴 상추로 겉절이를 해서 지나가는 마을 사람 붙잡고 같이 먹을 여유가 없다면 괸당이 무서운 게 아니라 조급한 내 삶이 무서운 것이리라 얘기해주고 싶다. 이 항목에 체크리스트를 만든다면 질문은 한 가지다.
물고기 못 잡는다고 내내 핀잔을 주셨지만 잡은 물고기 모두를 동네 사람들과 나눠서 어죽을 끓여먹는 게 제주 토박이. 츤데레의 느낌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Matthew 7:12(The Golden Rule)
4. 제주도 부동산 어때?
한마디로 천양지차다. 1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꼼꼼하게 점검해보길 추천한다. 가장 비싼 아파트는 10억대다. 하지만 농가주택이 종종 1억 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는데 리모델링 3천만 원 정도 투자하면 동화 속의 집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혼자 살거나, 신혼이거나, 아이가 크지 않다면 이런 집에서 몇 년 거주하다가 팔고 이사 가는 것도 괜찮다. 아직은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관계로 아파트의 경우 대출에 유리하지만 단독주택은 대출이 많이 안 나온다는 단점이 있다. 아파트 LTV가 70% 정도 수준인데 비해 단독주택은 LTV가 50% 수준이고 그나마 정부지원 상품의 경우 '단독등기'가 되어 있어야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은 사실이기에 공부 열심히 해봐야 한다. 그렇기에 단독 등기인지 공유 지분인지 따져 봐야 할 것도 많고 건축법 다 지키면서 살기가 여간 쉽지 않은 등 전원주택 자체가 가진 단점도 많지만 재산을 모아서 물려줄 요량으로 아파트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울 아파트 살 돈으로 제주도에 아주 훌륭한 전원주택 2채 살 수 있기 때문에 한 채는 집으로 한 채는 임대사업으로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러나저러나 육지에서 대출받아 아파트 힘들게 구매해서 사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껴서 제주에 오는 분들이 많은 관계로 제주에 집을 사서 산다는 것은 보통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자 어떤 스타일의 집을 좋아하는지 골라보시라. 제주도는 예쁜 집들이 정말 많다. 사진의 정 가운데 마당이 작게 있는 하얀 집은 교회다.
도심의 비싼 집을 굳이 힘들게 사서 평생 원리금 갚으며 살고 싶지 않아.
제주도가 좋아서 왔는데 제주다운 농가주택, 전원주택을 선호하고 있어.
오래된 농가주택이더라도 내 스타일대로 예쁘게 리모델링해서 나만의 집으로 꾸미며 살고 싶어.
굳이 투자한다면 건물보다는 땅에 투자하고 그 땅에 발붙이며 살아가고 싶어.
아이들을 경쟁 속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자연 속에서 누리게 하고 싶어.
(하지만) 제주에서 언제든 떠나 육지로 올라갈 수 있어.(이럴 경우 1년 살이 혹은 전세 추천)
제주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게 사실이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3배가 올랐다고도 한다. 하지만 2019년 이후로 제주도 부동산 가격이 하향세를 타다가 제2공항 얘기 때문에 동부 쪽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최근엔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이 더 많이 오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자본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안정세를 보인다고 생각된다. 집을 구매하면서 보니 실제 경매물건이나 5년 전쯤 나온 매물에 비하면 당연히 올랐지만 서울 집값 오른 거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분양 안된 타운하우스도 많은 관계로 발품 팔면 진짜 괜찮은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주틱한 삶을 원한다면 농가주택 강추다. 우리도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살려고 했으나 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살기로 결정하면서 큰 집이 필요해 급선회해서 지금의 집을 구매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는 분명 농가주택을 샀을 것이다.
캠핑 그까짓 거 집 앞마당으로 가지 뭐.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는 제주에서의 삶.
5. 그 외의 질문들
위에서 말한 네 가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그 외에도 교통편은 어떤지, 놀만 한 게 많은지, 공기는 좋은지, 병원 시설은 잘되어 있는지 등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이러한 항목들에 대해서는 '제주에 살멍' 브런치 북을 읽으며 참고해주기 바란다.(https://brunch.co.kr/brunchbook/lifeinjeju) 대략적으로 소소한 질문들의 방향은 결국 제주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제주도는 서울의 3배나 넓은 땅을 가졌고 그 안에 제주시, 서귀포시라고 하는 큰 행정구역이 있으며(하지만 특별자치도라서 시장은 선출직이 아니고 도지사가 임명한다.) 각 시 아래에 읍, 면이 그리고 그 아래에 리가 있다. 많이 들어본 애월은 읍이고 한림도 읍이다. 표선은 면이고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은 읍이다. 특별자치도인 관계로 자치경찰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결국 제주도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제주도 어디든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서울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서울시민들이 가진 오해라고 본다. 나도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서울의 어떤 곳은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버스를 또 갈아타야지만 갈 수 있다. 생각해보라. 서울의 모든 곳이 마치 순간 이동하듯 1회선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서울도 교통 결코 편하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한여름 강남대로에서 도로 정체가 있을 때는 버벌진트의 '완벽한 날'을 들으며 양고기 샌드위치를 먹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에 반해 제주도의 교통은 한적하다. 가장 좋아하는 길은 번영로인데 정말 마음껏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가서 중산간의 내리막을 지날 때쯤 먼 곳에서 보이는 바다는 정말 절경이다. 밤에는 오징어배 등 각종 어선이 마치 별빛처럼 보여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구분되지 않고 우주에 붕붕 떠서 운전을 하는 느낌을 선사한다. 버스도 잘되어 있는 편이다. 대다수 읍, 면, 리 단위에 버스가 다 다니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은 해안가 쪽이 조금 더 잘되어 있다. 중산간 쪽은 내려서 좀 걸어야 할 수도 있다.(개인형 이동장치가 있다면 매우 유용하다.) 표선면에 이주하셔서 살고 계시는 어떤 분이 블로그에 올린걸 보니 그분은 뚜벅이로도 정말 잘 다니시더라.
이 정도 시골은 육지라도 뚜벅이로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3배인 제주도에서 전 세계 상위권의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서울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제주도는 관광지답게 놀 것도 참 많다. 문화 공연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서귀포문화원 등에서 공연도 더러 있다.(지금은 코로나 영향으로 인해 영상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음.) 서귀포시의 축구 경기장에선 가끔 국제 경기도 열린다.(최근에 가나전이 열렸는데 표가 너무 빨리 매진돼서 암표를 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 없고 모든 공연이 다 제주도에서 열리길 바랄 수 없다. 내가 제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도저히 살지 못할 섬일 수도 환상의 섬일 수도 있는 것이다. 키자니아가 제주엔 없었지만 작년 겨울방학 시즌에 특별전이 열렸고 아이들이 아주 즐거워했다. 너무 보고 싶은 콘서트나 뮤지컬이 제주도에서 도통 열리지 않는다면 이 기회에 육지 나들이도 갈 겸 육지에 놀러 가면 된다. 우리 집 부근에 제주공항까지 1시간 걸리는 광역 버스가 있고 또 1시간 가면 김포공항에 갈 수 있다.(그리고 꼭 서울로 안 가도 된다. 광주, 대구, 청주 등 전국 어디든 비행기로 갈 수 있다.) 비행기표는 제주항공이 제주도민에게 15% 할인을 해주고 있으며(25%였는데 어느 순간 15%로 줄었다.) 제주도민으로 살면서 육지에 오가면 육지에서 오는 것보다 더 싸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교통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제주 있으면서 코로나에 의한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려 5,000원짜리 대구행 비행기표를 사본적 있다.)
자주 애용하는 제주항공의 비행기 B737-800. 제주에서 대구로 올 때 제트기류를 한 번 지나가서 항상 난기류가 발생해서 흔들리긴 하지만 light ~ moderate 수준.
공기는 대체로 좋으나 종종 미세먼지가 있는 날도 있다. 그나마 바람이 많이 불어 빨리 없어지는 편이다. 병원 시설도 곧 잘되어 있다. 동네 의원, 약국 충분하다. 사실 의료 시설의 완벽함에 대해 논하자면 서울이나 일부 대도시가 아니고서야 얼마나 잘되어 있을까. 이건 국토 균형발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까. 학군에 대해서도 논하자면 오히려 제주도가 더 낫다고 말하고 싶다. 제주도는 학력고사 평균 전국 1위다. 특별히 잘하는 사람이 없지만 특별히 못하는 사람도 없다. 수포자가 없는 학생들이 행복한 곳이다. 그 와중에도 국제학교 같은 곳도 있고 최근엔 표선초, 중, 고가 모두 국제 바칼로레아 과정 인증을 받았다. 초등학교 별로는 특색 있는 방과 후 활동이 있는데 종달초는 무려 서핑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악기, 승마, 수영 등 제주 환경에 맞는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이 잘되어 있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육지에 있는 거의 모든 놀거리가 제주도에도 다 있다. 더하기 해서 제주도에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있으니 다 즐기려면 답답하고 심심할 틈이 없다.
이 수많은 질문들은 결국 제주도에 대한 의구심이라기보다는 제주살이를 꿈꾸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 대한민국의 어느 시골 동네가 서울만큼의 인프라를 갖췄겠는가. 편한 것만 추구하면 도전할 수 없듯이 때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사는 게 더 큰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런데가 사람 살만 한 데가 못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육지 내에서의 이사는 언제든지 돌아오기가 쉽지만 제주도 이주는 번복이 어렵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맞다. 꼼꼼하게 살피되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는 의미다. 아직까지는 불편함도 못 느끼고 부족함도 못 느끼고 살고 있다. 오히려 여유가 넘쳐서 너무 좋다. 도시에 사는 가족, 친구들을 언제든 초대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가족 중 누군가 제주도에 산다고 하면 이거 정말 메리트 있다. 내가 고민돼서 제주에 못 가겠다면 가족 중 누군가를 종용해서 내려보내도록 해보자. 여러모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엄마와 딸이 서로 토라져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제주도 그냥 (꿈이 많은) 사람(이) 사는 한 지역일 뿐이다.
제주살이. 참으로 낭만적이고 꿈만 같은 네 글자의 이면에는 이루기 쉽지 않다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꿈이 쉽게 이루어지면 꿈이겠는가.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꿈만 꾸고 이루지 못한다면 구운몽에 나오는 허무한 꿈에 불과할 것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한 것처럼 이루어내야 꿈이다. 아직 준비가 안됐다면 당연히 더 준비해야겠지만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이제 그만 꿈꾸시고 일어나서 실행에 옮기시라. 이곳에도 69만의 제주도민이 터 잡고 살고 있기에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있을 것 다 있다.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굳이 제주에 대해 폄훼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120만 년 전에 생긴 화산섬 이곳 제주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나도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 신입 제주도민의 소회는 이 여유를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 모여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 부족하다면 와서 배우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질문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댓글로 소셜미디어로 질문해주기 바란다.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제주살이를 결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집에 초대해서 별이 쏟아지는 밤에 제주산 생 유산균 막걸리에 제주산 목살을 대접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좋은 이웃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제주는 꿈속에 있는 환상의 섬이지만 동시에 진짜 존재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꿈꾸듯 삶을 누려보고 싶다면 제주에 혼저 옵서예!
그림 같은 풍경의 이면엔 잡초도 뽑고, 수영장 물도 갈고, 해먹도 걸고, 벌레도 잡는 등의 여러 노력이 담겨있다. 그런 잡일을 할 여유가 있다면 제주는 언제든 환영이다.
제주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신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불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초짜 제주도민이 대표해서 사과드릴 순 없지만 너무 안 좋게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경험이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기존의 제주살이에 대한 '부정적' 콘텐츠와 균형을 맞추고자 '긍정적'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사람 귀가 두 개인 것은 양쪽을 다 들어보라는 것이 아닐까요?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열린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하시기 바라면서 끝으로 제주를 선택하셨다면 함께 제주를 깨끗하게 지켜나가 주시길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