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것. 제주 바다.

제주 바다가 미인박명이 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by 제주 아빠

서울의 세배 면적을 가졌으나 인구는 10분의 1도 안 되는 제주는 섬이다. 비행기와 배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올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제주라는 이름의 뜻부터가 건너야 갈 수 있는 고을이다. 그렇다고 제주는 외로운 섬은 아니다. 2019년 통계를 예로 들자면 1년 간 약 1,500만 명이 다녀갔다. 제주 인구가 67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인구의 23배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갔으며, 육지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 다녀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대안으로 제주를 선택하면서 입도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바다 때문일 것이다. 바다로 둘러 싸인 제주는 어디서든 바다로 접근하기가 참 쉽다. 워낙 넓은 해안선을 접하고 있다 보니 제주 바다라고 해서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이 점 역시 제주 바다가 가진 매력 중 하나다.


20191228_163715.jpg 성산일출봉에서 내려다보단 성산읍 전경. 바다로 둘러싸인 섬 안에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고 그곳 사람들은 그 바다를 터 삼아 살아간다. 생명의 바다다.


제주시가 있는 제주 북쪽의 바다는 육지에서 이어지는 해저면과 닿아 상대적으로 얕고 잔잔하다. 얕은 바다는 햇빛을 받으면 코발트그린 색깔로 빛을 낸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바로 제주 바다는 아마도 이런 색일 것이다. 서쪽으로는 유명한 판포 포구부터 비양도가 보이는 한림항, 곽지, 애월 등이 있다. 제주 중앙부에는 이호테우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서 함덕, 김녕, 월정리, 세화로 이어진다. 하나같이 코발트그린의 바다 색깔로 유명하다. 낙조도 명품이다. 낮에 코발트그린으로 빛나는 바다가 해 질 녘 주황빛을 더하면 빛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보랏빛 은은한 색깔이 바다 위에 마구 떨어진다. 떨어지는 해가 더 빠른 건지 낙조를 보는 찰나를 잡고 싶은 내 마음이 조급한 건지 이 아름다운 장면은 정말 순식간이 지나가버린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 위에는 이번엔 어업이 한창인 낚싯배들이 가득이다. 수평선 너머 먼바다에 떠있는 배들을 보고 있으면 짙은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어디서부터가 하늘인지 알 수 없어 촘촘히 떠있는 배들의 불빛 역시 하늘에 떠있는 별과 같다. 이쯤 되면 세상이 뒤집어져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빛 가득한 하늘이 바다인지 아니면 낚시 불빛 가득한 바다가 하늘인지 어질어질하다. 특히나 이 장면은 번영로를 따라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경계선 어디선가 봤을 때 그 느낌이 더하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애써 밤에 번영로 위로 올라 차를 잠시 멈추고 별멍(별을 보며 멍하니 있는 행위)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성경에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이 장면을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KakaoTalk_20200706_175648191_10-2.jpg 코발트그린 빛깔의 김녕해수욕장. 저 바다 너머에 육지가 있어 제주는 항상 그들을 기다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머금은 바다와 함께.


동쪽 끝 성산일출봉을 빙글 돌아 제주의 남쪽 바다로 내려오면 조금 더 짙은 색이다.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색을 낸다. 이 바다 너머는 일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더 생소하고 이국적이다. 멀리 떠다니는 거대한 상선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주 남쪽 바다는 사실 태평양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해가 저 멀리서 떠오르기 때문에 이곳은 반대로 일출이 명품이다. 붉은 해가 마치 어머니의 산도를 통과해 나오는 아이처럼 우렁차게 표호하며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생명의 기운이 마구 느껴진다. 온평 포구에서 표선, 위미로 이어진다. 서귀포 중앙부에는 그 유명한 강정 포구가 있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중문, 사계, 모슬포로 이어진다. 확실히 깊은 바다라 그런지 해수욕장보다는 포구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다채로움은 더하다. 제주 쪽 바다가 한결같은 모습이라면 서귀포 쪽 바다는 각양각색을 이루고 있다. 성산일출봉과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광치기 해변은 자연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표선해수욕장은 제주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데 백사장만 16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밀물과 썰물에 의한 지형의 변화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고, 제법 코발트그린 색깔의 제주 쪽 바다를 닮은 데다가 밀물로 백사장이 뒤덮일 땐 햇빛에 반짝이는 숭어 떼들의 향연이 일품이다. 인근의 신천, 신풍 목장은 절벽과 이어진 바다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고 동시에 바다만큼이나 넓은 초원을 볼 수 있다.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와 문섬, 섶섬, 형제섬 등 다양한 섬들을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며, 산방산과 송악산, 용머리 해안의 자연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서귀포 바다의 자랑거리다.


DJI_0174.jpg 송악산 너머로 바라본 제주의 남쪽 바다. 저 멀리는 일본과 닿아있고 태평양과 닿아있다. 짙은 코발트블루의 바다가 넘실대며 대양의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임을 당당히 드러낸다.


제주 바다는 굳센 해녀들을 닮았다. 해녀가 제주 바다를 닮은 걸까? 제주는 삼다도라고도 불린다. 많은 것이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라고 한다. 여자가 많은 데는 슬픈 이유가 있다. 포작이라고 불리는 해남들이 전쟁에 징병되고 조정에 진상할 지역 특산물 채취에 동원되다 보니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여자들이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럽게 제주 바다를 닮아갔다. 제주는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육지로 올라오는 거의 모든 태풍은 제주를 지나간다. 높은 한라산을 넘다가 그 명을 다하는 게 허다하다. 특히나 서귀포 바다의 짙은 색깔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열심히 태풍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제주의 한이 서려있다. 태풍이 오는 날 서귀포 바다 어딘가에 가보면 자연의 위대함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10미터가 넘는 방파제를 넘나들며 쳐들어오는 파도를 제주가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연의 풍파뿐 아니라 역사의 풍파도 많이 맞았다.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이 아름다운 섬이 일본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지금도 그 흔적으로 서귀포 해안에는 화포를 숨겨놨던 생채기 같은 동굴이 많이 남아있고, 악명 높은 가미카제도 출격시켰던 알뜨르 비행장도 남아있다. 해방 이후 4. 3 사건을 겪으며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많이들 이 짙은 바다에 수장되어 물고기 밥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피로 이 바다가 더 짙어졌을지 모르겠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는 많은 제주 청년이 이 사건의 아픔을 벗어나고 육짓것들로부터의 오해를 벗어나고자 해병대에 자원하여 싸웠다. 제주어를 이용하여 북괴를 속이고 성공적인 작전을 이끌어낸 사례도 있을 정도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굳세게 지켜온 터다. 역사의 풍파도 자연의 풍파도 견뎌왔다.


_DSC8142.jpg 온갖 풍파를 묵묵히 견뎌내며 이 터를 지켜오는 바위섬. 그 섬이 외롭지 않게 우리가 이제 돌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바다가 이제 세 번째 풍파를 맞고 있다. 쓰레기다. 환경오염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모두의 아픔이라고 하지만 제주만큼 치명적인 곳도 드물다. 태평양의 길목에 있어 남쪽에서 올라오는 쿠로시오 해류가 이 제주 앞을 지나간다. 제주 해변에는 저 멀리 베트남에서 온 쓰레기까지 모여든다. 관광객이 많아져 외롭지 않은 섬이 되었지만 그들이 들고 가는 것은 추억이요, 버리고 가는 것은 쓰레기다. 온갖 풍파를 맞아온 제주는 묵묵히 견뎌낼지언정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사람인지라 또 그러기 쉽지 않다. 육지 사람들을 싸잡아 낮게 일러 육짓것들이라고 하고 육지 사람들은 또 제주 사람들을 보고 괸당이라며 텃세 부린다고 비난한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이기심에 괜히 오해받고 있는 것은 제주가 아닐까. 사실 진짜 아픈 것은 제주다. 말 못 하는 이 바위섬이 쓰레기와 온갖 해양 오염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지르고 있는 비명을 우리가 귀 기울어야 한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섬을 운이 좋게 거머쥔 모든 대한민국 시민이 함께 기울여야 할 노력이다. 코로나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도 육짓것들의 숨통을 트여준 것이 제주 아니던가. 제주도민 역시 알고 있다. 자치도지만 육지로부터 오는 재정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상생이 답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MZ 세대들의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 제주의 본연과 꼭 닮았다는 것이다. 젊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봉그깅 운동이 유행이다. 봉그깅은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한 플로깅 운동(스웨덴어로 이삭 줍기를 뜻하는 플루카 우프와 조깅을 합친 말로 조깅하며 길가의 쓰레기를 수거하자는 자연보호 운동)을 제주어로 만든 멋진 단어다. '줍다'라는 의미를 가진 제주어 '봉그다'에 조깅을 합친 거다. 플로깅보다 더 그럴싸한 이 멋진 봉그깅 운동이 젊은 세대들에 의해 전역에서 행해진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리 가족의 최애 해변인 소금막 해변의 하얀 백사장 위를 덮은 쓰레기들을 주어나간다. 쓰레기는 끝도 없다. 쿠로시오 해류는 또 쓰레기를 가져올 것이고, 양심 없는 누군가는 이 아름다운 해변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봉그깅을 함께하는 지원군도 그만큼 늘어난다. 세상은 결국 정의가 이길 것이라는 것을 제주는 믿으며 묵묵히 기다려준다. 허리 굽혀 쓰레기를 봉그다 한 번씩 읏챠 소리를 내며 일어나 땀을 닦다 보면 제주 바다가 햇빛에 반짝이며 환하게 웃어준다. 멀리 제주남방큰돌고래가 해수면 위로 폴짝 뛰어오르며 응원해준다.


DJI_0282.jpg 아름다운 빛깔의 제주 바다를 둘러싸고 이제 그만 싸워야 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제주 바다를 지키길 바라본다.


제주 바다가 간직한 기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생물 다양성 차원에서 제주 바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아열대 기후(하지만 요즘엔 환경오염으로 열대가 되어가고 있다.)를 가졌으며, 120만 년 전 생성된 이 화산섬은 지질학적으로도 그 의미가 깊다. 쿠로시오 해류가 통과하는 만큼 지정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녔다. 기상학적으로도 카르만 볼텍스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세계에서 가장 큰 카르만 볼텍스를 관측할 수 있고, 이 웅장한 장면은 위성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다.) 관광 산업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로 인해 일찍 시작한 비대면 IT 시대에 많은 4차 산업 관련한 회사를 유치하기도 참 좋은 환경을 지녔다. 여러 잠재력을 가진 이 섬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워 더 많이 찾지만 아름다워 더 빨리 죽어가는 이 제주를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살려야 한다. 제주 바다가 간직한 저 아름다운 빛깔이 제주의 눈물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여전히 제주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주고 있음을 감사하며, 기억하자. 120만 년 전 난데없는 지구의 재채기로 그가 몸속 가득 품었던 뜨거운 용암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차가운 바닷물에 빠르게 식어가며,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가진 타원의 이 섬을 만들어냈다. 설문대 할망이 돌을 집어던져 만들었다는 설화도 참 재미있다. 순식간에 바다 한가운데 솟아오른 이 섬은 어느 시기엔 탐라로 어느 시기엔 제주로 불렸다. 편견 때문에 제주라는 이름이 생겨났지만 그 전의 탐라라는 이름이 더 제주에 잘 어울린다. 이름에 비단이 들어갔으니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뜻일 것이다. 섬 자체로도 아름답고 기적이지만 바다가 있어 더 비단 같은 제주다.


20200131_151207.jpg 짙은 감색으로 물든 넓디넓은 비단결 바다 위에 하얀 포말을 점찍어 무늬를 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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