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꿈을 사는(buy) 것이 아닌 지금 바로 꿈을 사는(live) 것
"아빠 너무 재밌어요.", "오빠 정말 좋다. 여기.", "아들아 오늘은 풀을 이만큼이나 뽑았다. 텃밭에 부추랑 상추가 싱싱하게 잘 자라는구나."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이다. 가족 모두가 말 그대로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이럴 때 가장으로서 참 뿌듯하다.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전략을 잘 짠 건데 주효했다.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 집이라는 확신으로 잠재적 손해를 감수하며 결정한 이 삶이 가족 구성원들의 꿈을 위한 투자였는데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너무나 행복해하며 이 삶을 누리고 있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원하는 바를 반영해서 심도 깊게 고민하며 준비했기에 더욱 뿌듯하다.
집을 구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기적의 연속이 있었다.(자세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ohclever/60 참조) 그 기적들이 지금의 풍요와 행복을 만들었다. 요즘 우리 가족의 일주일 일과는 이렇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막내는 유치원을 기쁜 마음으로 잘 다닌다. 유치원 선생님 말로는 리더십이 출중하고 체력적으로는 거의 천재 수준이라고 한다. 첫째는 엄마와 함께 안정적인 길로 들어선 홈스쿨링이 한창이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고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타운하우스 단지에는 첫째와 동갑인 친구가 두 명이나 산다.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낮에는 딸아이도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모두가 함께 어울린다. 여름을 맞이해서 수영장을 설치했는데 동네 꼬마들의 목욕탕 수준이 되었다. 아내는 오전엔 홈스쿨링 교사로 오후엔 유치원 간식 교사로 봉사하고 저녁엔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 할머니는 아침엔 학교 방역 교사로 활동한다. 제주도에서 직장과 친구를 얻었다. 그것이 할머니로 하여금 제주에서의 삶을 결정짓게 하는 주된 이유였다.(고부가 모두 학교에서 일하는 관계로 7월에는 화이자 백신을 접종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해가 너무 뜨거울 땐 집에서 독서를 하거나 표선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느지막이 텃밭 작업을 한다.
금요일에는 반가운 아빠가 온다. 모든 가족들이 종일 들뜬 마음으로 지낸다. 금요일 밤 비행기로 제주에 내려온 아빠와 함께 일주일에 딱 한 번 야식타임을 갖는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엔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아빠랑 엄마는 오래간만에 데이트를 즐긴다. 데이트 중 백미는 새벽 오름 산책이다. 밤새 내린 이슬에 첫발을 내딛으며 오름에 오르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름을 다녀와서 먹는 '은희네 해장국'은 일품. 오후엔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고 저녁엔 바베큐와 함께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밤이 깊어가는지 모르고 정다운 시간을 보낸다. 동네 꼬마들과 놀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거금을 들여 대형 트램폴린을 설치했다. 온 동네 꼬마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이렇게 공유하는 게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정말 타도 돼요?라고 불안한 마음에 되묻곤 한다. 이웃사랑 참 재밌다. 티피 텐트도 설치했다. 종종 아이들은 텐트에서 자겠다고 한다. 이 녀석들 벌써부터 캠핑의 낭만을 안다. 다만 밤에는 추워서 엄마가 전기장판을 가져다 놨고 나는 침낭을 가져다 놨다. 노르디스크 알페임 대형 텐트를 준비한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들어가도 넉넉하다.
3층 루프탑 공사를 준비 중이다. 우리 집 옥상은 한라산 맛집이다. 한라산 풍경이 정말 끝내준다. 완공되고 나면 해 질 무렵 한라산의 낙조를 보며 차를 즐길 예정이다. 2층 인테리어 공사 설계를 마지막 검토 중이다. 주차장 쪽 안전을 위해 겹담 설치를 준비 중이고 뒤편 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분홍바늘꽃을 심기로 결정했다. 장모님은 사정이 생겨 내년에 내려오실 예정이다. 그 사이 우리 집을 완전히 준비하기 위해 한창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생각하는 집, 꿈꾸는 미래, 놀고 싶은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 집을 꾸미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부지런 떨기 좋아하는 아빠와 할머니가 열심히다. 두 나무 사이의 해먹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아들내미가 참 귀엽다.
늦은 밤 아이들에게 불꽃놀이 쇼를 선사한다. 1,000평 가까운 넓은 공동 마당에서 마음껏 뛰놀다 안전하게 불꽃놀이도 즐기고 마을 사람들이 멀찌감치 구경하거나 합류하기도 한다. 가끔 아빠는 공룡이 된다. 공룡쇼를 펼치며 아이들을 쫓아다니면 여자아이들은 도망 다니고 남자아이들은... 나를 공격한다. 이게 본성일까... 공룡이 되고 나서 많이 얻어맞았다. 다행히 아직 찢어지진 않았는데 조만간 찢어질 거 같다. 공룡쇼를 하고 나면 공룡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리고 나는 행복과 미소로 흠뻑 젖는다.
맑은물어진별은 아이들의 이름을 한자풀이로 쓴 것이다. 집을 구매하면서 많은 공부를 통해 동이름 변경 신청까지 가능함을 알고 맑은물어진별스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3가구에 각각 맑은물동, 어진별동, 하보조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보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준말. 예쁜 입간판은 '결이 다른 공방' 작품이다.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그림이 추가되어 포인트를 더했다. 세우고 나니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든다. 친구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여러 가지 조치들도 완료해두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많이들 놀러 와서 같이 누리고 즐겼으면 한다. 이웃사랑을 위해서 그들에게도 오픈된 집이고 싶다. 우리만 꿈꾸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꿈꿀 기회를 주고 그 가운데 선한 영향력이 있으면 한다. 에피쿠로스 철학과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아빠의 생각이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이렇게 행복한데 이게 영원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오늘에 충실하기로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유명한 경구 Carpe Diem(Sieze the day ; 오늘을 살아라.)을 실천한다. 삶이 넉넉하니 바라는 것도 많이 없다. 이 말은 결코 우리 가족이 돈 많은 부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재산으로 치면 중윗값 아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넉넉하다. 물론 어머님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는 된다. 그조차 너무 감사하다. 다만 어머님들이 함께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으면 조금 더 작은 집에서 살았을 것이기에 우리 힘으로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동행해주시는 어머님들께 감사하다.
그래서 베풀고자 한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만약 아내가 이 집을 통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등 여러 사연이 있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방 한편 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감사할 줄 알고 베풀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더 많은 이 세상 어린이들이 조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아빠의 육아휴직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곧 전방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배운 이웃사랑의 실천은 결코 끝이 나지 않았다. 평화를 사랑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베제티우스의 말처럼 너무나도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이기에 장교의 길을 택한 아빠라 아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내가 든든하게 나라를 지킬 테니 부디 우리 아이들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
제주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이웃사랑 이야기로 계속될 것이다. 그 전초기지가 될 맑은물어진별스테이와 이웃사랑의 실천자 우리 가족들이 함께라서 든든하다. 모든 복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더불어 우리를 품어준 제주와 제주도민께 감사한 마음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어둠 속에서 아빠 어깨 위에 손 올리고 동행해준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고, 굳이 안 가도 되는데 따라와 주신 할머니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받은 복을 마음껏 나누며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 그동안 제주 아빠의 제주생활 연재를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주 아빠의 제주생활 연재는 다시 기획하여 책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전원주택 사용법에 관한 내용을 보충하고 각 챕터별로 제주생활 안내를 조금 더 보충할 예정입니다. 나중에 책으로 발간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또한 이것으로 브런치 생활을 끝내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도 맑은물어진별스테이에서의 삶 이야기를 계속 공유하겠습니다. 제주 아빠의 생각도 철학적으로 풀어내며 독자분들과 만나 뵙겠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