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는 홈파티에서 딸아이가 'Over the rainbow'를 연주해주었습니다. 떠듬떠듬하는 수준이지만 그 어떤 연주회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딸아이의 뒤편으로는 노래에 맞춰 보름달이 넘실대며 반겨주었습니다.
살다 보니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다. 마침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데다가 결혼기념일 날짜도 비슷해서 가족들과 함께 홈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또 10년을 잘 살아보자고 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다 보니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란 것도 어찌 보면 교만이다. 그러니 영원히 사랑하자보다 10년을 잘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두 아이가 생긴 것이다. 어느덧 큰 아이가 10살이고 작은 아이가 7살이다. 결혼 1 주년 하고 1개월 뒤에 태어난 큰 아이가 벌써 십 대라니 세월 참 빠르다. 제주도로 이주하게 된 것도 큰 이벤트 중 하나다.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어렴풋한 바람, 희망 이런 거였는데 8부 능선을 넘으면서 점점 구체적으로 선명해졌다. 그럼에도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10주년이 되는 해에 집도 구하고 이제 어엿한 제주 우리 집에서 가족들을 초청해 홈파티까지 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결혼 10주년 석혼식 홈파티. 마침 방역 지침이 추석 기간 완화되어 가족 모임이 가능했다.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우리의 10년을 약속할 수 있어 감사했다.
제주에서의 삶은 참으로 목가적이면서 바지런하다.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사는 것보다 변화는 더 다이내믹하다. 특별한 일을 꾸며서 삶을 특별하게 만들기보다는 그저 특별함 속에서 우리가 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살 때 특별할 것 없는 몰개성적인 아파트에 살면서 조금은 지쳤기도 했고 그래서 제주를 더 희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나마 마당이 있던 자운대 아파트에서 살 때는 우리의 삶 주변을 특별함으로 가득히 채울 수 있었는데 제주에 오니 스케일이 몇 배는 더 커졌다. 그래서일까. 어디를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특히나 내가 제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이 아닐 때 우리 가족들의 생활권은 표선으로 지극히 한정된다. 그나마 아내 직장이 신산리에 있어 하루에 한 번 다녀오지만 성산읍~표선면권을 넘어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서귀포시에 한 번이라도 나가는 날이면 가히 명절 수준이다. 조금 오버하면 육지에서 서울 살며 고향인 광주 내려가는 수준으로 느껴진다. 물론 가서도 방문하는 곳은 기껏해야 이마트, 이마트 옆 병원, 이마트 부근 서귀포 의료원이다.
오늘은 아내가 이웃집 귤밭에 귤 따러 갔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올망졸망 작은 손을 몇 배나 더 큰 장갑으로 덮어놓고 열심히 귤 따는 아들내미의 뒷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딸아이와 마주하여 귤 박스를 들고 옮기는 사진을 보니 '영차'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사이 아내는 불멍 하며 커피 한잔이다. 알고 보니 모기가 많아서 피워놓은 불이고 커피는 덤이란다. 육지에서 꽤나 성가신 모기인데 제주에서는 불멍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제주란 곳 참 매력적이다. 매일매일 아내를 통해 제주의 소식을 들으며,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증강현실로 가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제주의 바람이 선명히 기억나고, 그 습도, 온기, 바닥을 걸을 때 느껴지는 감촉이 생생하다. 어느덧 내 주변은 온통 제주로 가득 찼다. 심지어 브런치에서 보내준 연말 결산에 나는 '제주도 전문'이란다. 전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만 여하튼 육지친구들이 제주에 대해서 나한테 묻곤 하니 적어도 그들에게 나는 전문일 수 있겠다. 그래서 더 제주를 공부하고 제주의 선함을 알린다.
좋은 이웃 덕분에 올해 귤농사 체험은 아주 넉넉하고 풍족하게 했다. 귤나무에 손도 닿지 않던 둘째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노동의 기쁨을 배우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새로운 10년의 결혼생활 다짐은 제주에 잘 정착하기다. 아내와 남편이 오래도록 잘 지내는 방법을 군대식 용어로 '살라미 전술'에서 터득했다. 살라미 햄처럼 잘게 쪼개서 수색작전을 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로 기간을 잘개 잘라서 기간마다 나름대로 함께 꿈꾸며 함께 이뤄나가야 할 기대감들을 계속 채우는 방법이다. 그래서 다음 10주년이 될 우리의 제주 정착 이야기는 순조롭게 시작했고 지금 참 좋다. 앞으로 얼마나 또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10년 뒤면 큰 아이는 20대에 접어들 것이고 둘째는 고등학생의 나이다. 계속해서 홈스쿨링을 하게 될지 학교를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제주를 닮은 아이들로 키운다면 더없이 좋겠다. 얼마 전 다니엘 기도회를 듣던 딸아이가 다이어리에 써놓은 글을 아내가 몰래 보았는데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하나님. 나는 가난해도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요. 풍족해서 마음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싫어요.
10살짜리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집은 사실 온전히 우리 집은 아니다. 아직 잔금을 다 치르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 잔금을 마련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설 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잔금을 치를 수 없어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닌 게 된다고 하더라도 제주에 우리 가족 몸 뉘 일 곳 못 찾겠나 하는 마음이 들어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 그분의 뜻이 있다면 이루어질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순종하면 될 것이다. 아이의 마음처럼 부모 역시 가난해도 마음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싶다. 어쩌면 우리만 생각해서 구한 집이 아니라 이 집 덕분에 되레 우리가 재정적으로 더 가난해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래서 마음이 더 행복하고 풍족해졌다는 것이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제주에 잘 정착하기는 믿음의 가정으로 이곳에 잘 정착하기라는 전제가 있다. 교회에 쓰임 받는 일꾼으로 정착하는 것이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모범적 가정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아기자기하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우리 제주 집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선 안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결혼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여느 가정처럼 힘든 일도 많이 겪었다. 그 가운데에 기도하는 아내, 현숙한 아내가 철없는 가장보다 오히려 기둥과 같은 역할을 많이 해주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그 덕에 지금의 제주살이도 가능했다. 어느덧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수치로 따지면 대한민국 40대 이하 자가보유율이 40% 수준이라고 하니 40% 수준의 삶은 살고 있는 듯하다. 제주도민의 자가보유율은 55% 수준이니 제주도민의 절반 안에는 드는 것 같다. 이렇게나 감사할 거리가 많으니 다음 10년 더 나누며 살자고 다짐한다. 우리가 제주에서 나눌 수 있을게 무엇이 있을까. 환경을 보호하고, 공동 육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누고, 좋은 이웃이 되어 웃음꽃을 나누고자 한다. 더 나눌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 나누고자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미안스럽게도 우리가 나누는 것보다 이웃이 우리에게 나눠주는 게 더 많다. 척박한 제주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법은 나눔이었다고 한다. 이런 나눔을 이곳에서 접해보니 제주는 땅은 척박할지 몰라도 인심은 그 어디보다 풍성하지 싶다. 그런 제주가 참 좋다. 우리와도 잘 어울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블루보틀이 생겼다. 블루보틀의 커피 맛보다는 이곳에서 보이는 제주의 풍경에 더 깊이 빠져든다.
새로운 10년을 제주에서 시작한다. 마침 보름달이 나와 같이 축복해준다. 나긋한 음악이 루프탑에 울려 퍼지고 모두가 호젓한 제주의 밤 아래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인다. 잠시 파티등을 끄니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매 순간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데 내가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을 함께 기대하고 꿈꾼다면 그것이 설령 절망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무어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함께 해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일지 모르겠다. 이 아름다운 인생을 함께 해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또 든든하다. 그리고 그 삶이 제주에서 시작되어 감사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에서...
촛불 맨드라미가 가득한 보롬왓에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제주 처음 왔을 때 보롬왓이 이만큼 성장한 게 반갑다. 우리 가족 역시 그간 많은 성장을 겪었다.